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성북동 유근택 작가의 작업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사 : 수묵을 접하게 된 계기.
유 : 중학교 2학년 때 접하게 됐어요. 미술 숙제를 산수로 그려가게 돼서.
동양산수를 그려간 사람이 전교에서 나 한 명뿐이었어요. 그게 인기가
있어서 선생님이 보시더니 ‘너 동양화 할 생각 없냐.’
그래서 그 때부터 동양화를 시작하게 된 거죠.
처음으로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지필묵이었던 거죠.
사 : 수묵화를 처음 그렸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유 : 아무래도 재미있었으니까 했겠죠. 처음 동양화를 하게 됐는데
그 당시에 뭐 체험은 좋았죠. 그게 내 길인지는 몰랐죠. 그냥 좋았을 따름이지.
하다 보니까 길이 되어가고 있는 거죠.
사 : 선생님의 작품은 일상을 다룬다는 평을 많이 듣습니다.
주로 어떤 걸 그리시려고 노력하시는지.
유 : 아마 저에 대해서 일상을 다룬다고 말하기가 참 쉬운데.
사실은 내가 다루고 싶은 게 일상 자체는 아니에요.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최초로 거기서 소재를 삼지만 그거 자체만
다루고 잇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포함된 그걸 통해서 시간의 폭력성이라든가
시간의 흐름이라든가 또는 인간의 욕망일 수도 있고 욕망이 충돌하는
자극일 수도 있고 그런 개념으로 증폭시키고 있기 때문에
일상을 다루는 작가라고 규정짓기는 힘들어요.
우리가 살아가는 갖가지의 거기에는 여러가지 사건들도 포함될 수 있고
개입될 수 있는 여지를 일상 속에서 찾아내는 거죠.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누구나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 테면
누구나가 느끼는 불안적인 요소가 있을 수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슬픈 마음으로 풍경을 봤을 때의 그런 느낌들.
이를테면 남자친구한테 채여서 거리를 걸어갈 때의 막막한 풍경이라든가.
똑 같은 일상이고 누구나가 보고 체험하고 있는 것 같지만.
헤어지고 나서 바라보는 풍경은 너무 다른 풍경이라는 거죠.
또 그 개인한테는 그 순간에만 보이는 것이지 후엔 사라진다고. 잊어버리게 돼요.
나는 같은 풍경이지만 언뜻 보고 사라지는 것들 없어지는 것들을
환기시키는 장치로 이용한 거죠. 때로는 저런 느낌은 나도 옛날에 있었다라고
할 때도 있고 그런 가운데서 뭔가 산다는 문제를 다시 한번 반추할 수도 있고
조금 더 확장시키면 일반적으로 보는 풍경 속에는 여러 가지 역사적이고
시간이 가지고 있는 폭력적인 요소들도 개입될 수가 있는 그런 부분들이
있는 거죠. 아주 일상적인 풍경이라 할지라도.
사 : 그런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 하실 건가요?
유 : 뭐 그러지 않을까요?
사 : 화가로서 길을 들어선 게 언제인가요?
유 : 중학교 2학년 때부터니까 시간 꽤 됐지 않나? 뭐 연도가 중요하겠어요.
그림이라고 하는 매체에 대해서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된 건 대학 와서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시간으로만 얘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사 : 작품의 변천과정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해 주세요.
유 : 변천과정이라. 글쎄요. 작업이 항상 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 대학 들어가서는 산수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죠.
본질적으로 내가 관심 있었던 것은 산수도 그런 방법을 취했지만
조금 더 동양미술이라고 하는 것들이 좀더 인간적인 정서를 드러내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지금까지 고민하고 있는 거죠.
인간적인 정서라는 게 굉장히 어려운 말인데 동양화의 재료가 가지고 있는
특성들이 기존에는 굉장히 정신적인 재료를 강조하다 보니까
21세기의 감수성을 어떻게 재료로 끌어들일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죠.
지금도 마찬가지고.
사 : 동양화는 어떤 것인가요? 정의를 내려주신다면.
