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길, 느린 걸음, 그 스물 한 번째 이야기
스페인, 모로코, 포르투칼을 가다 3
북아프리카 모로코를 가다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지만 아프리카라기보다는 유럽풍이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지리적 위치로 열대의 아프리카와는 거리가 멀다. 스페인 남쪽의 지중해 해안 마을 말라가(피카소의 고향)와 언덕 위의 하얀마을 미하스를 거쳐 도착한 탕헤르 항구에서 페리호를 타면 2시간이 채 안 걸리는 지척의 대륙이다. 가는 길에는 3백여 년을 영국령으로 있는 작은 지브랄타 섬이 보인다. 30㎞의 터널로 요새화 된 영국 해군기지다.
우리나라의 7배라는 모로코는 카사블랑카와 페스로 잘 알려진 곳.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아프리카 전진기지로 1927년에는 미국, 스페인, 프랑스 등 6개국이 지배를 한 곳이기도 하단다. 공용어는 아랍어와 불어. 지리적 위치로 슬픈 역사를 안고 살아가는 약소국의 처지가 공감된다.
세계에서 2번째로 큰 핫산 사원과 광장
![d2_s-모로코의 밀밭은 유명하며, 이곳 빵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1]..jpg](/data/file/23_01/201006071356521885.jpg)
모로코의 밀밭은 유명하며, 이곳 빵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전통복을 입은 베르베르인
이곳은 산악 유목민인 베르베르인이 원주민. 7세기 말부터 아랍인이 지배를 하였다고 한다. 남쪽에 사하라 사막이 시작되는 이곳은 방대하고 비옥한 농토를 갖고 있다. 밀, 보리 농사가 주 작목으로 질이 좋은 밀은 미국으로 수출되며, 채소, 과일 등은 유럽으로 수출하고 지하자원도 풍부하다. 그런데도 실업률은 50~60%, 아직도 7: 3의 소작농이 대세라고 한다.
핫산 탑 광장
이슬람 국가인 이곳의 수도 라바트에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크다는 핫산 탑과 광장이 눈길을 끈다. 1957년 모하메드 5세가 독립, 핫산 2세가 1987~ 93년까지 건설한 대규모의 회교사원이다. 대서양의 노을을 볼 수 있는 이곳의 대리석 광장은 8만 명에서 10만 명까지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다고 하며 사원도 2만 5천명을 수용한다고. 중동 아랍국가의 도움을 받아 지었다는 이 사원은 웅장하고 아름다우나 실제 이곳을 채울 정도의 대규모 인원이 모인 적은 없다고 한다. 백성들은 힘들지만, 이렇게 국력을 쏟은 건축물이 후대에 역사 속 유적으로 남으니 아이러니다.
하얀집 ‘카사블랑카’의 향수
아무튼 모로코가 세계인에게 알려진 것은 영화 ‘카사블랑카’ 때문일 것이다. 1943년 제2차세계대전을 피해 유럽을 탈출하려던 사람들은 바로 이곳 카사블랑카에서 여권을 구해야 했단다. 대서양의 유명한 아인디아 해변의 휴양지인 이곳은 양파의 별장지대. 하지만 언덕 위의 양파지대는 14, 15세기 무렵 원주민들이 소해적선들의 출몰을 피해 살았던 곳이다. 이후 해적선들의 주둔지가 되면서 16세기 중반 포르투갈이 함대를 보내 언덕 위의 하얀지붕 마을을 초토화 시켰다. 이후 300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한다. 다시 마을이 형성되면서 석회로 지은 하얀지붕의 마을을 보고 스페인 사람들은 ‘카사블랑카(하얀집)’로 부르기 시작했단다.
프랑스 지배를 받으며 상업, 항구도시로 발전한 이곳은 1956년에는 60만 명이 살았다고 하며, 유럽으로의 진출입이 가능한 항구도시 탕헤르를 능가하게 되었단다. 북아프리카 4번째 항구도시로 자리잡은 이곳은 험프리 버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애절한 사랑 연기가 큰 울림을 준 카페 카사블랑카가 배경. 실제 그런 카페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영화 속 카페를 재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카사블랑카의 향수를 달래준다.
