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구 소설가와 보령
글/사진 김경식
여행은 새로운 곳을 찾아 떠나는 행위다. 이와 함께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은 답사가 되어 좀 더 넓고 깊은 지식을 습득하게 한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여행만이 진정한 여행은 아니다. 같은 곳을 여러 번 가더라도 그 땅의 역사와 인문지리학적인 지식을 알게 되면 기행의 의미는 감동으로 다가온다.
결국 여행지의 정보를 미리 알게 되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며 역사와 지리에도 눈을 뜨게 된다.
이런 눈을 뜨게 되면 이미 보았던 문화유산과 문학작품의 무대들은 예전의 보았던 그 모습이 아니다. 상상과 실체가 만들어 내는 가슴으로부터의 설레임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이른다. 삶이 무미하여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을 때 문학기행이란 제목으로 길을 떠나 보시라.
문학기행은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하는 일상의 속도를 줄이며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작가의 삶이 기구하고 종교적인 자유를 그리워했던 사람들의 삶과 죽음이 있어 의미 있는 곳이 있다 . 충남 보령이다.
보령 갈매못 성지
장마가 왔다가 잠시 사라진 습기 먹은 날 오후 마른장마라는 특이한 기상대의 발표를 믿고 보령을 향해 서울을 출발한다. 습기를 가득 먹은 더운 공기 알갱이들이 몸에 착착 달라 붙는다. 하늘은 수묵처럼 구름들이 번지고 있다. 차창으로는 산과 들, 마실들이 속절없이 빠르게 지나친다.
서해안고속도로는 서해대교를 넘어야 여행의 맛이 난다. 잿빛구름이 모여 들었다가 달아난다. 무겁게 내리 누르던 구름들이 남실거리는 바람에 춤을 추듯 너울거린다.
보령은 차령산맥의 남서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동북부는 주로 산지이고 서쪽은 대체로 평지이다.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아름다운 바다가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곳이다.
보령은 백제시대( 신촌현), 통일신라( 신읍현), 고려초( 보령현)을 거쳐 조선초부터 현감이 파견되어 중앙집권제에 편입된다. 1896년에 보령군이 되었으며 1914년 보령군, 남포군, 오천군이 합쳐 지명이 보령군으로 통합된다. 이렇듯 보령은 불사조처럼 그 이름을 유지한다.
특히 1995년 대천시와 합치면서도 보령시로 그 이름을 또 계승한다. 놀랍지 않은가. '편안함(寧) 보장한다(保)'라는 한자의 뜻 처럼 보령시(保寧市)는 그 이름값을 하고 있다.
보령시는 1885년에 대천시와 통합 한후 웅비의 날개짓을 시작하였다. 산과 바다가 조화롭게 어우러진 지역이다. 오서산, 성주산, 아미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는 보령은 넓은 들판과 해안선을 따라 어업이 발달하고 인심이 좋았기에 '만세보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문구 소설가의 고향이기도 하며, 성주사지와 갈매못성지 같은 종교적인 유적이 있어 가슴이 뜨거워지는 곳이다.
성주사지 전경
대천IC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보령시청 문화관광과에 들렸지만 ‘머드축제’기간이라 사무실이 텅 비어있다. 시청에서 어떤 정보도 얻지 못하고 광장으로 나오니 한증막이 따로 없다.
설상가상으로 승용차의 뒷 유리문이 닫히지 않는다. 카센터에서 1시간 이상 수리를 한 후 제일 먼저 찾아 나선 곳이 ‘성주사지’다.
보령시청에서 부여방향으로 40번 국도를 타고 가면 성주터널이 기다린다. 이 터널을 지나 성주면사무소 입구의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약 1km를 가면 왼쪽에 성주사지가 자리잡고 있다. 성주사지 가는 길은 아름답다. 오른쪽으로는 아름다운 여울이 흐르고 고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멀리 성주산의 봉우리들이 하늘 끝에 닿아 있다.
보령은 역사적인 유물들이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는 곳이다. 특히 '성주사지'는 통일신라 시대에는 9산선문의 대표적인 사찰중의 한 곳이다. 풀섶이 무성한 넓은 절터에 몇 개의 탑과 주춧돌이 남아 있어 당시 이 사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에 국보8호인 ‘대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가 서 있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성주사지의 풀섶을 거닐다보면 아련한 역사의 뒤안길에 다가서는 이 땅을 살다가 떠나간 조상들의 발자욱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성주사지
성주사는 백제 법왕이 창건한 사찰로 처음에는 오합사(烏合寺)라고 불렀다. 전쟁에서 죽은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백제가 멸망한 후 신라 문성왕(839~859)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낭혜화상 무염(無染：801~888)이 절을 대규모로 확장하면서 성주사로 절 이름을 바꾼다.