유 : 동양화는 이런 것이다. 참 어려운 질문이시네요.
동양화를 어떻게 규명할 수 있나. 그런 거창한 내용을 가지고 얘기하게 되면
굉장히 어려워져요. 물론 이제 동양화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있어왔던 주제였고
있어왔던 재료들이었기 때문에 전체적인 걸 얘기하기에는 어렵죠.
현재는 동양화라고 하는 개념도 서구적인 경향과 크로스된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동양화는 이렇다고 얘기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동양화라고 하는 것이 갖고 있는 역사성이 분명히 있죠.
산수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것들을 총괄적으로 보면 지필묵이라고 하는
재료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지고 있고 종이라든가 먹이라든가 붓을 이용한다는 것,
중심적인 재료였었고 그걸 통해서 정신사가 반영되는 회화인데.
어쨌든 지필묵을 사용하다 보니까 화면에서 나타나는 방법론도
많이 달라지는 거죠. 캠퍼스를 사용하는 방법과 거기서 나오는 미감하고
지필묵을 사용하는 미감하고 다르기 때문에. 가장 다른 것은
동양화의 특징은 먹이라든가 물이 종이에 흡수된다는 거죠.
흡수라는 개념이 캔버스하고 가장 다른 부분 중에 하나에요.
캔버스는 평면성에 의해서 존재하다 보니까. 반대로 동양화의 재료는
스며들게 만드는 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에요.
구도도 서양의 시각을 분석해내는 활원이기 보다는 동양은
더 공간적인 개념이라는 거죠. 이를테면 종이가 있으면 종이 안으로
물과 먹이 하나가 되는 개념이거든.
종이는 그림이 그려지게 되는 바탕이 아니라 그림이 스며들어가는
땅과 같은 거에요. 그런 개념이기 때문에 그래서 구도도 공간적인 뉘앙스를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위에서 올려다본다든가 걸어 들어간다든가
산 전체를 여행하듯이 그린다든가 평지에서 그리는 시각이 있다든가,
그런 시각체계가 발달했다는 것은 시선이 움직이는 거거든.
그건 뭐냐면 산 이라고 하는 대상이 있으면 내가 걸어가고 있는 개념이거든.
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데 현대에 와서는 그런 지점도
서양도 그런 일차원적인 개념을 탈피한 작가들이 많이 있어요.
점점더 가까워지고 있는 거죠.
사 : 흔히들 ‘여백의 미’라고 하는데 의미가 뭔가요?
유 : 안 그렸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남겨두는 것인데,
여백이라고 하는 개념이 굉장히 중요해요. 여백을 어떻게 두느냐에 따라서
그림에 생기가 있다 없다, 공간이 생성되고 죽고 답답하고 밀집되어있기도 하고
산만하기도 하고 이런 것을 유도해주는 것이 여백의 역할인데.
그 여백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하게 그리지 않은 부분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해요.
사실 그린 부분조차도 하나의 여백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중요한 건 종이라고 하는 것이 갖고 있는 근본적인 공간 개념이
성립되어 있기 때문에 작가가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가
더 중요한 관건이 되는 것이고 여백이라고 하는 것이 그런 식으로
해석되었을 때는 작가의 성향 몸 정신 그런 것들이 반영되는 공간.
그런 것들이 여백의 의미로 확장될 수 있는 거죠.
사 : 보통사람들은 그림을 잘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작가의 의도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지녀야 할 올바른 감상방법이 있다면요?
유 : 일단 자기가 보는 대로 보세요. 보는 대로 봐야지 어쩔 거야.
느끼는 대로 느끼고 보이는 대로 보세요. 중요한 건 자기가 보면서
관심을 갖고 보는 거죠. 이 작가가 나이가 몇 살인가. 어떤 생활을 했는가.
이 작가가 어떤 삶을 가지고 있는가.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이 작가가
어떤 작업을 해 왔는가. 그런 것에 관심을 갖고 보는 게 중요한 것이지
어떻게 봐야 된다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관심에 있는 것이지 방법에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결국 본다는 행위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죠.