카사블랑카의 바닷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참전을 안했고, 유럽인이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가려면 제3국인 아프리카 카사블랑카에서 여권을 구해 리스본을 거쳐 미국으로 떠나는 것이 코스였다고 한다. 실제 자유를 찾아 가려는 유럽인들의 탈출구가 되었던 카사블랑카는 자유와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긴박한 열기로 뒤덮였고,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사랑의 자취는 현대인에게 진한 감동을 주었다.
1960년대 이후 제1도시로 부상한 카사블랑카의 해안에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대서양의 파도를 배경으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상쾌했다.
천 년 전 그대로인 중세도시 ‘페스’
천년을 이어 온 골목길은 미로처럼 뻗어 있다
중세도시 페스의 시장
페스 두건 가게의 멋쟁이 청년
카사블랑카에서 자동차로 6시간 정도 떨어진 중세도시 페스는 789년에 조성돼 809년 완공되었다고 한다. 1,200여년이 넘는 이 도시 내부는 미로처럼 얽혀 있고 일부는 받침대를 덧대어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옛 모습 그대로 각종 상거래가 이뤄지는 곳이다. ‘페스’란 괭이를 뜻하는 아랍어로 이곳을 조성할 때 땅에서 금곡괭이가 나왔다고 한다. 성안과 성밖으로 구분되며 성밖은 신도시다. 50만 인구가 거주하는 페스는 도로 없이 골목으로 내부가 형성되어 있다. 9,400여개의 미로골목이다. 가죽공예, 청동, 옷감 등 수공예의 왕국이다. 큰 공장이 없는 이곳은 14개의 성문과 300여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으며 곳곳에 아름답게 만들어진 공동수도가 눈에 띈다. 공동우물과 빵집, 사원, 학교 등 필요한 것은 다 있는 자급자족의 도시다.
다양한 천연염료로 가득한 염색공장
![d2_s-천연염색공장에서는 맨발로 작업해도 피해가 없다고 한다[1]..jpg](/data/file/23_01/201006071351039324.jpg)
천연염색공장에서는 맨발로 작업해도 피해가 없다고 한다
![d2_s-가난한 마을의 안테나 , 통치수단의 하나라고 한다[1]..jpg](/data/file/23_01/201006071351466115.jpg)
가난한 마을의 안테나 , 통치수단의 하나라고 한다
세계 최대의 미로도시로 소문난 이곳은 뛰어난 치수시설로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단다. 당연히 나귀가 미로의 교통수단이다. 페스를 건설한 알고란 왕국의 수도인 이곳은 11세기 크게 발전하였다. 천 년 전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 속의 중세도시다. 특히 테너리(천연가죽염색공장)가 유명하다. 천 년 전 방법 그대로인 염색공장은 골목의 2층으로 올라가 내려다보게 되어 있다. 수많은 천연염색을 담은 통들이 빽빽이 줄지어 있다. 각종 꽃잎이나 풀잎, 비둘기똥 등으로 채워진 염색통은 일꾼들이 직접 맨발로 들어 가 작업을 한다. 전혀 피부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관람객들에게는 허브 풀잎 하나씩을 나눠준다. 공장주변의 담장 위로는 위성안테나가 빼곡하다. 가난한 나라에서 텔레비전은 통치수단의 하나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건물사이의 해넘이
모로코의 또 다른 볼거리는 카스바 마을. 오아시스 마을인 아이토벤 하우 마을은 전형적인 카스바 마을로 흙으로 지은 카스바에 70대를 이어 살았다는 유서깊은 곳이다. 요새, 성채로 불리는 카스바는 도시로 떠나는 사람들 때문에 사라져 가고 있단다.
세계적인 중세도시로는 체코의 체스키크롬로프, 모로코의 페스, 중국 운남의 려강, 스페인의 똘레도, 꼬르도바, 그라나다, 페루의 쿠스코 등을 꼽는다. 우연히도 위 지역을 모두 볼 수 있었다. 그 중에도 페스는 가장 오래된 도시로 꼽힌다. 중세로의 시간여행은 오래된 미래를 만나는 감동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