신라 태종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은 21세에 당나라에서 선종을 공부하고 돌아와 이 절의 주지가 된다. 백제가 멸망하기 직전에는 적마(赤馬)가 이 절에 나타나 며칠을 울면서 절 주위를 돌아다녔다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성주사는 신라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성주산파의 중심 사찰이었다. 이곳에 수도하는 스님들만 2,000여명이 넘었다는 대 사찰이었다. 이런 사찰이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지금은 탑과 비 넓은 절터만 남아 있다.
너른 절터는 대부분 풀섶이다. 뱀이 나올 듯한 이 풀밭을 하염없이 거닐면서 옛 사람들의 자취를 찾아보려고 하였지만 등에는 이미 땀이 흥건하다. 여름이 절정이다. 풀섶의 풀대들이 고개를 쳐들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개망초꽃이 지천으로 피어난 풀밭에서 흘러나오는 청신한 꽃 향기가 코를 자극한다. 이내 발걸음은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앞에서 꼼짝 할 수가 없다.
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가 없었다면 아마도 성주사지터의 역사적인 의미는 보잘 것 없었을 터이다.
지금 이 비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성주사터의 의미는 사라지리라. 탑비의 높이는 4.55m다.
낭예화상백월보광탑비
돌거북의 머리와 몸체부분이 조금 파손된 상태지만 비석의 대부분 면은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으니 기적같은 일이다.
당나라에서 귀국한 후 낭혜화상 '무염'이 이곳에 수행하다가 세상을 떠난지 2년 뒤에 부도를 세웠다는 비문의 기록이 탑비의 역사를 말해준다. 이 탑비는 890년(진성여왕 4)에 부도와 함께 세워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지만 역사적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비문은 최치원이 지었으며 글씨는 해서체로 최치원 조카인 최인연이 썼다. 신라의 탑비 중에서 가장 크고 조각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당시의 사회와 제도, 서예사 연구에 대단히 중요한 탑비다. 낭혜가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진성여왕이 낭혜의 업적을 선양하기 위해 시호와 함께 크고 화려한 이 탑비를 건립한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 몸체의 재질은 성주산이 주산지인 남포오석이다. 비석은 강하고 보기에도 옹골차다. 1,200년이 지난 세월에도 아름답고 고운 자태를 잃지 않고 5천여자의 비문을 간직하며 오늘까지 살아 왔고 앞으로도 천년은 더 살아갈 것이다.
몇차례 발굴·조사로 금당을 비롯한 절의 건물지가 밝혀졌다.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와 5층석탑과 동서 일렬로 배치된 중앙3층석탑, 서3층석탑, 동3층석탑이 친 형제들처럼 서 있다.
다시 승용차를 몰아 성주터널을 빠져 나오면 보령시다. 보령시청에서 보령종합경기장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남포방면으로 차를 몰면 잠시 후 남포면사무소가 있는 마을에 닿는다. 남포초등학교를 찾아 들어 차를 주차하고 그 담을 따라가면 '남포읍성'이다.
읍성(邑城)이란 군이나 현의 백성들을 보호하고, 군사적이며 행정적인 기능을 위한 성을 말한다.
남포읍성은 차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구릉에 돌로 쌓은 성이다. 남포는 백제 때 사포현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읍성은 서해안에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고려 우왕때 쌓았던 성이며 군대가 머물 수 있는 진영을 갖추었다.
남포읍성 옥산아문
성벽은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성안에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관아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동헌은 정면7칸, 측면3칸의 원주기둥에 팔작지붕의 아름답고 단아한 우리네 전통한옥이다. 옥산아문(玉山衙門)은 옥마산(玉馬山)의 이름을 따서 지었으며, 동헌의 내삼문이다. 정면7칸, 측면1칸이며 솟을 형식이다.
좌. 우측에 출입자의 동향을 슬쩍거리며 살피던 홍살문을 두고 그 옆에 작은 공간은 지금의 경비실 구실을 하였을 터이다. 진서루는 동헌의 외삼문이다. 누각 형태이며 1층에는 대문을 만들었고 2층은 사방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겹처마에 팔작지붕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단청으로 조선시대 관아건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3채의 관아건물인 진남루와 옥산아문, 동헌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기행 이야기를 나누면 제격이다. 특히 동헌 마당에 서 있는 고목의 성성한 기상과 가까이 있는 남포읍성은 그 아름다움을 더 한다. 성을 따라 걷다가 이 관아건물 마당을 가득 메운 개망초꽃이 만발한 풀섶을 거닐다보면 낭만적 그리움이 몽실거리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동헌 마루에 앉아 해가 지는 모습을 본다. 절망적인 그리움에 가슴에 옹이가 새겨진 사람들이 찾아와 대화를 하면 풀릴듯 싶은 장소에 오래도록 앉고 싶어진다. 이내 잠자리와 저녁먹을 곳을 훤할 때 찾아가고 싶어 남포읍성을 나선다. 고샅은 고읍답게 침묵이 흐르고 성터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인다.
