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고전을 아우르는 최고의 무용가 국수호. 그의 왕성한 창작력은 문학적 발상과 역사 의식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명성황후, 고구려 등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무용으로 전 세계 130여 개 국을 순회하며 한국의 춤과 문화를 알리고 있다.
오는 8월 22일부터 24일까지 국수호의 춤음악극 <思悼-사도세자이야기>가 국립극장박물관 내에 있는 극장'용'에서 관객과 다시 만난다. <사도>는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기 까지 이야기를 춤으로 극화한 춤음악극으로, 4명의 무용수와 4명의 음악가가 90분 동안 무대에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思悼-사도세자이야기>는 ‘죽음’에 대한 동양적인 해석이 곁들어져 한층 탄탄해진 구성과 함께 춤과 음악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2007년 초연 당시 관객들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안무가 국수호의 춤 인생 45년을 듣는다.
-. 춤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15세에 시작했는데 그냥 좋아서 했어요. 힘들어도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이 길이 내 길이다 여겼어요. 저는 전라북도 완주군 비봉면 이전리 216번지 출신인데, (웃음) 날 비(飛), 새 봉(鳳)자를 쓰는 비봉면이에요. 고향의 역사가 제 역사인거 같아요. 시골에서 나서 자연의 향기를 맡으며 자연스럽게 감수성 예민하게 컸어요.
-. 당시에는 ‘춤추는 남자’에 대한 인식이 어땠나요?
대학 때 40명 정원에 3명이 남자였어요. 제가 67학번인데. 1960년대에는 못살았어도 오히려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고 격의 없이 받아들였어요.
-. 춤 외에 연극도 배우셨고, 민속학도 전공하셨어요. 안무를 위한 준비 과정이었나요?
전주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중학교 때에는 밴드에서 북을 쳤고, 고등학교 때에는 농악하고 장구를 쳤어요. 그 때 서양음악과 한국음악, 가락을 알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 서라벌 예대 무용과에 진학했고, 군대를 제대한 후 연극영화과에서 연극을 배웠어요. 무용극의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대학원은 민속학을 공부했는데 임동권 박사가 저의 스승이세요.
춤을 출 때 즉흥적으로 하는 것 같아 보여도 춤에는 뿌리가 있어요. 삶에 문학이 있듯이 춤도 문학성을 갖고 있어요. 배움을 통해서 춤의 뿌리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 <思悼-사도세자이야기> 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사도>는 굉장히 세기적인 비극이에요. 보통은 증오와 갈등이 두드러지는데 <사도>에서는 왕이 세자를 즉,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잖아요. 왕이 자기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의 뜻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죽이도록 명령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성 회복의 차원에서 이 작품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작품은 한국 춤으로 안무를 한 것이 아니라, 현대적으로 안무를 했어요. 그래서 무용수들도 전부 현대 무용가에요. 그렇지만 그 속에는 동양적인 죽음의 질서가 있어요. 사도세자가 비록 뒤주 속에 죽지만 영혼이 하늘로 올라가는 씻김이라는 의식을 넣었어요.
이 무대는 무용수가 4명, 음악가가 4명이 등장해요. 연주자들이 두 대의 피아노를 1시간 20분 동안 나눠서 연주를 합니다. 원래 사도는 해외에서 공연할 수 있도록 기획을 했어요. 4명의 무용수, 4명의 음악가, 4명의 스텝을 구성하면 어디든지 갈 수 있거든요. 이번에 사라코사 초청 공연을 다녀왔는데 이 작품을 통해 단원들이 앞으로도 공연을 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어요.
-. 동서양의 조합, 한국 전통의 재발견을 찾아 볼 수 있는데, 춤에 대한 철학이 있나요?
춤을 통해 영혼의 양식을 느끼길 바랍니다. 일반 사람들이 잊어버리고 있는 것을 고취시키고 싶어요. 예전에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코리아 드럼 공연을 했었는데, 어느 날 유럽에서 북춤을 본 70세가 넘은 부부가 찾아와서 울면서 고맙다고 하세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공연을 봤다고 말씀하세요. 춤이 생명을 느끼게 해준 거지요.
