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윤영이라는 여자가 있다.
가난을 운명처럼 안고 태어나 산동네에서 자란 여자.
개천에서 용났다는 소리를 듣는 여동생 민영이 있고 준영이라는 남동생이 하나 더 있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도 약 쓸돈이 없어 고통스럽게 죽어간 아버지와 차라리 얼른 죽어버리라고
악을 쓰는 엄마가 싫어 고시원에서 만난 남자와 눈과 배를 맞춰 아이를 하나 낳았다.
아무리 기를 써봐도 저주스런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해 발버둥을 치던 민영은 결국
쉽게 돈을 버는 방법으로 인생역전을 꾀하지만 가족들의 등골을 빼먹고 도망쳐버렸다.
지리멸멸한 인생들.
공무원 시험만이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하고 책상앞에만 앉아있는 무능한 남편.
여름에는 한증막이고 겨울이면 사방으로 찬바람이 몰려드는 옥탑방에서 윤영은 남편의 급제만을
유일한 희망으로 여기고 버틴다.
하지만 삶은 간단치 않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끊임없이 돈이 필요한 것.
결국 강가에 자리잡은 왕백숙집에 취직을 하고 닭도 나르고 자신의 몸도 판다.
맛있는 백숙만 파는 줄 알았던 왕백숙집은 사실 비밀스런 유곽과 다름이 없다.
별채에 오는 손님들은 닭보다 섹스에 더 굶주린 동물같은 인간들이다.
외진곳에 식당을 짓고 고전하던 왕사장은 기어이 자신의 아내를 사내들한테 넘기고야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조강지처를 몸을 다른 남자에게라도 던져 돈을 벌어야 했다.
'왕백숙'집은 그러한 곳이다.
간암말기에 걸린 남편을 구하기 위해 병원비라도 벌어야 하는 모진 아내의 밥벌이터.
더러운 비밀영업을 눈감아 주는 비리 경찰의 놀이터.
자신의 엄마를 팔아 돈을 번 아버지를 협박하는 아들녀석의 못난 복수극이 벌어지는 곳.
그리고 더러운 욕정의 찌꺼기를 배설하는 인간들의 추악한 은신처.
처음만 어려웠다고 했다. 쏠쏠히 들어오는 돈에 저절로 다리가 벌어지는 현실이 못견디게 싫었던 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자 밖에서도 손님을 만났다.
여자 대신 아이를 돌보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붙들지도 못하는 남편이 증오스러웠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졌다.
올가미에 걸린 짐승처럼 끈적거리고 냄새나는 삶은 희망을 품지 못했다.
아내가 백숙집에서 닭만 나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침묵하는 남편.
결국 화려한 비약을 꿈꾸다 세상을 버린 동생들.
그런 인간들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윤영.
모두 비겁하다. 읽는 내내 가슴에 큰 바위 덩어리가 얹힌 것처럼 무거웠다.
지금도 물 비린내가 흐르는 강가 어딘가에 백숙집에서는 수많은 윤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왈칵 닭냄새가 비위를 건드리는 것만 같다.
'왕백숙'집은 곧 우리가 사는 이 곳...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곳이기 때문에 서럽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부러진 다리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남편을 위해
핏줄이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등골을 빼먹는 엄마와 남동생을 위해
윤영이는 그만두었던 '왕백숙'집을 다시 찾아간다.
더러운 사내놈들의 욕정을 받아내며 윤영은 제 몸을 뜯기는 어미거미처럼 그렇게 시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버티다 보면 '희망'이 찾아와줄까.
이렇게 한 여자의 이름을 세상에 꺼내준 것만으로 희망의 불씨가 되어 주길 간절하게 기도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