보령시는 외관적으로 화려한 밤을 맞이하고 있다. 제대로 된 음식점을 찾는 일이 쉽지 않다. 결국 찾아든 곳이 ‘옛날수라상’이란 한정식집이다. 주인 아주머니의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친절하다. 숙소는 L호텔로 정하여 잠을 이루려 하였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잠시 잠이 들었을까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여 창문을 여니 세찬 소나기가 퍼부어 대고 있다.
오전 6시 호텔을 나와 승용차의 시동을 거는데 세찬 소나기가 더욱 퍼붓는다. 대천IC에서 보령시에 진입하면 이내 대천역 사거리이다.
이곳에서 북쪽 21번 국도 대천여고 방향으로 300 미터쯤 가면 오른쪽으로 ‘SK 갈머리주유소’가 보인다. 바로 위에 고층 동부아파트 앞산 소나무 숲 아랫마을이 바로 갈머리, 관촌마을이다. 사람들에게 관촌마을을 물으면 열이면 열 모두 모른다고 한다. 대관동이 어디냐고 물어야 한다.
관촌마을
비는 억수로 내리는데 옛 관촌마을의 골목길을 걷는다. 이문구 선생의 생가를 겨우 찾아 열린 문을 두드린다. 아무 인기척이 없어 열린 대문을 통과하여 마당에 서니 잘 정돈된 화단이 반긴다. 한참만에 아주머니 한 분이 현관문을 열며 “누구시유” 한다. “이 집이 이문구 소설가 살던 집입니까” 물으니 “그런디유” 라며 오히려 거꾸로 질문을 한다. 충남 특유의 이 말은 외지인에게 퍽 긴장감을 유발시킨다. 언제부터 이곳에 살고 있느냐의 말에 ‘20년 되었시유“라고 대답한다. 이 집 어디에도 이문구 생가라는 표시는 되어 있지 않다.
이문구 소설가는 이 집에서 태어나 유년의 험난한 세월을 잘도 버티며 살아남아 큰 작가가 되어 집 바로 뒷산의 소나무 숲으로 돌아왔다. 소나무 숲길 입구에 세워진 ‘관촌마을’이라는 문학비를 대신한 마을비 만이 이문구 선생의 고향 마을임을 알리고 있다.
비 내리는 산길을 우산을 쓰고 오른다. 구름이 걷히려는 듯 서해 쪽이 훤하다.
산보다는 언덕에 가까운 야트막한 소나무숲은 아름답고 건강하다. 아래로는 이문구 선생의 고향마을인 아랫갈머리( 관촌마을)는 옹삭하게 앉아 있다.
이문구 소설가 생가 대문
이문구 소설가(1941~2003)는 충남 보령군 대천면 대천리 387번지 관촌마을 (지금의 보령시 대관동)에서 태어났다. 독학으로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으며, 김동리의 추천으로 1966년 ‘현대문학지’추천으로 등단한다. ‘관촌수필’,‘우리동네’‘장한몽’‘매월당 김시습’‘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 등의 소설을 남겼으며 한국펜문학상, 만해문학상, 동인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유신이 맹위를 떨치던 1974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발기인과 간사로서 문학의 사회참여를 하기도 했다. 또한 보수문단인 펜클럽 이사, 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이사, 한국소설가협회 이사를 맡아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역할을 한 문인이다.
위암 진단을 받고 쓴 동시 66편을 묶은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 등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긴 뒤 10일 후에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충청도 특유의 사투리를 잘 살려낸 토속적이며 유장한 문장은 이문구 소설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시대적 격변기의 농촌과 농민문제를 소설화함으로서 작품의 주제와 문체까지도 농민의 어투에 근접한 사실적인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고향을 상실한 농민들의 삶과 애환이 깃든 당시의 시대적인 모순을 충청도 특유의 느린 토속어로 소설로 형상화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소설 ‘관촌수필’은 1950년 6,25에서 시작하여 1970년대까지의 보령지역 농민들의 현실적인 삶과 죽음을 그린 자전적 소설이기도 하다.
이문구 소설가는 자신이 죽으면 고향 마을 뒷산 소나무 숲에 유골을 뿌려달라는 유언을 한다. 자신의 이름으로 어떤 문학상이나 문학비를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인지 그의 고향마을 어디에도 문학비가 없다.
