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라는 제목을 보면 엄청 파격적인 내용이 예상된다.
더 이상 살기 싫어진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넘길 셈인가? 하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들었다.
마흔 다섯의 방송작가 미무라는 결혼한 지 15년이 되는 서른여덟 살 아내 아야코와 열 살짜리 아들 요이치가
있는 가장이다. 췌장암. 그에게 내려진 이 사형선고는 그에게 남은 목숨이 약 6개월이라고 했다.
거물 탈렌트와 일을 하고 싶다거나 유행을 만들어내고 싶은 작가가 아닌 모든 사람이 웃고 행복해지는 그런
방송을 만들고 싶었던 미무라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아내의 남편 찾아주기'프로젝트를 기획한다.
사랑하는 아내가 홀로 남겨져 오랫동안 살아야하는 현실을 남겨두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함께 방송일을 했던 사람들을 찾아가 아내의 결혼활동을 시작한다.
오랫동안 독신이었던 여성 PD에게 결혼정보회사를 소개받고 걸어다니는 위키피디아라는 소리를 듣는
리서치의 달인 치타를 만나 아내의 남편감을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이 기막힌 프로젝트에 놀란 치타는 미무라가 시한부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을 듣고 승낙하게 된다.
자 아내의 새 남편이 될 사람은 어떤 사람이야 하는가.
일단 건강해야겠고 부부간의 대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어야 함은 물론, 화장실 휴지가 떨어지면
새것으로 갈아주는 자상한 면도 갖춰야 한다.
당연히 바람피우지 않아야 하고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중인 아들을 가르칠 정도로 박학다식했으면 한다니..
그야말로 완벽한 남편을 원하고 있다. 이런 남자가 있기는 한 걸일까.
치타의 노력으로 인테리어 회사의 CEO인 이토씨를 만나게 되고 자신의 아내와 결혼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한다.
이토의 입장으로 보면 완전 황당무개한 상황아닌가.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미는 것이 인생에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고 그런 가정을 꾸미는데에 아내인 아야코가 아주
괜찮은 여자임을 피력하면서 이토의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나는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미무라의 병이 오진이었음이 밝혀지고 죽음에 가까이 가서야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던 미무라가 새로운 각오로 가정을 이끌어가는 해피엔딩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죽음을 향해 가는 미무라의 몸이 점차 말라가고 이토와 아야코의 결혼이 성사되어가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저려왔다.
과연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아내의 새 남편감을 찾아 줄 남편이 몇이나 있을까.
'내가 죽으면 혼자 살지 말고 꼭 재혼하라'는 유언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경력과 인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남편감을 찾아주다니.
결국 남편의 병을 알게된 아야코와 아들은 미무라를 편하게 보내주기 위해 마음을 다 잡아 먹는다.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평생 최선을 다했던 미무라는 이제 자신을 사랑했던 사람들에 둘러쌓여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온다.
과연 내가 이런 상황을 맞는다면 미무라같은 결심을 할 수 있을까.
홀로 외로이 늙지 말고 좋은 동반자와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겨우 6개월 남은 시간을 이런 프로젝트에 쏟는 건
불가능하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이별을 준비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늘 자신의 방송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기를 바랬던 따뜻한 방송작가답게 이런 마무리가 참 작가 답다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 뜨거운 사랑은 식어버린 연인들이나 사랑보다는 의리로 살고 있는 많은 부부들에게 꼭 읽히고 싶은 책이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 가사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