조진만 군(27)은, 내가 2002 매거진 Arche를 만들었을 때 편집부였던 후배다. 난 그가 잡지 만드는데 더 열심이기를 바랐지만 그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글 하나 달랑 쓰고는 아무것도 하려하지 않아, 좀 다퉜다. 그런데 이런저런 다른 일들에 휩싸여 나도 내가 누군지 점점 잃어버릴 때쯤, 칸트가 찾던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별 따위 눈 씻고 찾아봐도 내가 믿던 그 어느 마음에서도 쉽게 찾을 수 없을 때쯤, 그것들과 동시진행으로 그 친구가 밴드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심 미안했다.
이건 인터뷰라기보다는 우리의 추억과 청춘에 대한 예의이자 존경이다. 난 내 과거를 다시 조합하고 색칠하며 길을 찾고 있다.
삶이 그렇지만, 그 길에 당신도, 친구로, 서로에게 좋은 인연으로 그렇게 함께였으면 좋겠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어폰을 꼽고, 아니면 글 속에서 전율을 느끼며 우리가 당신의 머리와 마음으로, 일상으로 들어가는 미래를 그려보시길…….
this is the reality that we confront
왜 하필 하드코어고, 드럼인가요?
99년에 밴드들 공연을 보러갔다가 우연히 하드코어 공연장에 갔어요. 현재도 활동하고 있는 Vassline과 삼청교육대의 공연이었어요. 그때까지 접하지 못 했던 스테이지 다이빙(stage diving), 싱 얼롱(sing along), 모슁(moshing) 등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남성적인 매력을 가진 음악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드럼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해요. 거창한 목표를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밴드를 하고 싶었는데, 기타리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보컬은 노래를 못해서 시도를 안했고. 기타가 무대에서 굉장히 멋져보였는데, 음악을 별로 안 좋아하시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집에서 기타 연습을 하다가 혼났어요. 들키지 않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 드럼이에요. 스틱 두 개만 있으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하게 됐습니다.
국내외에서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과 앨범이 궁금합니다.
국내에서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은 같은 동료인 Vassline입니다. 그들은 한국에서 뿌리내리지 못했던 하드코어를 한국 씬의 수면에 올려놓았고, 자신들이 하는 음악을 통해서 유명세도 얻었죠. 그리고 자신들도 하드코어의 삶을 살고 있고요.
해외에서 가장 존경하는 뮤지션은, 현재는 많이 알려졌지만 대중들에게는 생소한, 일본의 Envy라는 팀을 존경합니다.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밴드고, 서정적이고 혼돈스러운 멋을 자연스럽게 섞어내는 팀이죠.
13steps 드러머, 조진만
13steps를 탈퇴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음악이나 인간적인 문제로 탈퇴한 것은 아닙니다. 단순히 좀 더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하던 밴드의 앞길에, 바쁜 제 개인 사정으로 인해 밴드의 활동이 지지부진해질까봐. 그걸 원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모두 좋은 친구들이며 공연장에서도 자주 만납니다.
13steps 활동을 하며 가장 보람 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커다란 페스티벌에서도 재미와 감동을 받았지만, 2003년 대구와 제주도에 공연 갔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당시 앨범도 안 나왔고 데모앨범만 낸 상황이었는데 대구와 제주도의 작은 클럽에서 100명 안팎의 관객들이 너무 재밌게 놀던 것이 즐거웠습니다.
정규 1집 앨범에서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음악을 샘플링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 아이디어는 아니었고 보컬의 아이디어였어요. 저는 정치적으로는 살짝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저와 달리, 보컬은 사회고발과 진보적 성향을 추구했습니다. 마이클 무어의 영화는 모두 봤습니다. 《Bowling For Columbine》을 봤을 때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조금 편향된 성향은 거부감이 들지만 그의 고발정신은 존중합니다.
뮤지션의 앞길
앞으로의 음악 방향 또는 음악적 욕구 해소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가요?
현재는 다른 하드코어 밴드 Firestorm에서 드럼을 치고 있습니다. 음악은 정말 좋아하는 취미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재미있으면 계속 할 거고 재미없다면 당장이라도 그만 둘 수 있어요. 그만큼 열정을 다해서 하고 있어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적인 욕구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자 하는 취미 활동인데, 우연찮게 그 매개체가 음악이었던 거죠.
음반시장이 불황이라고 합니다. 세계경제가 통째로 불황이지만, 현재 음반시장과 음악의 미래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계신가요?
어차피 한국의 음악시장은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별로 없어요. 세계경제위기의 여파로 음반시장이 불황인 건 몇몇 메이저 아티스트들의 이야기이고, 저희 같은 언더 뮤지션들은 오히려 인터넷의 발전으로 인해 입소문을 많이 타면서 예전보다 나빠진 것은 없어요. 음악의 미래는 그래도 예전 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보다 다양성도 많이 갖추고 있고. 장기하 씨 같은 경우도 보면, 다양성이라는 코드가 정착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도 가망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판매고가 좋아져야 할 텐데 말이죠. (웃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이 정부의 예산 축소로 난항을 겪었습니다.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 제도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좋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발언 등을 볼 때는 문화라기보다는 그냥 문화산업주의라는 생각만 들뿐이에요. 시스템이 많을 경우에는 제약만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홍대 밴드들은 모두 외설 공연을 한다는 식으로 매도되어 공연에 대한 제약이 많아져 주변사람들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한국 대중음악은 천편일률적인 면이 너무 많아요. 영화에도 스크린쿼터 같은 것이 있는데 음악에도 장르별 할당량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합니다. EBS ‘공감’과 같은 방송은 시청률은 낮지만 많은 매니아를 갖고 있고, 평도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영화는 어느 정도 다양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데 음악은 그렇지 못한 면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음악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때 자율학습이 끝난 텅 빈 밤의 운동장에서 친구들을 기다리며, 이상은의 ‘새’를 듣다 울었던 기억이 있다. 음악은 내 삶을 지탱해주는 버팀목이고, 가장 설득력 있는 매체 중에 하나다.
조진만 군은 ‘하드코어가 한국 음악팬들에게 많이 못 알려진 거 같다’고 말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하드코어는 80년대 펑크에서 파생되어 나온 음악이다. 좀 더 빠르고 과격한 음악을 뜻하지만, 본래적인 의미로는 ‘직업을 갖고 음악을 하며 자신의 삶에 충실하자’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한다. 하드코어 뮤지션은 절도 있는 삶을 살면서 자신의 삶과 자신의 가족과 형제들에 충실하자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다고도 한다. 21세기는 환경의 세기라고 한다. 환경의 세기에 중요한 건, 종의 다양성과 자연의 보존 그리고 공존이겠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 속으로 스며들길 소망한다.
글.사진 ㅣ 사색의향기문화원 손정호 객원기자 (wilde18@hanmail.net)
사진 ㅣ 조진만 Firestorm 드러머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