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싸한, 그러나 그러하지 아니한.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다 아는 얘기를 방송에서 다시 환기시켰을 뿐인데, 과자와 가공식품 시장에 갑자기 찬바람이 불고 있다고 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한 방송사가 내보낸 ‘과자의 공포, 우리 아이가 위험하다’를 보면서 매번 같은 소리, 종전의 내용에서 단 한 발짝도 더 들여다보지 못한 소리다 싶어 씁쓸했는데 그 정도의 내용으로도 소비자는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나봅니다.
사실 시중에 나오는 과자나 가공식품 중에는 우리 몸에 유해한 첨가제를 넣은 게 너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여름과 겨울방학 때 ‘살림을 위한 체험과 성찰’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파는 큰가게에 가서 아이들 스스로가 간식을 위한 장을 보게 한 일이 있었는데, 무려 세 시간 만에 돌아온 아이들이 들고 온 것은 고작 계란이나 감자, 고구마 같은 게 전부였습니다. 아이들 말로는 “포장지 뒷면을 선생님이 일러준 대로 살펴봤더니 이상한 첨가제가 많이 쓰였는데 알 수 있는 말들은 대부분 색이나 향을 내기 위한 것들”이라는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식품첨가제에 대한 온전한 상식을 가지고 물건을 사려면 독한 마음을 먹어야 하거나 빈손으로 돌아와야 하는 게 사실입니다.
몸에 유해한 첨가제를 넣는 일 말고도 고온멸균을 해서 몸에 유익한 영양소를 파괴시키는 문제도 있습니다. 저희는 두유를 만들어서 파는 일을 통해 여럿이 함께 살며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재원을 충당하고 있는데, 저희 두유를 처음 사려는 사람에게 받아두는 다짐이 있습니다. “저희 두유는 원재료 외에 어떤 감미나 조미를 하지 않아서 시중 두유처럼 달짝하지 않는데 드실 수 있겠는가”와, “고온멸균을 하지 않아서 냉장보관을 소홀히 하면 상할 수 있는데 언제나 먹기 전에 신선한지 한입 확인을 할 수 있겠는가”하고 여쭙는 것입니다. 고객에게 고분고분하지는 못할망정 다짐을 받는다는 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시중제품에 길들여진 사람 중에는 간혹 곤란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제품이 상할 수 있는데도 고온멸균을 하지 않는 까닭이 궁금할 것입니다. 신문 방송에서는 좀처럼 다루지 않고 있는 문제이지만 첨가제의 폐해만큼 고온멸균의 폐해도 심각합니다. 생산자들은 ‘고온멸균’이라는 것을 세균이 완벽하게 박멸된 제품으로 광고하고 있지만 사실은 유해균뿐만 아니라 일부 유익균까지 박멸시켜 어떠한 미생물도 생존할 수 없게 해서 냉장보관을 하지 않아도 부패 없이 오래 보존하는 것, 즉 유통기한을 길게 늘이는데 주요목적이 있습니다. 세균박멸이라는 명분을 앞세워서 몸에 이로운 영양소의 파괴도 개의치 않는 것이나, 맛을 낸다는 구실로 몸에 해로운 첨가제를 아무 거리낌 없이 넣는 것이나 둘 다 그럴싸하게 포장돼 있지만 사실은 그러하지 것들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은 우리가 전부터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전혀 새로울 것도 없는 일을 놓고 새삼스럽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금쪽같은 값을 치르고 사먹은 것이 내 몸을 오히려 병들게 했구나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겠지요. 하지만 그런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승승장구하는 이 현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우리 몸에 해로운 제품임에도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텔로 내세워 선전하면 불티나듯 잘 팔리는 현실. 또, 다가오는 여름에는 얼마나 많은 청량(?)음료와 빙과류가 쏟아져 나올까 생각하면 허탈한 심정입니다.
생각해보면 소비자의 입맛은 이미 화학첨가제를 쓰는 회사의 포로가 된지 오래입니다. 이 관계의 과감한 단절 없이는 아무리 몸에 해로운 제품이라도 또 사먹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첨가제에 길들여진 입맛에 맞추려면 같거나 유사한 첨가제를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러하지 아니하지만 그럴싸한 맛’에 너무 쉽게 빠져든 게 화근입니다. 이제는 아예 그럴싸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입니다. 과자나 가공식품 말고도 포장과 광고비가 지나치게 거한 화장품과 같은 것도 그럴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화장품만이겠습니까? 우리 삶의 전반이 그렇습니다. 내용보다 형식에, 속보다는 겉모양에 돈을 더 들이고 공을 쏟는 허구와 위선은 이미 사회 속에서는 전략적 가치로써 당당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합성첨가물이 든 식품이 나오는 게 이상할 게 없지요. 내 입맛과 가치기준을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데 방송을 보고 잠깐 발끈한다고 그 사람들이 눈이나 꿈쩍할까 싶습니다. 우리가 화학첨가물이 든 바르지 못한 식품을 섭취한다는 것은 우리 몸을 해치는 것 말고도 정신적으로는 허구의 사회에 양분을 공급하는 것이고, 밥과 똥의 순환통로인 몸의 역할을 포기하고 나아가서는 지구환경을 파괴시키고 있는 것이 됩니다.
사진설명:
그럴싸하지만 그러하지 아니한 것들 중에는 우리가 쓰는 치약이나 세재들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백해무익한 계면활성제가 만들어내는 거품에 중독된 상태다. 거품이 나야 비로소 씻은 것 같은지 거품이 많이 나는 제품을 선호하기까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