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인가.
외사촌이 결혼하는 자리에 갔을 때가.
그 자리에서 엄마는 30년 만에 만나는 친구들과의 재회를 가졌다.
이젠 얼굴 가능 주름이 더 많아져서 청년 시절의 앳된 모습들은 온데간데없었지만 그들은 [친구]라는 이름만으로도 행복해 보였다.
그들의 아들딸들이 얼마나 장성했는지
그들의 안부가 그간 어떠했는지
지금은 어디서 사는지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 이렇게 수십 년이 흘러도 만나게 되는구나 하고.
까막득이 먼 옛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조카 결혼식하는 것은 뒤로하고
그렇게 만나게 된 친구들과 이야기 봇다리를 풀고 묶고 하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그중 한 친구가 명함을 내밀며 나 이런 일을 하고 나 이런 사람이라는 듯 내밀자 주변에 몇은
[야야 가시내야 니 잘됐는갑다잉. 이런 명함도 있냐 나는 살기가 바빠서 그런 것도 모린다야.]
[워메 나는 구갱도 몬해본 것이네왜]
한 사람씩 명함을 받아들며 감탄하듯이, 혹은 대견다하는 듯이 기꺼워해주는 것이, 진심으로 그래주는 것이 오십 중반을 넘어가는 [친구]들에게서 비춰졌다.
그들이 모두 오빠라고 부르는 큰외삼촌이 그랬다.
[야야, 명함이 무신 소용이냐. 거 종잇조각 한 개에 지나지 않는 것이여. 나이 묵어봐라잉? 명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
외삼촌은 들고 있던 맥주 잔을 들어 한 호흡에 들이키고 말을 이었다.
[나가 낼모레먼 육십이여. 그래도 모임에 가면 막둥이재이? 그래도 안 가면 찾아. 그것이 명함이여. 나 얼굴이 명함이고, 나가 살아온 세월이 내 주손 거여. 명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여.]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됐었다.
6·25가 발발하기 전에 태어나 그 전쟁을 몸소 겪고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입지도 못했던 탓에 150센티미터를 겨우 넘는 키를 하고 평생을 살아온 외삼촌.
아이들이 당신 키의 두 배에 달할 때
[그래도 나가 속은 큰갑어야!] 하고 농담을 던지던 삼촌.
손자장면 기술을 배워 50년 동안 여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뒷바라지 했던 외삼촌.
지금껏 주변에 내로라하는 회장도 많고, 간부랍시고 던지던 이들의 명함이 대바구니에 쌓이고, 또 쌓였지만 그것은 금세 바뀌더란 말을 잇던 외삼촌.
사인용 식탁 의자에 앉으면 깊숙이 아래로 꺼지는 늙은 외삼촌의 말을 듣고 돌아와 나는 내 명함을 내려다 보았었다.
언젠가 나도 친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내 명함을
지금의 내가 앞으로도 나일 것처럼, 아니 미처 생각지도 않은 채
무심히 내밀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쓰리게 하지나 않았을까. 혹은
소외의 구석에 들어앉게 하지는 않았을까.
그 뒤로 명함을 섣불리 내놓는 일을 삼가고 그냥 먹고살지뭐.
하는… 말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외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친구가 결혼을 한다.
어른들의 예스러운 친구들처럼 되기까지 아직 멀다.
그래도 친구는 친구다.
이런 말을 하는건 내가 은연중 다른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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