소나무 숲(이문구 소설가의 유해가 뿌려진 장소)
단지 그의 생전에 보령의 문학인들이 1995년에 세운 동네입구 '관촌마을기념비'만이 유일하게 이문구 소설가 문학비를 대신하고 있다. 이문구 소설가는 소설가이기도 하지만 동시 작가이기도 하다. 그의 동시를 읽다보면 천성적으로 마음씨 넓고 착한 분이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
밤마다 서너 개씩
떨어졌으니.
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
여름내 은하수가
흘러갔으니.
이문구 동시' 산너머 저쪽' 전문
이문구 소설가(1941~2003)가 이런 동시를 쓴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그의 호는 명천(鳴川)이다. 울음 우는 여울이다. 그의 일생의 강은 눈물과 시련의 강이었다. 눈물로 흐르고 울부짖는 강이었다. 보령지역의 농경사회의 인정 많은 삶이 비정하고 야박한 위기로 몰아가는 농촌 현실을 충청도의 느린 사투리로 표현은 그 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그의 소설 ‘관촌수필’과 ‘우리 동네’라는 연작소설을 읽던 날들이 이제 세월이 되어 저만치 멀어져 가 버렸다. 이문구 소설가의 동시를 읽다 보면 유년의 기억저편에서 어머님이 손짓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가슴을 울렁이게 만든다. 산 너머 저쪽으로 선을 그으며 빠르게 떨어지는 그 별똥을 주우러 갔던 기억이 세월 저편에서 서성인다. 산 너머 저쪽으로 흘러가는 은하수를 보았던 날 밤 거기에 큰 호수가 생겼다고 상상했던 유년의 저편 기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현재의 삶이 고단하며 슬프고 절망적이지만 ‘산 너머 저쪽’에는 행복한 낙원의 세계다.
이문구 소설가는 ‘개구쟁이 산복이’라는 동시집을 출간한다. 소설가가 동시집을 내는 일은 쉽지 않다. 산복이는 그의 아들의 이름이기도 하다. ‘산 너머 저쪽’은 이 동시집 속에 수록된 시다. 현실적인 삶이 고단하고 이루어 질 수 없는 것들이 가슴을 억누를 때 사람들은 저쪽을 그리워한다.
관촌마을 비
이문구 소설가에게는 아마도 평생이 저쪽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삶과 어린 유년 시절의 아버지의 죽음과 형들의 죽음을 기억하면서 그는 평생 평화를 갈구하였다. 그러나 그에게 행복과 평화는 잡히지 않고 오지 않는 저쪽을 기다리며 살아야 했다.
이문구 소설가의 소설 문장들은 대부분 만연체다. 하나의 문장이 끊어질 듯 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끊어질 듯 이어진다. 이런 글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은 처음에 퍽 애를 먹게 된다. 그러나 이내 그의 걸쭉하고, 서민적인 정겨운 말투에 빠지게 마련이다. 만연체의 문장들이 서너 줄 쯤 되는 것이 기본이지만 다른 작가의 지루하고 난삽한 글과는 비교된다.
빠른 속도로 읽어가야 하는 이즈막의 독서법인 간결하고 톡톡 끊어지는 문장보다 유장한 문체의 ‘관촌수필’을 읽다보면 이 언어들은 결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 듯 높아 보인다. 현실감 있는 소설 자체가 익살스럽고 숭늉처럼 구수한데다가 입맛을 톡 쏘는 매운 맛에 혀끝이 아려온다. 때로는 거침없고 호탕하며 섬세한 언어들이 푸른 산맥이 휘돌아 가듯 시원하다. 그의 고향에서의 추억과 서울로 상경한 후 기억을 더듬어 실화처럼 써 내려간 관촌수필은 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요주서, 월곡후야 라는 여덟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행운유수’에서 옹점이의 아름답고 서글거리는 눈매와 그녀의 투박한 언어들이 귀에 쟁쟁하다. 낮고 천한 부엌데기인 옹점이를 그리움을 가지고 지켜본 어린 이문구의 애틋한 정이 그녀를 작품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관촌수필’이 출간한 해는 1977년이다. 이제 30년이 넘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후손이기도 한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익힌 한문과 폭 넓은 독서로 습득한 인문교양에 바탕을 둔 문장은 넓고 깊은 광맥을 형성하고 있다. 충남 지역의 토속적인 사투리가 어우러진 ‘관촌수필’은 농민문학과 현실문학의 백미다.
그는 자신의 자전적인 실화 소설 ‘관촌수필’에 관한 다음과 같은 자평을 하기도 하였다.
"남 들으라고 떠들기는 민망하지만 ‘관촌수필’은 적어도 문인으로서의 경력에 대한 중간 결산이며 내 역량으로 창작할 수 있는 문학의 본바닥이라고 할 수 있다. 8편의 단편 중에는 쓰면서 운 것도 있고 탈고와 함께 눈물을 지은 것도 있는, 모두가 내 이웃과 내 이야기를 기록한 까닭이다."
