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집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온통 똑같이 생겨먹은 주택들이 밀집한 평창동 골목을 몇 번이나
배회하고 나서야 목욕탕에 다녀오는 작가를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이윽고 도착한 작가의 집은 작고 어여쁜 뜰이 큰 창문너머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렇게 소설 <나마스테>의 작가 박범신 선생과의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신우, 카밀을 만나다.
박범신, 이주노동자를 만나다.
사람은 사람인데 뭐랄까, 상처입은 커다란 짐승 같은 것이
내 출현에 놀란 듯 힘겹게 상반신을 일으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마까지 뒤덮고 내려온 더벅머리 밑의 얼굴색은 온통 청동 빛이었고
팔 한 쪽은 목도리 같은 걸로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 부드럽고 고요한 광채였다. 한참 만에 그가 간신히 말했다.
“세, 세, 세상이…… 화안……해요…….”
그가 처음 이주노동자문제를 접한 건 뉴스를 통해서였다.
이주노동자 고용법이 바뀌면서 다소 혼란스러웠던 2003년,
‘다르카’라는 스리랑카 청년이 달려오는 전철을 향해 뛰어들었다.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 어떻게 젊은 사람이 잘 살아보겠다고
우리 나라에 왔는데 저렇게 자살을 했는가.
Cctv에 잡힌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서,
그래서 부의봉투를 들고 찾아갔지.”
당시 그는 한겨레에 연재할 순애보적 러브스토리를 구상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달려오는 전철을 향해 부나비처럼 뛰어들던 그 스리랑카 청년이
쑤욱 하고 다가온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하나가 되었다.
이주노동자와 한국여자의 순애보적 러브스토리, 소설 속 그 운명적 만남은
카밀의 말대로 세상을 ‘환하게’하는 것이었다.
순애보, 그 이상적인 사랑이야기에 ‘이주노동자’라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이야기가 불쑥 들어오다 보니
소설은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인 양면성을 지닌다.
그러나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는 운명적 사랑이야기는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함으로써 현실감을 가지고 네팔 청년 카밀이
사회운동가로 성장하는 모습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된다.
햑바는 2년짜리 대학에서 컴퓨터 배웠어요.
영어도 잘하고 자격증 두 개나 있어요. 그렇지만 한국사람들,
햑바를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네팔 사람이니까요. 자기들하고 다른 종자니까요.
다른 종자를 보면 괜히 화가 난대요. 햑바 회사 관리 부장이 한 말이에요.
사실 이주노동자문제는 그전부터 있어왔고,
지금도 그 심각함은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소설 속에서
카밀이 하는 말들이 그리 새롭게 여겨지진 않는다.
새롭게 인식되는 게 있다면 그건 카밀 자체이다.
<나마스테>의 주인공 카밀은 ‘아름답다’.
이주노동자라고 아름답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이 없지만,
이주노동자 네팔 청년에 대한 아름다움의 인식은 분명 신선한 충격이다.
그리고 한국여인 신우는 그런 카밀의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박범신은 소설에서 직접적으로도 이주노동자를 차별하는 현실을 꼬집고
있지만 한국여자의 일방적인 사랑을 받는 카밀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간접적으로도 이주노동자의 존재를 한 단계 격상시킨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며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까지다.
그러나 작가가 아닌 현실 속 박범신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볼까.
약간은 장난스러운 마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
본성의 회복이라고 하는 것이 중요하지.
자기 정체성에 따르는 삶을 살아야겠지.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지 내가 알 수가 있나…….”
그의 너털웃음을 보며 생각한다. 그는 천상 작가다.
나마스테는
안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어서 오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해지세요, 다시 만나요 등의 광범위한 뜻을 가진 네팔 말.
또한 소설 <나마스테>는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피폐해진
인간성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단 몇십 년만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뭔가가 부족하고 불만스럽다.
잘 산다고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작가가 강조하는 것이 인간 본성의 회복이다.
“이주노동자문제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그것이
곧 우리의 문제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지.
이 소설은 그거예요. 본성에 따른 사랑의 회복. 결국은 사랑이지.
내가 쓴 이야기를 읽은 어떤 독자가 울었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생각했어. 사람이 사랑 때문에 우는구나. 이게 희망이지.”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는 이렇게 세상의 희망을 점치는 것이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미 ‘나마스테’하고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도 되고 행복하세요,도 되는 말.
첫 인사가 그렇게 시작하면 그 이후엔 더 이상 나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만 같다.
이주노동자도, 또 우리도 더불어 잘 사는 세상.
자기 본성대로 마음껏 누리고 사는 세상.
소설 속에선 안타깝게 끝이 났지만 소설 밖에선 그것이 뒤바뀌길 기대해본다.
그리고 작가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독자가 ‘소설’을 통해 소설가를 바라봐 주기를.
by 화성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