사 : 대부분의 화가들도 일맥상통하게 그림을 많이 보라고들 말씀하시더라고요.
어떤 평론가는 그림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줄 때까지 보라고 하시던데.
유 : 그림이 말을 어떻게 걸어줄 때까지 봐야 돼요, 그거?
너무 부담스럽지 않게 본다는 것을 즐겨야 되는 거지, 느낌이 올 때까지 봐라
면벽하는 것도 아니고 그림이 무슨 말을 한다고.
사 : ‘먹의 색깔은 검은 색이 아니다 먹색은 그냥 먹빛일 뿐이다.’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또 수묵화에서 가장 중요한 게 먹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먹의 깊은 색을
어떻게 끄집어 내는가가 아닌가 생각이 돼요. 먹의 매력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유 : 얘기한 것 중에 일맥상통하는 게 있는데 먹이라고 하는 걸 얘기하면
상당히 길어져요. 보통 블랙이라고 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기 때문에
같은 검정색인 것 같지만 서양에서 쓰여지고 있는 블랙이라는 개념하고는 다르죠.
칸딘스키가 얘기하는 블랙은 죽음이라는 상징하지만 동양에서의 먹색은
먹빛이라고 하는데 먹빛은 현색이라고 하는 게 더 편해요.
현색은 죽음이라기 보다 우주에 더 가까워요. 텅 빈 공간일 수도 있고
우주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는 색이라고 볼 수 있다고.
실제로 조선 시대 선비들이 봤던 하늘색을 현색이라고 했어요.
지금은 우리가 푸른색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과학적인 색채 체계에
의해 길들여졌기 때문에 그렇게 읽혀지는 것인데 옛날 그런 체계가 없었을 때는
현색이라고 불렀다고. 무슨 말이냐면 그걸 우주라고 하는 거야. 우주.
하늘이 우주인거야. 그런식의 개념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먹이라고 하는 자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는 많이 달라요. 하지만 서양에서 블랙의 개념은
아까 얘기했던 칸딘스키의 이론처럼 굉장히 뭐랄까 죽음이라든가
그런 식으로 구분을 지어놓죠. 동양의 먹빛은 좀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사 : 한중교류를 많이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작업들이 지니는 의미는?
유 : 지금 한중수묵전 전시를 하고 있으니까 가서 보세요. 제 작품도 있으니까
찍으셔도 되고. 또 금호미술관에서 영상작업을 발표하고 있어요. 그것도 좋고.
점점 한국 중국 일본 아시아권에 대한 이를 테면 세계가 무슨 글로벌리즘이라고
하는데 그럴수록 아시아는 아시아로서의 색채, 점점 교류가 많아지고 있어요.
중국이라든가, 한국이라든가, 화랑 미술제도 국제미술제도 한국 중국 일본을
같이 묶어서 한다든가, 작가의 교류도 그게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중국이 점점 경제가 좋아질수록 그런 현상이 더 많아지는데
어쨌든 그런 교류를 가짐으로 인해서 뉴욕이라든가 프랑스라든가 중심이 있었어요.
미술의 중심이. 미술 하면 옛날에는 프랑스 파리가 미술의 중심이었고
중심이 자금에 의해 미국 뉴욕으로 옮겨지면서 바뀌었다고.
그러면서 지금은 점점 중심에 대한 논리가 사라졌어요.
오히려 주변과 중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상황에서, 지금은 오히려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위치, 위치에 대한 자각 그런 담론이
많아지다 보니까 오히려 아시아성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에요.
글쎄 뭐 일단 일본 쪽하고는 전시를 했고, 점점 더 확장을 시켜나가야죠.
사 : 작업량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 어떠신지.
유 : 다작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많이 망치는 것은 사실이에요.
많이 태우고. 그리고 작품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아요.
대체적으로 많이 태우고 많이 그리는 것 중에 한 점 두 점이 나오는 거지.
사 : 자화상을 많이 그리신다고 들었는데요.