‘관촌수필’은 6.25라는 민족족인 비극의 상징적인 난리속에 풍비박산이 난 작가의 가족사를 솔직하게 그리고 있다. 이문구의 부친은 충남 보령의 남로당 총책을 맡았다가 전쟁이 터지자 경찰에 잡혀 처형 당한다. 작가의 큰 형은 일제의 징용으로 끌려가 실종된 상태였다. 둘째 형이 부친과 연루돼 죽임을 당한다. 당시 18세인 셋째 형도 빨갱이 집안 자식이란 이유로 대천 앞바다에서 산 채로 수장(水葬)당한다.
이런 비참한 소설가 이문구 가족사의 죽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결코 대천해수욕장에 피서를 가지 않는다고 한다.
1953년 이런 비극적인 전쟁이 끝났다. 살아 남았다고 느끼던 것도 잠시 살아남은 것이 곧 죄인 이었다. 집안에 살아남은 남자라고는 자기 자신과 팔순을 넘긴 할아버지 뿐이었다. 13살의 소년이 받았을 마음의 상처는 그가 눈을 감는 날 까지 잊을 수 없는 고통의 상흔이 된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쥘 수 있는 사내가 되기로 다짐한다. 그는 어디엔가에서 증언하였다.
"어린 마음에도 맨 먼저 다짐한 것이, 나만은 절대로 형무소나 유치장 출입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자신의 집안을 부흥시켜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소년 이문구의 가슴을 짓눌렀다.
‘관촌수필’은 유교적인 인품과 예의범절로 다져 진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그의 소년기를 어른이 된 작가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허구적이고 가공한 소설적인 주제가 아닌 실화에 바탕을 둔 줄거리이기 때문에 작품의 제목을 ‘관촌수필’이라 했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보령도 6,25전쟁과 이로 연관 된 살인과 죽음들이 연이어 이어졌다. 이 전쟁으로 이문구는 가족의 대부분을 잃은 반 고아가 되어 간신히 대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한다. 19세 때인 1959년 상경하여 신촌시장에서 노점상과 떠돌이 행상,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러나 자신이 경험한 사연들을 소설로 써야 한다는 일념은 대단했다. 작가가 되는 것이 일생 일대의 꿈이었다.
이런 꿈을 이루기 위해 서라벌예대에 응시했다. 당시 면접관 이었던 김동리 소설가는 “특이한 문장”이라며 그를 ‘을류 장학생’으로 합격시킨다. 소설가 조세희 ,소설가 한승원, 이건청 시인 등이 당시 입학 동급생들이다. 소설가 이문구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그의 이름이 회자 되고 있는 것은 작품 속에 독특한 언어구사에 기인한다.
그런데 이런 언어들은 대부분 서민의 언어다. 민중들의 언어구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혹독한 시련기 였던 청소년기와 청년기의 노동판에서 익힌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대학 졸업 후 생계를 위해 노량진에서 동작동까지 도로확장공사장의 인부가 되기도 했다. 또한 연희동 외국인학교 터에 있던 공동묘지 3,000기를 옮기는 일에도 참가했다. 이런 노동의 현장에서 낮은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방법과 무시할 수 없는 민중적인 역량을 익히게 된다.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는 생물학적인 삶에 있었지만, 그를 짓누르고 있던 불길한 그림자는 빨갱이의 아들이라는 무서운 유령이었다. 이 유령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우익의 보수 문인 총수 밑에서 그를 추종하는 방법이었다.
삶의 생존 본능과 유교적인 보은이 결합하여 자신을 키워준 김동리 소설가를 그는 끝까지 아버지처럼 섬긴다. 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월간문학’과 ‘한국문학’ 등 문예지의 편집장을 맡기도 한다. 이런 스승 김동리를 위해 진보와 보수 논쟁이 치열할 때도 자신은 스승을 비판하지 않았다.
이문구 소설가 생가터
유신시대 순수문학을 표방하던 보수문학의 대표 소설가 김동리와 독재에 항거하던 참여문학의 선두에서 깃발을 든 제자 이문구의 관계 설정은 비극이었다. 스승과 제자의 문학적 성향은 극과 극이었다. 이런 살벌한 이념적 문학의 진보와 보수의 치열한 싸움 속에서도 사제지간의 정은 조금도 변치 않았다고 한다.
