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한 쪽 귀퉁이에는 오늘도 어김없이 부음기사가 실려 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죽음이 뭐 그리 슬픈 일일까 마는 부음 기사를 읽을 때면 숙연한 마음이 든다.
대부분 신문사의 부음 기사에는 소위 출세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부음 기사로 쓸 자료를 보내는 곳이 대형병원이기 때문이다. 장례식 풍경에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질 수 밖에 없다.
아시아기자협회장을 마치고 한겨레 신문사로 돌아온 이상기 기자가 한 일은 부고 기사를 바꾸는 것이었다. 한겨레 신문 피플란을 맡아 보훈 병원부터 샅샅이 훑어 매일 부고란을 채워나갔다. 소시민들의 가슴 절절한 사연들을 접할 때에는 먹먹해질 때도 더러 있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던 부고 기사들을 모아 한 권의 책을 엮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은 [그대 떠난 자리에 별이 뜨고].
사색의향기에서 저자 이상기 기자를 만났다.
-. 이 책을 쓰게 된 동기가 있나요?
아시아기자협회장을 마치고, 4년 만인 2006년 1월 한겨레신문사에 복귀했어요. 처음에 적응하느라고 교열부 근무를 하다가 한달 후에 피플면을 맡게 되었는데, 그때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부음기사 있잖아요. 그 때는 출세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만 나가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보통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보통사람이지만 열심히 살고 특별하게 산 사람들을 찾았어요.
병원에서 보내주는 부음자료를 보다 보면 아, 사연이 있겠다 싶은 내용이 있어요. 그래서 전화를 해보면 틀림없이 뭔가가 있어요. 감이 와요. (웃음) 십년 전에도 해 봤던 거라서.
-. 특별히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죽음 앞에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어디 있겠어요. ‘3대기자, 공무원 벌벌 떤 필봉’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3대가 다 기자인 집안이에요. ‘우익남편에 공산당 시동생’은 배기선씨 어머니 이야기였어요. ‘가시던 날도 홍매화 곱더이다’ 이 분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에요. 자식들과 살아온 사연을 듣고 기사를 썼어요.
여기에 보면 외국 사람들도 있어요. 대북지원단체를 설립한 수잔 리치 같은 경우에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잖아요.
-. 돌아가신 분에 대해 가족이나 친구들이 추모하는 형식인데, 기사하고 다른 느낌이 들어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세 가지 형식으로 썼는데, 편지 형식, 일기 형식이 있고 제 3자가 쓴 것처럼 취한 형식도 있어요. 일부러 기사체를 개발했어요. 기사는 기자와 독자가 대화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책은 기자가 독자를 일방적으로 설득시켜야 해요. 그래서 기사체를 많이 개발했어요.
-. 3부가 인상적이예요. 살아계신 분들을 미리 추도하는 글인데, 혹시 항의 연락받은 적이 있나요?
없어요. (웃음) 죽은 다음에 쓰는 평전이 아니잖아요. 그 사람의 좋은 점을 후배들이 배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제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이 앙드레 김이였어요. 95년도에 성수대교가 끊어졌을 때, 무학여고 학생이 10여명이 죽었어요. 당시 그 아이들이 강남 지하 셋방에 살았는데, 앙드레김이 그 아이들에게 수의를 해줬어요. 그걸 이 책에 써서 앙드레김에게 보내드렸더니, 어떻게 알았냐고 하더라구요. 제가 그 때 사건 담당을 맡았을 때였는데 그 사실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죠.
-. 요즘에는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오랫동안 부음기사를 접하면서 죽음에 대한 기자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이 책에는 자살한 사람은 없어요. 삶을 중간에 포기하는 것은 도피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죽음, 갑작스러운 죽음은 어쩔 수 없잖아요. 살아있는 동안 현재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해요.
저는 이런 생각도 해요. 우리가 태어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죽는 시간도 중요해요. 다음 생애의 시작이잖아요. 죽음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른 세상에 태어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 많은 인터뷰를 하셨을텐데, 그래도 만나고 싶은 분이 있으신가요?
이 책에서는 이건희 삼성회장, 안철수씨, 심형래씨, 지광스님. 이 네 분은 못 만났어요. 다른 분들은 직,간접적으로 만나봤고요.
인터뷰를 하고 싶은 사람은 가수 이용씨에요. 예전에 이용씨가 노래 부르는 것을 본 적 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열정적으로 부르더라고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좋게 생각했어요.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게 최고예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생기고 일들이 주어지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대해 항상 불만을 갖고 더 나은 자리만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리고 제가 인터뷰를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사람은 에이즈 환자예요. 에이즈 환자와 같이 살면서 그 분들의 고민과 슬픔을 꼭 쓰고 싶어요. 제 인터뷰 기사의 끝이에요.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됐냐면 기자는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자가 얼마나 기자 정신을 갖고 있느냐 이게 중요하거든요.
“가장 외로운 집단이 기자라고 생각해요.”
-. 기자님이 생각하시는 기자정신은 어떤 건가요?
기자는 오로지 진실과 사실을 추구해야 해요. 이념과 집단과 떨어져 있어야 해요. 어느 한 편에 들어가면 기자 생활하기 쉬워요. 자기 편에 숨으면 돼요.
그러나 정도 (正道) 는 아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진실을 파헤치는 저널리즘들은 외로울 수 밖에 없고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회색분자라는 소리까지 들어요.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기자정신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게 있다면?
남의 얘기를 많이 들어서 정보를 많이 얻었으면 좋겠어요. 남의 얘기를 잘 들어라. 그리고 약속시간에 미리 가 있어라. 이 두 가지를 강조해요. 기자 하면서 중요한 게 이 두 가지인거 같아요.
-. 기자가 아닌 다른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을 하고 싶으세요.
아마 국어학자를 했을 거예요. 국어 어원이나 표기에 관심이 무척 많았어요. 정확한 표현을 하려고 애를 많이 써요. 지금도 그건 자신있어요.
84년에 유학 준비하다가 한겨레신문사에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기자가 제일 좋은 직업인거 같아요. (웃음)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기자 할 것 같아요.
-. 신조가 있다면?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 이에요.
그리고 모든 일이든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제가 가진 신념 중에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막연하고 거창하게 하는 것보다는 작지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작은 것이 모여서 조금씩 커지고 확대되면서 거대한 것이 된다고 생각해요. 가령, 어제 잘못했으면 오늘은 그러지 않으면 되고 내일은 더 잘하면 돼요. 그러다보면 나아지지 않겠어요?
정리 | 표선희
사진 | 황진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