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만드는 삶의 이중주
12명의 나르키소스들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나에게 반하다>는 트렌드하우스 기분좋은 QX에서 기획한 두 번째 책이다. 트렌드하우스 기분좋은 QX는 <삶에 미치는 16가지 기술>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을 모아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노력, 즉 ‘자기 성장 증후군’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60명의 성공한 사람들을 12명으로 압축하기까지 그리고 그들의 삶을 밀착하여 취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기획 단계부터 아버지를 염두 했던 아들의 기획력과 40년을 기자로 살아온 아버지의 능숙한 취재력이 모여 ‘나에게 반하다’가 탄생하게 되었다.
은퇴와 사퇴의 차이?
안병찬은 1962년 한국일본에 입사해 혁혁한 공로를 세운 기자이다. 그런 그에게 피해 갈 수 없는 것이 있다면 세월이 아니었을까. 은퇴를 앞둔 어느 날 교수로 몸담고 있던 대학에 사표를 던지고 나와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의 삶으로 전환하기까지 그가 싸워야 했던 것은 그를 괴롭히던 질병도 세월도 아닌 자기 자신이었다.
문화기획자
아들 안이영노가 착안한 것은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 분모를 모아 체계화 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성장원동력을 분석하고 과학화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이해하고 발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그에게 46년의 경력을 가진 아버지가 가까이에 있었다. 밀착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적임자로 주저 없이 아버지를 택한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된 과정을 소개해주세요.
안이영노 : <나에게 반하다>에 앞서 <삶에 미치는 16가지 기술>이라는 전작이 있어요. 사람들 속을 파고들면 사회의 단층이 나오잖아요. 앞선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사람들을 계속 연구하면 우리 사회나 문화의 근미래의 트랜드가 나온다는 전제를 달았어요. 그 안에서 사람들의 패턴과 공통점을 뽑아봤고 저희들은 그것을 문화라고 생각했어요.
<삶에 미치는 16가지 기술>에서 이미 앞서가는 트렌드리더들에 대해 연구하고 도출한 결과 ‘자기 성장 동력’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들의 자기 성장 동력에 주목해서 <나에게 반하다>라는 책이 나오게 됐어요. <나에게 반하다>에 나오는 12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안에서 미래의 우리 모습을 발견하는 거죠.
안병찬 : <나에게 반하다는> 두 번째 시리즈로 전작에서 업그레이드 된 책이에요. <삶에 미치는 16가지 기술>은 기분좋은QX가 자료나 연구를 통해 선정한 16명을 인터뷰한 것이고, <나에게 반하다>는 전작과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해요. <나에게 반하다>는 아들이 취재 지시를 하고 나는 일선 기자 노릇을 하는 방식을 취했어요.
안이영노 : 데스크를 주니어가 맡고 일선은 시니어가 나간다는 발상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에는 저자가 중심이 된 거죠. 뒤로 갈수록 역할 전환한 것이 의미가 있었다고 느꼈어요.
“현장의 문체를 만든다.” 안병찬 기자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소설가 김훈은 그를 ‘저널리즘의 왕초’라고 칭할 만큼 현역기자로서 그가 걸어온 삶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런 그가 나이를 절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다. 대학에서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그는 돌연 사퇴를 한다. 은퇴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 아버지와 함께 작업하게 된 계기는?
안이영노 : 아버지가 사퇴를 하시고 그 과정에서 기분좋은QX를 창업했던 동료나 후배들이 아버지께 1인 블로거나 블로거 저널리스트를 권고했어요. 아버지께서도 취재 열망을 갖고 계셨고. 65세 이후 더 젊은이답게 사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퇴하셨을 즈음에 저보다는 동료들이 아버지를 꼬셨다고 한 게 맞아요. (웃음)
자연스럽게 처음에는 내가 늙었을 때의 인생, 그 다음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바라봤을 때 그분들이 결코 늙은 것이 아니라는 자식으로서의 욕심도 있었죠.
안병찬 :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나로서는 결심을 해야 했었어요. 나중에 늙으면 알겠지만 요새 그 나이에는 물러설 수가 없어요. 현장에서 뛰어야지. 더군다나 나처럼 행동주의 휴머니스트들은 더 뛰어야 해요. 나를 보고 안이영노 대표가 가족으로서 걱정도 했을 것 같고, 내가 경험이 많으니까 이 두 가지였을 것 같아요.
우리 둘 다 먹물 계통이고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책을 만든다는 것이 차별화된 거잖아요.
-.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떠셨나요?
