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4월 11일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나의 살던 서울은》(청어, 2009)의 저자인 윤재석 국민일보 논설위원을 만났다. 그날 여의도는 벚꽃놀이 인파와 전경들로 가득했다. 누구는 꽃을 보러 나오고, 누구는 싸운다. 하지만 빌딩 숲과 여러 역할의 사람들 속, 여의도의 한 복판에서 오래 살아온 저자의 이야기는 홍난파 선생님의 《나의 살던 고향은》처럼 우리를 편안하게 했다.
인터뷰에 앞서 저자는 ‘기자 생활하면 드라이한 글을 쓴다. 잔재미를 못 느낀다. 내 경우는 5대째 서울에서 살았고 누구보다 서울을 사랑하고 서울이 아름답고 생각한다. 그래서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을 옛날부터 해왔다’는 저술 의도를 밝혔다. 그는 중앙일보, 국민일보의 다양한 부서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살았다. 어쩌면 이 책은 그의 삶, 기자로서 삶의 갈무리다.
저자는 서울시에서 발행하는 《서울 사랑》이라는 매거진에 고정 기고를 몇 년 동안 했고, 교통방송에서 서울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풀 기회가 있었다. 서울에 대한 에세이형 컨텐츠가 자연스럽게 쌓였고, 그중에 일부를 추려서 《나의 살던 서울은》을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으로 출판하게 됐다고 한다.
서울은 대한민국의 수도다
서울은 저자의 고향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수도입니다. 역사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대해 명쾌하게 한 마디로 말씀을 해주신다면.
서울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서울은 육백여년 도읍이었습니다. 도읍이라는 개념이 없던 선사시대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공간이에요. 현대사회로 들어와서는 서울이, 역사, 경제, 정치, 문화를 대표하는 핵심 공간이라고 할 수 있죠. 조금 더 시적으로 얘기하면, 서울의 세 가지 보물로 서울은 정말 멋진 곳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북한산, 한강, 역동성이요. 이 세 가지 보물로 인해서 서울은 정말 멋진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서울에 거주하시면서 겪은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충격적인 건 대학 2학년 때인 1972년의 10월 유신이었습니다. 10월 유신이 우리 현대사를 바꾸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거든요. 7년 정도 철권통치가 이어지다가 10월 유신을 단행한 장본인이 부하의 총탄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또 7년 정도의 군사독재가 진행됐죠. 우여곡절 끝에 민주화가 이뤄집니다. 지금도 1972년 10월 17일의 10월 유신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짝사랑하던 여인과 만나는 날이었는데 그로인해 만남 자체가 무산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서울이 이런 부분이 더 발전적으로 보완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으신지요.
고층건물은 그만 지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제2롯데월드 허용 계획에 대해서 국민일보, 프레시안을 통해 칼럼을 엄청 많이 썼습니다. 성남비행장이라는 전략적 군사기지를 완전히 망가트리는 바보 같은 짓이거든요. 서울이 더 이상 이런 식의 고층화가 된다면 서울은 희망 없는 도시, 잿빛 도시가 될 거 같아요. 오세훈 시장도 그 부분에 대해서 서운해 할 텐데, 책에 한강 르네상스 얘기도 나옵니다. 한강 르네상스도 저런 식으로 만들면 2,30년 지나서 크게 후회할 거라고 봅니다.
에세이에 머리를 적시다
발문을 오세훈 서울시장이 썼습니다. 어떤 연유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발문을 썼는지 궁금합니다.
우격다짐으로 했습니다. 서울에 관한 에세이를 쓰는데, 서울시장께서 글을 하나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저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잣대를 연륜으로 치거든요. 오세훈 시장이 저보다 여덟 살인가 어리시더라고요. 아무리 관직이 높더라도 나이가 어린 분에게 추천사는 못 받겠고, 발간을 축하한다는, 이런 식의 제목이면 받겠다고 해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쾌히 보내주시더라고요. 고마운 일이죠.
작년에 서울에서 열렸던 세계철학자대회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철학도시, 서울’이라는 소제목 하입니다. 현재의 우리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우리에게, 철학이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총체적인 것을 철학이라고 보거든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시간도 철학에 편입될 수 있는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 대해 얘기할 때, 철학이 없고 가볍고 천박한 도시라는 얘기를 많이 하거든요. 실제로 그런 측면들이 없지는 않습니다. 천민자본주의의 표상 같은 현상들이 너무 많지 않습니까. 예컨대 제2롯데월드 건설을 허용한 정부의 처사도 천민자본주의의 표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이 지닌 유구한 역사와 문화재, 서울에 살다간 사람들의 흔적들은 굉장히 철학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계재에 작년에 세계철학자대회, 여성철학자대회가 열렸죠. 그것이 하나의 묶음으로 될 수 있지 않나. 철학도시 서울을 가꿔갈 수 있지 않나. 하지만 한국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오류, 지나가버리면 쉽게 잊어버리잖아요. 아까운 거 같아요. 철학자 분들만이라도 세계철학자대회, 여성철학자대회의 동력을 갖고 ‘철학도시, 서울’을 만드는 애를 쓰셨으면 좋지 않을까.
