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설화문학의 대가인 유몽인(柳夢寅)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이런 재미난 얘기가 실려있다. 한 선비가 거리에서 나귀를 타고가는 쭉쭉빵빵의 퀸카를 만났다. 단번에 눈에 뿅 간 선비는 연모의 정을 즉석에서 시로 적어 여인에게 건네었다.
心逐紅粧去 [심축홍장거] 마음은 미인을 따라가고 있는데
身空獨倚門 [신공독기문] 몸은 부질없이 문에 기대어 섰네
여인도 그 추근댐이 싫지 않았던 듯 즉시 화답을 보내왔다.
驢嗔車載重 [려진거재중] 노새는 짐 무겁다 투덜대는데
却添一人魂 [각첨일인혼] 그대 마음 그 위에 더 얹었네요
한 마디로 ' 너에게 필이 팍 꽂혔다'는 선비의 작업성 멘트에 ' 나도 네 마음 접수했으니 우리 한 번 잘해보자'는 여인의 화답인 셈이다. 이처럼 한순간에 넋을 빼앗겨 사랑에 빠지고 싶은 게 모든 남녀들의 로망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보다는 내면의 멋이 더 중요하다고 고상을 떠는 사내들도 사랑의 시작은 눈에서 시작된다는 데엔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요즘 젊은 남자들이 여자를 고르는 키워드는 착한 가슴이다.신문이나 TV를 봐도 그렇고 인터넷 서핑을 해도 착한 가슴,착한 몸매 타령 일색이다. 남자들은 착한 가슴을 찾아 거리를 헤매고 여자는 착한 가슴이 되려고 성형외과를 새앙쥐 풀방구리 드나들듯 하는 게 요즘의 세태다. 한데 여기서 말하는 착한 가슴은 어떤 가슴을 말하는 것일까? 여러 사람을 붙잡고 물어봐도 그 해석이 제각각이다.
우리는 보통 '착하다(善)'고 하면 옳은 것(right). 좋은 것(good), 인격적 착함(morally)을 떠올린다. 선(善)이라는 한자가 온순한 양(羊)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듯이 선이란 착하고 어질고 고운 마음씨를 뜻한다. '착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어질다"란 형용사라고 나온다. 형체가 없는 언행이나 마음씨를 가리키는 착하다란 형용사를 여자의 가슴을 이르는 말로 쓰는 것은 어법상은 맞지 않는 표현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어법을 따지자는 것은 아니다. '슴가골'이나 '얼짱', '몸짱' 같은 신조어를 무수히 만들어내는 탁월한 조어능력을 갖춘 게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던가. 그야말로 대한민국에서 안되는 게 어디 있는가.
어느 아기 엄마가 란제리 코너에 가서 "젖이 불어서 예전의 브리지어가 맞지 않아서 그러니 맞는 것 좀 골라 달라" 고 했단다. 그랬더니 그 종업원은 얼굴까지 붉히며 한사코 젖이 아니라 가슴이라고 몇 번이나 교정을 해주더란다. 어찌하여 아기를 기르는 생명줄인 '젖'은 부끄러운 말이 되고 그 자리를 '가슴'이란 말이 차지했을까? 옛 속담에 '일가 못된 것은 항렬만 높고, 계집 못된 것은 젖탱이만 크다'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옛사람들은 커다란 가슴을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던가 싶다. 미루어 짐작키로는 요즘 세간에서 화자되는 착한 가슴이란 크고 육감적인 유방(가슴)을 이르는 말이다. 수컷의 본능을 자극하는 가슴을 '착한 가슴'이라고 에둘러 말하는 듯 한데 그 역시 나만의 생각일 뿐, 착한 가슴에 대한 정의는 이 세상 남자들의 숫자와 같지 않을까 싶다.
결국 착한 가슴은 좋다, 나쁘다의 옳고 그름이 아닌 좋다, 싫다의 호오(好惡)의 기준인 셈이다. 아이를 건강하게 길러내는 소중한 생명줄이 아닌 남자를 유혹하는 성적 매력으로 인식전환이 이루어지면서 생격난 '착한 가슴'을 탓하고픈 생각은 없다. 착한 가슴의 여자를 만나고자 한다면 남자들 역시 착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 착한 가슴의 여자가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라면 착한 남자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남자일 것이다. 옛말에 남자들은 볏짚 한 단 들 힘만 있어도 여자를 마다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은 여자는 영원한 남자의 로망이자 도달해야 할 그 무엇이란 이야기에 다름 아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바래지 않는 꿈, 그것이 남자를 남자이게 하고 여자를 여자이게 하는 것이리라.
칠순을 넘겨도
팔순을 넘겨도
감추고 싶은 곳이 있다면
세상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분홍 꽃 팬티 입고 사는
내 어머니의 여자는
여전히 핑크빛 무드
- 정일근의 '분홍 꽃 팬티' 중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