올림픽 때 서울에서 국제펜클럽대회가 열렸다. 이 때 민족문학작가회의와 소설가 김동리가 대립적 칼날을 세우자 자신은 스승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이유로 작가회의를 떠난다. 이런 스승 김동리가 세상을 떠난 1995년 이문구는 ‘김동리기념사업회’를 만든다. 진보 진영에서는 말도 많았지만 아랑곳 하지 않고 그는 김동리문학상을 제정했으며, 죽는 날 까지 이 사업회의 회장직을 맡았다.
이런 도량은 그가 가진 넓은 가슴에서 뿜어 나와 이후 많은 이들을 포용하는 결과를 낳는다.
2000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하고 김지하 시인등 당시에 작가회의를 멀리하던 문인들에게 빗장을 풀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을 품는다. 그리고 늘 작가는 자신의 서재로 돌아가 글을 써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학평론가 유종호는 이문구 소설가를 “농촌 최후의 시인”이라고 했다. 소설가를 시인이라고 한 것도 기이하다. 시인같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기질이 있으면서 힘이 담긴 유교 전통사회의 농촌 언어가 살아서 펄펄 뛰고 있다. 문체는 고등어 비닐처럼 푸르다. 그의 작품들에는 능수버들가지 처럼 늘어지고 농무처럼 휘감기는 문장이 살아서 꿈틀거린다.
비록 비극적이지만 자신을 낳고 키운 충남 보령의 느린 사투리와 토박이 말과 판소리 사설 같은 언어들이 보석처럼 담겨 있다. 자신의 조상으로 부터 대대로 이어 온 선비 기질과 직접 경험했던 민중적인 밑바닥 삶을 통한 자기 갱생의 생활 속에 그의 언어들은 늘 비상을 꿈꾸기도 했다.
6·25전쟁은 그에게 지울 수 없는 깊은 상흔을 남겼지만 슬픔을 통해 그는 강렬한 삶의 문학적 바탕을 만들어 내었다.
욕심없이 살다가 떠나간 작가의 뒷모습이 처연한 그리움이 되어 되살아 나기도 하는 갈머리 마을 뒷산 소나무 숲에서 기행자들은 각자 자신의 삶도 돌아보게 될 것이다.
토정 이지함 선생 묘소에서 본 전경
이문구 소설가의 고향마을에서 21번 국도를 타고 고개를 하나 넘으면 왼쪽으로 ‘관창공업단지’다. 주교면사무소 3거리에서 보령화력발전소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바로 16번 지방도를 갈아타고 달려가면 이지함 선생의 묘소에 닿는다.
주차장도 있고 제법 그 기세가 대단한 묘소 앞에는 이지함 선생의 가계도를 설명한 큰 안내판이 서 있다. 왕릉처럼 넓게 산등성이를 차지한 10여 기의 묘가 옹기종기 수백년을 함께 누워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이 가족묘 터는 1532년(중종 27년) 그가 모친상을 당할 때 처음 정해진다. 다른 곳에 있는 부친의 묘소를 모친과 합장한다.
토정비결의 저자로 전설같은 삶을 살다가 떠나간 이지함(1517∼1578) 선생에 관해서 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생의 대부분을 마포 강변에서 흙집을 짓고 살았다 하여 호가 토정(土亭)이다. 우리 국토의 이곳 저곳을 답사하며 천하의 명당과 길지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했던 그의 묘가 궁금했다.
명당터에 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도 이지함 선생의 묘소에 오르면 아! 하는 탄성이 나올 것만 같은 길지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묘소에서 바라보면 서해가 넘실거리고 편안하게 앉아 있는 야산들이 겹겹이 도열하여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런 곳에 서면 자신이 귀하게 생각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게 될지 모른다.
일찍 떠나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또한 어떤 이는 사랑했던 사람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토정 이지함 선생 묘역
18~19세기 북학파 등 중상주의를 지향한 실학자와 경제학자들에게는 토정 이지함은 큰 스승이었다. 실학자들이 토정 이지함의 전례를 흠모하고, 상공업의 발전과 해외 통상을 실시하여 조선을 부국강병과 부국안민이 되도록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토정 이지함은 중상주의를 통한 조선의 부국을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실천적인 경제학자였다고 볼 수 있으리라.
기행에서 역사적인 실체는 매우 중요하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었던 사람들로 인해 가슴을 저미며 찾아 가야 하는 곳이 있다. 갈매못 성지다. 그들이 추구했던 자유의 의지가 당신이 추구하는 삶과 일치한다면, 갈매못 성지에서 그대의 가슴은 요동치게 될 것이다.
갈매못성지는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 바닷가의 아름다운 해변가에 자리잡고 있다.
지형적으로 안면도와 마주하고 천수만 깊숙하게 숨어 있다.
바다인지 호수인지 이 갈매못이란 이름이 주는 이름의 뉘앙스는 잠시 헷갈린다.