유 : 누가 그래요? 자화상은 누구나가 다 하죠.
사 : 특히 전시회 하실 때마다 꼭 한 작품씩은 내놓는다고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유 : 나니까. 내가 주체니까.
사 : 자화상을 보시면 어떤 느낌이 드세요?
유 : 별 느낌 없어요. 그림으로 보기 때문에. 하나의 충동으로 작업할 때가 많기 때문에.
사 : 작품을 할 때 한계를 느끼신다면
유 : 항상 한계점을 느끼죠. 또 한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방법론이 나오기 때문에.
사 : 그건 어떤 한계인가요?
유 : 그건 얘기하기가 곤란하고 길어지죠. 예를 들면 지금 미디어라고 하는 매체,
미디어시대에 있어서 수묵이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런 부분에 있어서 굉장한 고민을 하게 되죠.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나 이럴 때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죠. 그냥 먹이라는 그 자체가 그 시대를 대변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에. 그런데 지금은 이것 말고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너무 많거든요. 그렇지 않나요? 인터넷부터 시작해서,
정보화 사회에 들어와있는 이런 상황에서 과연 지필묵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나.
그렇다고 옛날에 먹 갈면서 편지를 지필묵을 사용했던 시대에서
지금 누가 펜도 쓰기 싫어서 문자로 날리고 그러는데 과연 쓴다 라고
하는 것이라든가 그린다고 하는 것, 그것도 지금 힘든데
하물며 먹을 갈아서 써야 하는 지필묵이라고 하는 게 그걸 사용해야만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런 부분은 굉장히 생각을 해야 할 부분이죠. 실질적으로.
그게 또 예술에 영향을 미치는 거기 때문에 과연 그게 이런 시대에 있어서
지필묵이 뭘 할 수 있는가.
사 : 구체적인 작품세계가 생긴 시기는 언제인가요?
유 : 작품 세계가 생겼다라고 하는 게. 지금도 그게 질문이에요 사실.
내 세계가 생겼나? 질문을 던져요. 어떤 때는 항상 원점인 것 같기도 하고.
옛날 작업에서 지금은 도저히 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내가 지금 진보한 건가. 그건 아니란 말이야. 젊을 때의,
물론 지금도 젊지만. 어쨌든 그 때의 작업들은, 비록 그 때는 해답이 없이
작업하는 것 같았지만 그 때의 힘을 능가하지는 못하거든. 기묘하게도.
그 때도 최선을 다하고 지금도 최선을 다해요. 그렇다면 진보한 건 아니야.
내 세계가 만들어져가지고 일필휘지하면 바람이 일고 천둥치고,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건 아니란 말이죠. 어느 날 갑자기 뛰어난 것도 아니고.
결국 그 순간순간을 최선을 다해 사는 거죠. 그게 세계지.
정신적으로 보면 아무래도 대학 때라든가, 대학원 때에 비하면 조금 더
생각이나 시야는 넓어졌을지 몰라도 시야가 좁다고 해서 그것이
나쁜 작업은 아니라고. 일단 내 몸은 만들어졌다는 거죠.
그리고 그 나이에 최선을 다 하는 게 답인 것 같아요. 그럴 수 있는 게 또 세계고.
사 : 가르치는 일을 하고 계신데 배우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유 :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대로 놀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너무 규칙 같은 것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최선을 다해서 미친 듯이 하는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이것 저것 계산해서 하기에는. 특히 젊은 날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때가 많기 때문에. 물론 나도 젊지만(웃음).
그런데 그 때 젊은 날의 눈에는 내가 뭘 하는 지를 몰라요.
그래서 고통스러운 건데, 그래서 두렵고. 그런데 두렵다 하더라도
자기가 최선을 다하면 길이 조금씩 열리게 돼요.
그런 형국이기 때문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다른 걸 하더라도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어요.
사 : 회원님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유 : 이렇게 만나뵙게 돼서 반갑고요. 지금 전시를 시립미술관에서
한중수묵전을 하고 있으니까 와주시고. 반갑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유근택 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색의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