4부, ‘사람 만나는 게 좋아’의 인터뷰들이 인상적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인터뷰는 어떤 거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형식을 파괴해서 했던,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 이원희 한국교총회장, 저 셋이서 했던 인터뷰입니다. 셋이서 서울대 사대 71학번 동기에요. 친구죠. 한 사람은 광대면서 공직을 했던 친구고, 한 사람은 교원단체총연합회라는 대단한 조직을 평교사 신분으로 하고 있는 친구고. 세 사람의 이야기 속에 70년대 초반의 한국사회, 대학사회의 모습이 나타나거든요. 그게 참 재미있습니다. 그날 행복하고 좋았던 저녁이었어요.
또 하나 생각나는 건 황윤이라는 생태 다큐멘터리 감독을 인터뷰했던 기억. 환경에 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군요. 환경에 대한 애착. 인터뷰어로서도 행복했습니다.
저널리스트로 뒤를 돌아보다
언론계에 종사하시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 또는 기사는 무엇이었나요.
보람이라면, 환경 담당할 때입니다.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 듀폰에서 이상화티타늄 공장을 울산 온산에 건설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86,7년인데요. 중앙일보 근무할 때인데, 환경 담당 기자들을 규합해서 일제히 ‘공해 공장이 대한민국에 상륙하려한다’는 기사를 썼죠. 결국 듀폰 그룹의 이산화티타늄 공장이 대한민국에 상륙 못하고 대만으로 상륙했습니다. 언론이 정도를 걷고, 시민을 보호할 책무, 본령을 하려고 했던 중요한 사건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전 기자생활을 하며 신조 중에 하나가 소외되고 힘없는 사람의 편에 서서 사물을 바라보자는 겁니다. 소외되고 어려운 분들, 눈물 흘리는 분들의 입장에서 서서 부단히 보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종사하고 있는 국민일보 뿐만 아니라 객원필진으로 활동하고 있는 프레시안, 출연하고 있는 방송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그늘진 부분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컨대 장애인들의 권익 침해, 인권위원회의 축소, 용산 참사에서 농성했던 철거민들이 과연 정부가 얘기하는 것처럼 불순세력이었나, 그 부분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번 집고 넘어가야하지 않나 하는 문제제기를 하죠. 그래서 이따금 간접적인 태클내지는 압박도 받습니다.
윤재석 씨처럼 멋진 기자가 되거나 수필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을 위해 한 마디만 해주세요.
저는 멋진 기자는 못됩니다. 30년째 하고 있는데 이 정도밖에 못 됐어요. 굉장히 실패한 기자죠.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 건, 20년 근무했던 신문사를 자의반 타의반으로 나온 게 제가 추구하고자 하는 신념과 다르다는 걸 무려 20년 후에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많은 불이익을 받아왔고 지금도 그런 부분이 없지 않습니다.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 입장에서 살아가고, 대변한다는 게 힘듭니다. 하지만 그런 신념은 양보할 수 없는 저의 가치죠. 그런 고집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어려운 문제를 묻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신념을 유지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힘듭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 투기하는 사람을 비난하긴 쉬운데, 스스로 안 하면서 비난할 수는 있지만, 하면서 비난하면 안 되지 않습니까. 예컨대 지금 드러나고 있는 전직 대통령 비리 같은 것도. 그 분을 어느 부분 존경해야 할 것은 그 분이 가지고 있는 투명성, 포기했던 권위주의였는데, 그게 상당부분 진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을 때 느끼는 실망감, 낙담 같은 것들. 그런 걸 유지하는 것, 즉 신념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은 이 지구상에서 가장 해악적인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최근에 어느 분에게 멋진 말을 들었는데,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행위 하나. 가능한 한 지구에서 살다간 흔적을 최소화하고 사라지기를. 지구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가장 해악적인 존재죠. 다른 모든 동식물, 미생물까지 포함해서 인간이 그동안 해온 행위들이 너무나 이 환경을,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윤재석 국민일보 논설위원은 더 상업적인 출판도 가능하지 않았겠냐는 질문에 ‘작가로서는 무명이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못해서’라고 대답했다. 이 한 권의 재미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책은 그래서 더 깊은 농도로 다가온다.
우리는 왜 살아가나. 돈과 권력, 외모 등 갖가지 인간 안의 서열화와 계층화 속에서 우리는 경쟁이라는 이름 아래 열심히 살고 또 산다. 하지만 의미 있는 건 무엇인지, 신념은 무엇이고,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른다. 인간다운 삶은 무엇이고 지구와 후대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줘야하는 건지 우리는 확실히 정립하고 있는 거 같지 않다.
제2롯데월드 건설과 용산 참사의 사이에서, 벚꽃놀이 인파와 전경들이 교차되는 여의도 일상의 연장에서, 행복한 일상과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나의 살던 서울은》은 좋은 길동무가 될 것이다.
글 : 사색의향기문화원 손정호 객원기자 (wilde18@hanmail.net)
사진 : 황선영 (중앙대 철학과 3, 매거진 Arche 2009 편집장)
동영상 취재 : 신태순 (중앙대 사회학과 3), 김형진 (중앙대 철학과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