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전구가 나갔다.
갈아 끼운다고 생각한 것이 하루 이틀 3개월은 지나간 거 같다.
내 장담컨대 올 해 안으로는 화장실에 불빛은 없을 거다.
불이 없다고 그리 불편할 것이 없으니 그냥 지나가는 거다.
얼마 전부터 화장실에 가려면 촛불을 켰다.
이리 좋을 수가~
방에 촛불 밝히는 것과 또 다른 어둠의, 나만의 세계가 고스란히 배어나왔다.
절 집의 화장실이 해우소다.
근심을 해결하는 곳이라서 해우소라는데 나는 화장실만 가면 없던 생각도 생겨난다.
인생! 근심이 사라지는 시간이 얼마나 되겠는가~!
깨어있는 동안 이 연기 같은 일상사의 잡일들, 잡념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 사라질 수 있을까?
찰나의 순간에도 팔만사천번뇌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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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틀어놓은 음악이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렸다.
거의 매일 듣다시피 하는 파헬벨 최고의 음악 1시간짜리 카논변주곡을 듣고 있는데
중간에 심해로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의 나지막이 흥얼거리는 듯 한 남자 노래 소리가
연주소리에 묻혀 나왔다.
평소에 좋다~! 라고만 느낌이 들고 지나쳤는데 화장실에 앉아서 들으니 그냥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절제 된 쉰 목소리 같은 저음의 이 남자가 누굴까?
어느 고음의 호소력 있는 가수들보다도 더 울림이 크다.
카논은 제목처럼 규칙적이고 반복적인, 참 단순한 음악인데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음악의 한 곡이다.
자살해서 영웅 된 사람들도 있고, 죽어서 그 유작이 길이길이 호평을 받는 예술가들도 있다.
그러고 보니 세계적인 예술작품들은 그 작가가 살아서는 천대를 받다가 죽어서 그 작품들이
명작, 명품이 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카논 역시 파헬벨이 작곡하고 살아서는 아주 천대를 받던 곡이었다는데,
죽은 몇 백 년 후인 현대에 들어와서 클래식의 고전 곡 중에 한 곡이 되었다.
약간 변주만 될 뿐 같은 곡이 한 시간 넘게 흘러나와도, 매일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 음악이다.
수많은 변주곡 중에서 조지 윈스턴의 카논변주곡이 제일인거 같던데~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음악이, 단순하지만 반복되는 경쾌한 음악은 단순하고 무료한
인간들의 일상사 같은 음악이기도 하다. 인생사야~ 경쾌하지만은 많지만!
우리나라 민요풍노래의 대목하고 좀 비슷한 음악이기도 하다.
오늘 사무실에 나와서 하루 종일 그 카논연주속의 남자 가수를 찾아봤으나 못 찾았다.
아마 그 가수를 찾기는 어려울 듯하지만 틈틈이 찾아봐야겠다.
한동안 이 멋있는 가수 때문에 행복함이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