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속 깊숙이 들어온 사진 찍기,
두 팔 벌려 환영하다
윤광준 작가의 <찰칵, 짜릿한 순간>
"자기 생산이 가능한 사진. 이는 생각보다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단순히 기술적 진보의 편리만을 얘기한다면 이는 한 면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이면의 엄청난 변화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관계로부터 차단된 사진 찍기의 실현입니다. 부담감을 떨쳐버린 자유로운 시선은 아무 때나 모습을 담아놓을 수 있는 디카 덕에 힘을 얻지 않았을까요."
- <찰칵, 짜릿한 순간> 中에서
2000년대, 인터넷의 급속한 보급과 더불어 현대인의 일상을 획기적으로 바꿔버린 것이 있다면 바로 디지털 카메라의 화려한 등장이 아닐까? 특히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콤팩트 디지털 카메라는 일인 미디어와 함께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작품으로 만들어 주었다. 친구들과 레스토랑에 가서, 애인과 여행을 가서, 가족들과 집에서 어느 때나 쉽게 카메라를 꺼내 찍을 수 있는 사진은 더 이상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다. 이렇게 우리 삶 속 깊숙이 들어온 사진 찍기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한 사진가가 있다. ‘잘 찍은 사진 한 장’, ‘아름다운 디카 세상’ 등으로 이미 예전부터 ‘사진 찍기의 생활화’를 주장해 온 유쾌한 사진쟁이. 윤광준 작가의 디카 사진을 향한 따뜻한 편견.
폼 잡지 말고 네 맘대로 찍어라
경기도 일산에 위치한 윤광준 작가의 지하 작업실에 들어서자 우선 눈에 띈 것은 거대한 진공관 엠프와 1952년산 탄노이 스피커였다. 사진작가뿐만 아니라 오디오 전문가로써도 큰 활약을 펼치고 있는 그의 취미를 잘 보여주는 듯했다.
"저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욕망은 다 이뤄 봤어요. 가지고 싶은 카메라, 오디오도 다 가져 봤죠. 돈이 많기 때문에? 그건 아니에요. 사실, 비결이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우선 순위에 두고 그 열망을 절대로 버리지 않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은 당장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포기하곤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단 현재 가장 원하는 것을 사요. 그것 땜에 지출이 과해졌으니까 일을 좀더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면 메워지고. 물건은 이미 얻었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이러한 그의 모습에서는 일반 오십 대 대한민국 남성에게서 보기 힘든 여유와 관조가 묻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하며 사는 것’을 ‘불필요한 것을 갖는 것’보다 사치라고 여기는 것이 사실이므로, 그의 ‘누리는 삶’은 보통 사람들에게 부러운 것임이 틀림 없다.
사진론에서도 그의 인생관은 그대로 적용된다. 더 멋있는 사진, 고난이도의 사진을 찍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한다.
‘힘 주지 말고 당신 맘대로 찍어라.’
기교와 테크닉을 강조하는 사진 관련 서적은 많다. 그러나 그가 쓰는 책들이 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다.
“근원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술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사람의 의식과 관점, 생각 사고 같은 것들의 하위 개념일 뿐이죠. 기존에 나와있는 책들은 기술만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거꾸로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죠. 기교를 익히면 자연히 실력이 따라 오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나 진짜 잘 찍은 사진이란 건 자신이 살아온 삶이 바탕으로 깔리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겁니다.”
디지털카메라의 등장 그리고 ‘바람직한 사진 문화’
그가 강조하는 것은 사진을 보는 눈이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평범한 돌멩이 하나를 같은 카메라로 찍더라도 어떤 위치에서 어떤 각도로 어떤 빛을 받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의 사진이 나온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촬영하는 사람의 눈, 즉 관점인 셈이다. 윤광준 작가의 <찰칵, 짜릿한 순간>에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마음, 당시의 상황이 잘 나타나 있어 그것이 어떻게 작품으로 승화되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은 제가 1년 동안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올려놨던 결과물들을 바탕으로 낸 겁니다. 어느 정도 디카가 손에 익은 사람들의 고민이 이거거든요. ‘도대체 무엇을 찍을까?’ 사실, 답은 모두가 알고 있어요.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좋은 모델이 되어주잖아요. 삶과 일상이 얼마나 큰 재료인데요. 그러나 많은 분들이 착각하는 게 있어요. 꽃지 해수욕장가서 일몰 장면 하나 찍고, 할매 바위 같은데 가서 일출 찍고. 남들이 다들 찍으니까 나도 같이 따라 찍는 식의 반복과 답습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잖아요. 개인의 삶 속에서 만들어지는 그 무엇을 표현해야죠.”
이미 수년 전부터 개인의 일상이 미니 홈피나 블로그 등 일인 미디어를 통해 불특정다수와 함께 공유돼 왔던 것이 사실. 윤광준 작가는 이러한 변화를 ‘굉장히 바람직’한 현상으로 바라본다고 했다.
“양이 담보된 가운데서 질이 높아지는 거거든요. 미니 홈피 초기에 사람들 밥 먹으러 가서 반찬 찍고 하던 문화가 정착돼서 이제는 꽤 괜찮은 사진들이 올라온단 말이에요. 사실 어떤 새로운 문화가 그 사회에 자리 잡는데 10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긴 게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의 이 시기가 양질의 사진 문화를 만들어가는 모색의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 디지털카메라가 처음으로 도입될 당시에는 윤광준 작가도 이 새로운 매커니즘을 받아들일 준비와 자세가 안 되어 있었다고 고백한다. 전문가용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던 관성이 그대로 남아 디지털카메라가 가진 장점보다는 어색함이 앞섰던 것이다.
“2000년인가? 대학에 들어가는 아들녀석이 디카를 사달라고 하도 조르길래 함께 샀어요. 그런데 이게 물건이더라 이겁니다. 나의 일상과 거의 실시간으로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료 당했어요. 사실 큰 전문가용 카메라는 폼나 보이긴 하지만 고역이거든요. 어깨 아프지, 힘들지, 꺼내려고 하면 쪽 팔리지.(웃음) 그런데 콤팩트 디카를 주머니에 넣어가지고 다니면서 내 생각과 행동의 간격이 점점 좁혀진다는 것을 느꼈죠. 제가 평소에 주장하고 다니던 ‘사진 찍기의 일상화’가 디카의 등장으로 빠르게 현실이 된 겁니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주문 - “찰칵”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고 있지만 정작 사진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작가는 안타까워했다. 실용적인 의도에서 도입된 디지털카메라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문제까지는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사진의 본래 의미와 가치는 기록(document)에 있다. 시간을 정지시키는 거의 유일한 장치가 바로 사진인 것.
“시간이라는 축을 염두에 두고 사진에 담다 보면 정말 좋은 사진을 찍는 방법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그저 피사체를 옮겨 담는 것에만 열광을 합니다. 내 삶의 한 부분을 사진에 담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사진은 도구나 기술이 아닌 자신만의 눈으로 만들어내는 또 다른 삶의 한 부분입니다.”
<찰칵, 짜릿한 순간>으로 그는 세 번째 사진 책을 냈다. 늘 그렇듯이 이렇게 사진 이야기를 책으로 풀어 세상에 내놓을 때마다 아쉬움이 가득하다. 그러나 이미 우리 일상 속 사진 문화는 오래 전 작가의 바람처럼 우리 삶 곳곳에서 순간 순간을 빛내주는 아름다운 요소로 자리 잡았다. 찰칵, 그 소리가 가져다 주는 명쾌함, 그리고 짜릿함. 그 순간, 우리의 인생이 조금 더 아름다워진다.
글 | 홍유진
사진 | 지유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