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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처럼 고고한 새

작성자: ktman / 작성일 : 2004-12-09 00:00

댓글 : 4 / 조회수 : 5,262

울의 문턱에 들어서면 어디선가 '뚜루루 뚜루루' 하고 우는 두루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예부터 '학'이라 불린 두루미는 학식과 덕망을 두루 갖춘 고고한 선비나 신선처럼 귀하고 소중하게 여긴 겨울 철새다.

어린 시절, 한 코미디 프로에서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하며 시청자들을 웃겼던 기억이 난다. 아이가 오래 살기를 원하던 부모가 아이의 성명을 길게 지었다는 내용이었다. 성은 김이고, 수한무(壽限無)는 목숨이 한이 없이 길다는 뜻이고, 거북이와 두루미는 장생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며, 삼천갑자 동방삭은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장수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러면 십장생 중의 하나인 두루미는 얼마나 오래 살까. 한 조사에 의하면 두루미는 20~60년, 재갈매기는 36년, 마도요는 31년, 검독수리는 25년, 고방오리는 15년, 비둘기는 10년, 제

비는 7년을 산다고 한다. 보통 작은 새들의 수명이 4, 5년인 것에 비하면 두루미가 장수하는 것만은 사실이다. 예부터 두루미는 1,000년, 거북은 1만 년을 산다고 했다. 이에 대한 재미있는 옛이야기가 있다.
'오랜 옛날 거북의 딸이 두루미의 아들에게 시집을 가게 됐다. 부모들은 정말로 좋은 인연이라며 무척 기뻐했다. 거북의 딸은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게 울었다. 왜 우느냐고 부모 거북이 묻자, 딸이 결혼하는 것은 기쁘지만 9,000년 동안 과부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눈물이 난다고 대답했다.'
두루미와 거북이가 장수하는 동물의 상징이라 생겨난 옛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민족은 두루미, 즉 학을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청학동처럼 '학' 자가 들어간 지명이 유난히 많을 뿐만 아니라 이름이나 호에도 즐겨 사용했다. 그런가하면 나라에서는 관복에 학을 새긴 흉배를 달아주었고, 많은 화가들이 소나무 위에서 쉬고 있거나 날아가는 학의 고고한 자태를 화폭에 담았다. 자수나 도자기에도 양 날개를 활짝 펴고 두 다리를 쭉 뻗고 날아가는 두루미를 흔하게 발견할 수 있다.

두루미는 세계적으로 2,000여 마리 정도가 남아 있다고 한다. 그 중 우리 나라에 찾아오는 수는 300~400마리 정도. 11월에 찾아오기 시작해 이듬해 3월 중순에 번식지인 북쪽으로 떠난다. 예전에는 흔한 철새였지만 요즘에는 강원도 철원의 민통선 지역과 인천시 강화도 선두리 갯벌 등에서 관찰된다. 1968년에 천연기념물 제202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자연보호연맹(IUCN)의 적색 자료 목록 46호에 등록된 국제 보호종이다.
두루미는 크기가 140cm나 되는 대형종이다. 눈 뒤로부터 머리끝은 흰색이고 부리에서 눈 밑을 지나 목 부분은 검은 색, 배와 등·꼬리는 흰색이고 날개 아래 깃은 검은색이다. 머리 꼭대기의 맨살 부분에 있는 새빨간 무늬 때문에 중국과 일본에서는 '단정학'(머리 꼭대기가 붉은 학)이라고 부른다.
두루미는 대부분 습지에 살면서 어류나 곤충·양서류·식물의 뿌리 등을 먹고 얕은 호수나 강 중앙에서 한쪽 다리로 서서 잠을 잔다. 한쪽 다리로 서서 목을 등 속에 묻고 자면서도 넘어지지도 휘청거리지도 않는다. 이는 가냘픈 몸매에 비해 다리 근육이 매우 강하고 뛰어난 균형감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루미는 집단으로 모여 군집생활을 하지만 무리 속에서 가족단위로 생활한다. 두루미는 일생동안 일부일처를 철저히 지키

는 다정한 부부애의 상징이다. 두루미의 구애 동작은 부리를 하늘로 향하고 수컷과 암컷이 소리를 내며 걸어가다 암수가 마주 보고 절을 하듯 머리를 숙이고 이어 점프하듯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가 사뿐히 내려앉는 동작을 반복한다. 이를 흔히 '학춤'이라고 한다.
두루미와 유사한 종으로 천연기념물 제203호 재두루미와 흑두루미 등이 있다. 이 중 재두루미는 철원 민통선지역과 파주 대성동 자유마을·한강 하류·임진강 하구·주남저수지 등지에서 볼 수 있고, 흑두루미는 전남 순천만·충남 천수만·경북 구미 낙동강 상류지역에서 관찰되고 있다. 홍학은 학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왜가리, 백로와 함께 황새목에 속하는 새다.
12월! 벌써 2004년도 거의 다 갔다. 가까운 분들에게 둥근 태양이 빛나는 배경으로 두루미가 훨훨 날고 있는 2005년 연하장을 보내보자. 2004년을 잘 마무리하고, 희망찬 새해를 학의 고고한 날갯짓으로 맞이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