안병찬 : 자꾸 쓰라고 권하더라고. 그런데 엄두가 나? 쓰면 안 팔리거든요. (웃음) 그동안 13권을 썼는데... 그런데 이건 신문사 고료가 있어서 용돈 쓰는 정도는 나왔어요. (웃음)
안이영노 : 필자에게는 인터뷰어로서 사람을 보는 노련한 눈이 있었고 우리 안에는 문화 쪽 활동을 하고 기획하는 전략이 있지만 사람들 안에 들어가서 보는 인류학적인 시각, 평론적인 시각들이 부족했어요. 문화 리더십을 기른다고 표현하는데, 사람들 안에 있는 성장 동력을 끌어내는 문화적인 교육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목적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아버님을 활용했다고 한 것이 맞아요. (웃음)
청소년 교육을 7,8년 동안 해온 팀이 있는데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이 자기 성장 동력을 찾게 하는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교재로 활용되는 데 자신이 있었어요. 저희들이 바라는 것은 이 책이 청소년 권장도서가 되는 거예요.
안병찬 : 청소년들을 위한 교재로 활용할 모양이에요. 안대표가 사회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다분히 인문학적인 생각이 많이 녹아 있었어요. 그래서 나하고 충돌한 것도 계속 무겁게 앞뒤를 사회학적, 문화적 관점을 붙여놨어요. 무거운 책이에요. 이게.
-. 책이 구성이 독특합니다. 아버지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대담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형식을 취한 이유가 있나요?
안이영노 : 저널리스트가 사람을 파악하는 것과 저처럼 사회학이나 인류학 훈련을 받은 사람이 사람을 보는 차이가 궁금했었어요.
개인에게 라이프 스타일을 끄집어 내는 사람을 인터뷰 할 때 객관성 있는 질문을 던지게 되잖아요. 직업에서 오는 방법론적인 차이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문화의 힘을 알아내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좋았어요.
성장동력을 찾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의 의견도 들어갔어요. 제주도 방언 중에 요망지다는 말도 신선했고, 김준영 팀장은 용기라는 키워드를 말해주었고요. 재미있던 것 중에 하나는 인터뷰 한 사람들을 평가할 때 그런 키워드를 제시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성격이 나와요. 가령 요망지다는 말을 한 서진영 팀장은 요망진 부분이 있다든지 김진영씨가 용기라는 말을 쓰게 된 이유도 나름 있었고요.
-. 책 제목이 <나에게 반하다> 책 표지도 산뜻한데 누구의 아이디어인가요?
안병찬 : 기분좋은QX의 정서는 딱딱한 톤인데 김상익이라는 친구가 표지를 이렇게 바꿨어요. 그러고 나서 서진영 팀장이 일러스트레이션을 하자고 해서 12명을 그렸고 나중에는 일러스트레이션이 된 인물들을 화첩으로 손수 만들어서 인터뷰에 응해준 분들에게 드렸어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어요. 토론을 하고 여러 의견들이 모이면 좋은 결과가 나와요.
안이영노 : 많은 사람들이 고민을 해서 나온 결과물을 보고 저도 놀랐어요. 제가 했으면 전혀 다른 느낌이었을 텐데. (웃음) 이 책에는 대표 저자가 2명이지만 사실은 20,30대 문화 기획자들과 리서치들을 포함해서 서진영 팀장 등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녹아들어 있어요.
-. 나르키소스라고 표현을 했다. 자기 성장 동력 중에 나르키소스에 착안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안병찬 : 영어로는 나르키시즘이라고 하고 나르키소스는 그리스어예요. 거울 보고 자신에게 반한다는 거죠.
안이영노 : 전작이 트렌디한 인물 60명 중에서 16명과 인터뷰 하고 공통점을 봤더니 자기가 성장하는 데 욕심이 많은 에고이스트라는 답이 나왔어요. 한국일보 연재할 때 그들을 알아서 크는 사람이라고 표현을 했어요.
그 16명을 끼가 있다, 깡이 있다는 표현을 찾다가 마지막에 소위 자뻑 증후군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거죠. 앞선 사람들은 스스로가 알아서 큰다는 그런 비결이 있다고 보는 거죠.
안병찬 : 이 책에 나오는 12명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도 나에게 반하는 잠재력이 있다는 보편화된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 문화 기획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안이영노 : 문화 기획이라는 말에 자부심을 느끼는 데 제가 문화 기획자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문화 기획이라는 말은 2000년 전후에 한국 사회에서 내생적으로 만든 말이에요. 문화 기획자 2세대로서 틀을 만드는데 저희들의 임무인거 같아요.
-. 자칭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라고 하는데 생소하게 들립니다.
안병찬 : 르포르타주는 불어에요. 가장 근접한 우리말로는 기록 문화인데 의미가 달라요. 프랑스 사람들은 예술적인 취향이 강해요. 르포르타주의 대표하는 사람이 앙드레 말로와 생텍쥐페리인데 행동을 통해 뛰어난 문학을 한 사람이에요.