-. 최근에 베이징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중국에서 큰 공연을 마치고 오셨는데, 현지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으셨어요. 어떠셨나요?
<천무>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베이징 올림픽 조직위원회로부터 공식 문화 행사로 초청을 받은 공연이에요. 세 번에 걸쳐 공연을 했는데요. 올림픽 선수촌에서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인 선수들과 임원들, 기자들 앞에서 공연을 했어요. 자금성 내에 있는 중산극장에서 했던 공연은 중국의 국영방송인 CCTV를 통해 13만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생방송 됐어요. 베이징 올림픽 안무를 맡은 장지강씨가 <천무>에 대해 극찬을 했고, 중국 내에서도 계속해서 우리와 공연을 같이 하고 싶어 해요. 여러 가지로 성과가 있었어요.
'천무'는 하늘과 땅, 인간이라는 주제로 13편으로 구성됐으며 이날 공연에서 1400여 명의 베이징 관중들에게 웅장한 대북소리와 화려한 군무에 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보도기사 중에서-
-. 베이징에서 공연한 <천무>13편의 작품 가운데 7편이 북춤인데 북을 택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북은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가죽의 소리예요. 북소리는 심장의 맥박소리랑 같아서 자기 맥박의 소리와 다르게 칠 수 없어요. 자연의 소리지요. 특히 북의 소리는 원시적으로 볼 때 음악의 시효를 의미합니다. 빨리 치면서 위급할 때 적의 출현을 알리지만 자정을 알리는 박자는 느리게 치잖아요.
-. 많은 분들이 춤을 낯설고 어렵게 생각하는데 어떻게 하면 보다 친숙하게 춤을 이해 할 수 있을까요?
‘춤은 나하고 상관없어.’ 이런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문화를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즐길 수 있도록 스스로 다양한 문화와 접촉하고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고요. 그런 차원에서 약간의 호기심을 갖고 춤이 무엇인지, 춤극이 어떤 것인지 한번 보러 가는 것,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죠. 문화는 넘쳐도 좋은 거예요. 좋은 공연을 보고 책도 많이 읽어야 해요. 지금도 늦지 않았어요. 좋은 영화와 공연을 찾아가서 보고 친구들과 만나 차 한 잔 마시면서 문화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얼마나 좋아요.
-. 안무 이외에도 극을 쓰고 다양한 공연을 기획하고 계시는데, 그 힘은 어디에서 나는 것인가요?
그것 밖에 할 게 없으니까요.(웃음) 습관화 되어 있어서 작품이 쏟아져 나올 때가 있어요. 기가 충만할 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지금도 무대에서 춤을 춰요.
-. 안무를 만들거나 가르치는 일을 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직접 무용도 하시나요?
그럼요. 저는 춤 추는 게 좋아요. 7,80이 되면 가르치는 일보다는 명무로 남을 겁니다.(웃음)
-. 앞으로의 계획은?
올해가 춤을 시작한 지 45주년이 되는 해에요. 오는 11월에 45주년 기념으로 ‘월인’이라는 작품을 할 예정입니다. 달의 사람들, 달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내용입니다. 10월에는 하늘극장에서 초청받아 4일 동안 <천무> 공연을 할 예정이에요. 국립 발레단에서 내년에 쓸 작품을 요청 받아서 '왕자 호동'에 대해 대본을 쓰고 있는데, 죽음의 기원 신화라는 데 의미를 두고 구성하고 있어요.
-. 사색의향기 회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사도>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춤에서 죽음의 역할은 다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죽음의 미학이죠. 작가입장에서, 독자입장에서 죽음을 어떻게 끌고 가는가를 또 어떻게 승화되는가를 눈여겨보시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리 | 표선희 기자
사진 | 홍유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