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다니..'하는 싯귀가 내귀에 울리는 것 같다.
2006년 중국에서 출간된 후 그해의 베스트셀러가 되고 드라마로 방영되어 국민들의
엄첨난 인기를 얻었다는 화제의 밀리언셀러 '보보경심'의 마지막 장을 덮은 소감이다.
청나라의 번영기를 열었던 강희제와 옹정제 시대를 무대로 피를 나눈 형제들이지만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왕족들사이에 던져진 천방지축 약희의 삶을 들여다보니 미래를 알았던
현대적인 여성이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는 것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스물 다섯 살의 장효는 심천의 한회사에서 퇴근한 후 교통사고를 당하고 강희 43년
(1704년)열 세살 만주족 소녀 마이태 약희의 몸으로 깨어나게 된다.
팔황자의 측복진(첩)인 언니 약란의 동생으로 만주족의 자유분망함과 천방지축 말썽꾼이었던
약희의 몸을 빌어 과거의 시간으로 오게 된 약희는 다행스럽게도 현실에 빨리 적응하게 된다.
하지만 300년이란 시간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자금성안의 강희제는 세계문물을 받아들이는 선각자이긴 했지만 자신이 낳은 서
른 다섯명의 왕자에게
권력을 이양해야하는 왕의 심경이 잘 그려져있다.
어린나이에 청왕조의 왕자들과 교분을 맺으면서 사랑없이 부부가 된 언니와 팔황자의
사이에서 연민을 느끼게 되고 형부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그녀의 자유분망함은 사황자를
비롯하여 심삼황자와 십사황자에 이르기까지 미묘한 감정이 오고가는 장면이 내 맘을 흔든다.
드라마로 형상화된 황자들의 모습을 보니 누구 하나 아깝지 않은 황자가 없기 때문이다.
거대한 자금성에 강희제의 궁녀로 입성한 약희는 타고난 영민함으로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지만 그녀의 타고난 아름다움은 황자들의 마음을 설게게 한다.
왕족으로 여러여자를 거느린 것이 아무렇지도 않았던 시절 그녀의 마음을 흔든 왕족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언니의 남편이기도 한 팔황자는 첫 남자로서 그녀를 흔들게 된다.
아무리 고귀해도 정해진 운명을 거스르기 힘들었던 그 시대를 지나오면서 약희는 막연하게
알았던 미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사랑했던 황자들에게 불행한 과거가 닥쳐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녀의 힘으로 역사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도 역사의 축을 돌려놓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잘생기고 멋진 황자들 대부분이 그녀를 사랑하고 갖고 싶었지만 미래를 알았던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미래의
옹정제, 사황자였다. 하지한 그녀는 그를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옹정제가 저지를 피비린내나는 형제들의 싸움을
말리고자 했을 뿐, 자신의 사랑은 아니었다.
당시 중국이 처한 정치적인 상황이나 권력을 쟁취하려는 야욕을 알면서도 결국은 희생되어야 했던 가엾은
인물들을 대표했던 약희를 보면서 시대에 맞는 인물이 아닌담에는 고통을 지켜봐야하는 아픔이 너무도 잘그려져있다.
약희는 중국 최대의 왕을 보필한 궁녀였지만 권력의 한가운데서 불행한 여자로 숨져야 했던 슬픔을 잘 그리고 있다.
다만 그녀의 젊고 발랄한 모습이 늘 겹쳐져 최악의 불행은 아닐거라고 조마조마 했던 마음이
사랑했던 사황자를 끝내 만나지 못하고 숨져가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음을 고백하지 않을수가 없다.
아무리 똑똑한 여성이라도 시대를 잘못 타고 나니 어쩔수가 없는 현실에..쓸쓸히 숨져가 약희가 떠올라 아픈 마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