갈매못성지는 병인박해 때 체포 된 파리외방전교회 성 다블뤼 안 주교, 성 오매트로 오 신부, 성 위앵 민 신부, 성 장주기 요셉, 성 황석두 루카 등 다섯 명의 순교자들이 1866년 3월30일 순교하고 연이어 5백여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참살당한 장소다.
한국 카톨릭 순교지에서 보령의 갈매못성지는 최고의 성지 중의 한곳이다.
이곳에서 1866년 3월30일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다블뤼 안 주교, 오메트르 오 신부, 위앵 마르띠노 민 신부, 황석두(黃錫斗) 루가, 장주기(張周基) 요셉 등 다섯 사람들이 이곳에서 처형당한다. 이들이 서울에서 400리나 떨어져 있는 갈매못에서 참수당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흥선대원군의 아들 고종의 결혼식 때문이다. 궁궐 담당 무당이 한양에서 피를 흘리면 안 된다는 말에 갈매못이 처형지로 결정된다. 두번째는 1839년에 앵베르 범 주교와 모방 나 신부, 그리고 사스탕 정 신부의 처형과 연관이 있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이들의 처형에 항의하려고 안면도 앞에 외연도에 로즈제독이 이끄는 함대를 보내왔다. 이들은 이곳이 한양에 있는 양화진으로 잘못 알았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서양을 배척하는 상징으로 불란서 신부들을 이 외연도가 바라보이는 장소인 갈매못을 처형지로 결정한다. 이후 이곳은 수 백여 명의 이름 모를 카톨릭 성도들이 잡혀와 순교를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갈매못 성지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김대건 신부와 페레올 주교와 함께 조선에 입국한다. 그리고 1866년 순교할 때까지 20년간 조선에서 선교 할동을 한다.
일행이 홍성에서 1866년 3월11일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될 때 번역을 맡아 헌신적으로 선교일을 했던 황석두 선생을 향해 다블뤼 안 주교는 "이 황석두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놓아주시오."라고 한다.
그리고 포졸들에게 돈을 주니까 그들은 황석두 선생을 풀어 주려고 했다.
그러나 오히려 황석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꺼내서 포졸에게 주며 "이제 나는 천국에 갈 사람이다. 이 돈을 받고, 내 아버지로 모시는 주교님과 죽음을 선택할 터이다. 나를 주교님과 함께 동행하게 해 달라" 고 한다.
이들은 한양에서 1866년 3월 23일 사형 선고를 받는다.
갈매못 해변가에서 1866년 3월 30일 이들을 처형할 때, 한사람을 죽이는데 10량씩 50량을 주기로 결정한다. 사형 집행 선고문이 낭독된 후 맨 처음 사형집행은 다블뤼 안 주교로 결정된다.
공주에서 파견을 온 망나니들은 한 사람을 죽이는데 100량씩 500량을 달라고 앙탈을 부리고 떼를 써서 결국 사형 집행관은 500량을 주기로 약속한다.. 인간의 잔인성이 얼마나 비정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후 오 신부, 민 신부, 황석두, 장주기 순서로 처형당한다.
이들 중 황석두 루가 성인의 시신은 연풍(충북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옮겨 안장된다. 네 명의 시신은 3일 후에 홍산을 거쳐 블랑 신부에 의해 일본 나가사끼로 이장된다. 이후 1900년 명동 대성당을 거쳐 지금은 절두산 순교 성지에 안장된다.
갈매못에서 순교한 성 다블뤼 주교가 조선에서 보낸 비망기를 토대로 파리 외방선교회 달레 신부는 1874년 '한국천주교회사'를 편찬 간행할 수 있었다.
조선 천주교회사의 상당부분은 바로 다블뤼 주교의 기록이라고 보면 된다.
‘파리 외방 전교회’는 조선 박해시대때 복음을 선포하던 선교회였다.
“오, 조선이여
오, 나의 기쁨이여！ 오, 나의 새로운 조국이여,
나는 너를 보고야 말며
너를 위해 내 삶을 바치리라.
큰 배가 흔들거리며 항구에서 나를 기다리도다.
안녕, 프랑스여, 나는 너를 떠나노니,
순풍이여 네 나래를 펴라.
나는 거기에서 더욱 아름다운 해변을 찾게 되리라.
그렇다. 나는 죽어도 살아도 조선인이다.”
--파리 외방 전교회 신학교 성가집
갈매못 성지
갈매못성지에서 다블뤼 주교의 절친한 친구였던 구노(1818~1893)가 작곡한 '아베마리아'를 들어보라. 구노가 파리외방전교회 성가대장이었을 때, 당시 조선에서 선교하던 파리 외방전교회의 사제였던 옛 친구의 순교 소식에, 영감을 받고 훗날 성가를 작곡하였는데 이 곡이 바로 구노의 ‘아베 마리아’다.