저널리스트가 기록을 하면서도 부족함과 오류가 있잖아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역사성과 문학성이 갖춰져야 해요. 르포르타주는 숨이 긴 기록문학의 차원에서 저널리즘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개념이에요.
-.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일하면서 좋은점이 있나요?
안병찬 : 저널리즘의 이론이나 실천에 대해서 나한테 질문이 많고 나한테 많이 배우겠죠. 저도 사회학이나 문화에 대해 배워요. 요즘에는 생텍쥐페리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그래요.
안이영노 : 제가 장년을 넘어서니까 세대 차이가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를 보게 돼요. 아버지는 빠르고 증기기관차 같고 매듭을 잘 지으시는 반면에 저는 행동은 느리지만 스타트가 강하고 동료들과 함께 마무리하는 편이에요. 그런 차이를 발견하는 묘미가 있었어요.
-. 반면에 불편한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나가셨나요?
안이영노 : 십년 전에는 불호령을 하셨는데 젊은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다보니 많이 부드러워지셨어요. 완곡어법과 미사어구를 쓰세요. (웃음)
안병찬 : 요즘에는 싫은 얘기를 서로 안하잖아요. 그런데 나는 해요. 경험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에 더 나은 것을 위해서 한단 말이에요. 이 책을 보면 12명의 일러스트레이션이 들어가 있어요. 뉴욕에 있는 젊은 친구가 그린 작품인데 여러 차례 수정을 했어요. 결정적으로 내 얼굴을 노땅으로 그려서 내가 다시 그리라고 그랬어요. (웃음)
저는 젊은 사람들의 새로운 감각을 수용하는 편이에요. 대학에서도 열린 교수였거든요. 시니어이긴 한데 노땅은 아니에요. (웃음)
-. 함께 일하면서 대화를 많이 나누는 기회가 많아졌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안이영노 : 예전 보다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일 쪽으로는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하는데 살갑게 아들로서는 잘 못해드려요. 같은 아파트 위아래 살고 있는데 저는 퇴근이 늦어서 매일 인사를 못 드리고 대신 저의 아이가 항상 부모님께 문안인사를 하러 다녀요. 우리 집안의 가풍이에요. 손주 세대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통이 되었다. (웃음)
-. 평소에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었나요?
안병찬 : 대게는 엄마하고 많이 대화를 하는데 중요한 일은 나한테 의논을 해요. 예전에 밴드 이름을 허벅지 어떠냐고 물어온 적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좋다고 그랬어요. ‘허벅지 밴드’라고 조금 유명했었어요. 그런데 내 부하 직원 중에 아들 후배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나한테 “영노형 딴따라 한다고 말리라고.” 이러더라고. (웃음)
안이영노 : 이 이야기는 다음 책에 나올 이야기에요. ‘개미와 베짱이’라고 세대 간의 문화차이에 대해 다루고 있어요. (웃음)
-. 앞으로의 계획 한말씀 해주세요.
사람들이 제대로 성장할 수 있는 한국의 토종적인 자기 성장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어요. 카네기나 스티븐 코비를 빌리지 않고 한국 사람들의 자료와 데이터를 통해 토종 DNA를 찾고 싶었어요. 문화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출하고 싶어요.
우리 성장 동력을 배울 수 있도록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거예요. 교육이 세상을 바꾸는 힘을 갖고 있잖아요. 최고의 기획인거 같아요.
좋은 프로젝트 기획자가 되기 위해선 자기 삶을 먼저 기획하라는 말을 써요. 자기가 스스로 성장하고 일욕심이 많아야 한다는 거예요. 인터뷰하면서 느낀 것은 아버지도 자기 일에 반해 있었다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것이 자기 달성적인 예언이에요. 성공하기 위해서 정신적인 성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때 필요한 것이 ‘나는 잘 될꺼야, 나는 참 예뻐, 나는 잘하고 있어.’ 이런 자기달성적인 예언인 것 같아요.
회사 창업했던 멤버들이 모여서 문화가 뭐지 궁금해 하다가 내린 결론이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가 리서치와 컨설팅을 하지만 기분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과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큰 프로젝트의 두 번째 단추에요.
[후.일.담] - 붕어빵 부자와의 즐거운 만남
안이영노님께 질문을 드리면 어느새 슬쩍 치고 들어오는 안병찬님의 위트넘치는 대화가 유쾌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나중에는 부러 안이영노님께만 질문을 드렸다는 고백을 이제서야 합니다.
괄괄한 성격을 가진 아버지와 느긋한 목소리를 가진 아들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면 두 분 환상의 짝꿍이구나 싶었습니다.
고희를 넘긴 안병찬님 르포르타주 저널리스트 1세대로 거침없이 세상을 두드려주시리라 기대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안병찬님, 안이영노님 감사합니다. *^^*
정리 | 표선희 shpyo@paran.com
사진 | 황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