결국 구노의 ‘아베마라아’는 혹독한 박해를 받고 있던 당시 조선 천주교회와 자신의 친구였던 다블뤼 주교를 위한 곡이다. 이런 사실을 알고 이 곡을 듣게 되면 온 몸에 전율이 흐른다.
성 다블뤼 주교를 위해 작곡한 구노의 아베마리아를 엥베르 신부를 위한 곡으로 잘 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필자가 자료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도 대부분 엥베르 신부로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엥베르 신부(1796~1830)는 구노의 친구가 될 수 없는 나이였다.
이 노래가 조선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를 위해 바친 노래라는 것을 아는 이는 드물다. 구노는 음악의 천재였다. 그는 빠리 외방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녔는데 같은 반에 '구노'보다 한 수 위인 ’음악 천재’가 있었다. 훗날 병인박해 때 순교한 다블뤼 안(1817~1866)이다.
초등학교와 중고등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때 구노는 그가 음악을 전공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보고 놀란다.
그들은 대학 때 각자의 길을 가게 된다. 몇 년이 지나 구노는 다블뤼가 신부가 되어 파리 외방 선교회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듣기도 한다. 구노는 그를 만나고 싶었지만 이미 중국을 선교지로 발령받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
신앙심이 있던 구노는 중국으로 선교를 위해 떠나간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한다.
유년시절 그 친구와의 우정을 생각하며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학교에는 가끔씩 붉은 글씨로 누군가 순교하였다는 메모가 붙어 있곤 했다.
1866년 어느 주일날 게시판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다블뤼 주교 조선에서 순교’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구노는 정신없이 뒷동산으로 뛰었다.
성모상 앞에서 구노는 목놓아 울며 성모송을 바친다. 훗날 이때를 기억하며 작곡한 곡이 "구노의 아베마리아"다.
'구노' 는 프랑스의 대작곡가다.
병인 순교자 노래 (성가 289번)의 가사 속에는 당시 당한 천주교 박해가 그대로 녹아 흐른다. 조선 국토를 피로 얼룩지게 하였던 서슬 푸르던 병인박해 때 당했을 천주교인들의 삶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읽어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피어라 순교자의 꽃들아, 무궁화야
부르자 알렐루야, 서럽던 이 강산아
한 목숨 내어 던진 신앙의 용사들이
끝없는 영광 속에 하늘에 살아 있다.
병인년 그 옛날에 구름재 서
팔도는 오가작통 피바다 이뤘을 제
묻노니 말하여라, 한강아 대동강아
순한 양 사학 죄인 얼마나 죽였더냐.
어지신 주교 신부 웃으며 칼을 받고
겨레의 선열들이 기꺼이 쓰러졌고
피 꽃을 몸에 피워 천당에 올랐어라.
찰나의 죽음으로 영생을 얻었어라.
척화비 파묻히고 승리가 우뚝한 날
예수님 그 진리를 피로써 알았노라.
후손 된 우리들도 진리의 사도되어
죽도록 겨레에게 전하게 하옵소서.
오늘날에도 애창되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Ave Maria)”는 성 다블뤼 주교를 비롯한 조선의 선교사들을 위한 곡이다.
오천수영성 | |
오천항은 육지와 가까운 섬들이 방파제를 자연스럽게 조성하고 있다. 그래서 강한 태풍을 제외하고는 선박들의 출입이 가능한 조건을 갖춘 항구다.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에 있는 오천수영성은 조선 중종때 쌓은 성이다. 이곳에 오르면 보령 근방의 서해바다가 장관이다. 서해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 오천성은 이제 퇴락한 마을처럼 오천항을 바라볼 뿐이다.
그러나 이 성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에 환상적인 기분을 느끼며 답사의 즐거움을 더하게 만든다. 성문은 모두 무너져 흔적도 없고 단지 지금은 서쪽의 홍예문만이 남아 있다. 무지개 모양의 문을 통과하여 산을 오르면 아름다운 기와집인 ‘진휼청’이 반긴다. 이 집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건립 된 집이다.
오천수영성에서 본 오천항 전경
이 성의 특징은 산의 가장 높은 지형에 성을 쌓아 바다에서 산으로 올라올 수 없도록 축조한 것이다. 그러나 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깎아 지른 듯한 절벽같은 성이다. 3,300여명의 수군이 주둔하였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소박한 성터는 온통 개망초 밭이다. 세월의 뒤안길에서 서성이는 나그네들만 가끔 들리기라도 하면 다행인 이곳 오천수영성의 산길을 걸어보라. 나무숲이 터널을 만든 산성길에서 아마 이 터를 지키던 조상들의 음성이 바람에 섞여서 우는 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