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무영과 음성
글 : 윤고방
초가을 향기를 부르는 음성(陰城)
7~8월을 다 합해도 햇볕 든 날이 20일이 넘지 않았던 여름, 끈적끈적한 비와 눅눅한 바람에 젖었던 2011년의 여름이 문을 닫으려
한다. 그리고 이제 아침저녁으로만 서늘한 손을 조금씩 내밀어 문을 열기 시작하는 가을이다.
이 초가을의 문턱을 넘어 우리 문학기행은 충청북도 음성으로 간다. 지난 56회 7월 기행을 충남 예산으로 갔기에 이번엔 멀찍이
다른 지역으로도 가고 싶지만, 200리나 되는 길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문학기행을 찾아 준 음성 식구들의 고마움에 답하는 마음을
더 이상 늦출 수는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무영의 농촌소설들을 통해 맛깔스런 가을 전원의 향기를 맛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음성 못미쳐 대소라는 곳에서, 현지가 고향인 두 위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읍내의 설성공원 안에 자리 잡은 이무영 선생
문학비에서부터 답사는 시작되었다. 잘 단장된 공원 연못가 잔디밭에 서 있는 어른 키만큼의 흰 대리석 주비 옆에, 양쪽 날개처럼
왼쪽으로는 그의 대표작인 단편 <제1과 제1장>의 한 구절과 장편 <농민>의 한 구절이 나즈막한 오석에 새겨져 있고, 오른쪽엔
생존 시 절친했던 구상(1919~2004) 시인의 추모시가 역시 까만 돌에 새겨져 있다.
이무영선생 문학비
추 모 송
한 평생 붓 기울여 농민의 삶 그리셨네
흙에 사는 보람을 모두에게 일깨웠네
이 나라 현대문학에 새 밭을 일구셨네
토박이 농사꾼과 한 모습을 하셨었네
그 푸짐한 마음씨도 흙내음을 풍겼었네
세월이 야박하오매 더 더욱 그리웁네
< 시; 구 상, 글씨; 이길상 >
1960년 봄 52세의 아까운 나이에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무영. 오래도록 곁에서 그를 따르던 후배 문인의 안타까움이
차가운 비면에서 오히려 따스하게 스며 나온다.
음성(陰城)의 옛 이름을 명칭으로 삼은 설성(雪城)공원 한 쪽에 자리 잡은 향토민속자료전시관은 성의 문루를 본뜬 정문의
풍모가 깨끗하고 아담한 인상이다.
향토자료실에 정갈하게 차려진 농경 생활 도구나 여러 문화 유적들은 다른 곳에 비해 두드러진 특징은 없는 듯했으나, 기증품
중심으로 900여 점의 민속자료들이 정성스럽게 진열되어 있다.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안쪽으로 소설가 이무영(李無影)의 전시 공간이 있어 발길을 옮겼다. 지금까지 풍부하게 잘 갖춰진 문학관들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인지 상대적 빈약함이 한 눈에 들어왔다. 고향의 풍물과 문화를 더 멋지게 소개하고 싶은 두 안내자의 안쓰러운 마음이 전해져
온다. 예산 부족으로 인해 관장도 아예 임명하지 않고, 지역의 향토 사학자를 낮은 급료의 해설가로만 쓰고 있으니, 지방자치
행정가들의 문화의식이 문제인 것인가?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요즘에 와서는 지방 재정 자립도도 꽤 높아졌다고 하던데. 멀리
보면 문화 예술 투자가 결국 남는 장사인 줄 아직 모르고 계시는지 알 수가 없다.
특히나 최근에 돌아본 문학기행에서, 돌아가신 위대한 예술가인 추사 기념관에서는 당연히 잘 갖춰진 유물들에 놀랐지만, 살아
있는 소설가의 대규모 문학관을 참관하면서 휘둥그래졌던 그 때의 눈을 여기에 다시 들이대자니, 이무영 선생의 얼굴대하기가
자못 민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결집력이 강한 이념이나 현대적 도시 감성을 다룬 작가에게 쏠리는 독자들의 관심이 전원과 농촌을 다룬 작가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한다는 얘기인가 싶어 약간 의아스럽기도 하다.
그가 생전에 피땀 흘려 펴내었던 단편 중편 희곡 등 작품집들이 퇴색한 세월을 누렇게 뒤집어쓰고 있는 좁은 공간 위에, 눈길을
사로잡는 독특한 문인 서체의 붓글씨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무영 선생이 작고 한 직후 빈소에 놓였던 방명록인 듯한데, 마산의
시인 김용호(1912~ 1973)의 서명이 또렷하다. 김시인의 말 한 마디가 참으로 귀하게 가슴에 닿는다.
靑山猶哀惜(청산유애석; 청산은 오히려 더욱 애달프고)
埋骨不埋名(매골불매명; 뼈는 묻되 이름은 묻지 않았네)
< 문학 삼십팔 년의 무영학형(無影學兄) 용호(容浩) >
해방 전후 혹심했던 정치적 경제적 혼란 속에서 고달픈 문학인으로 함께 형극의 길을 걸어 온, 육친처럼 가까운 선배를 보내는
심정이 어떠했을까? 잠시 숙연해지는 심사를 누를 길 없는데, 저 방명록의 앞장 뒷장에는 그 당시 또 어떤 문학가들의 육필이
아쉬운 정을 진하게 묻혀 놓았을까 궁금해지지만 어쩔 수가 없다.
격동의 민족 수난기에 태어나다
질곡의 시대를 고통과 한숨 속에서 살다 간 한 문학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는 일은 얼마나 조심스러우며 또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한국 근대문학사에 ‘농민문학’ 또는 ‘농촌문학’이라는 이정표를 세우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기간 중 전통사회의
가치관과 새로 밀려드는 가히 폭력적인 신사조가 맞부딪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써 내려 간 그의 작품들은, 세월이 흘렀으나
여전히 문학사적 시사점을 던지며 살아 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 왜군들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질 무렵, 조선 곳곳에서는 의병들이 일어났다. 강원도와 충청도
전역에서 의병과 왜병이 심각하게 충돌했을 때 음성에서도 많은 사상자가 났는데, 이때 무영의 아버지 이덕여는 이름 모를 의병들의
장례를 많이 치러 주었다 한다. 이 일로 인해 가장은 병을 얻고 가족은 심한 고초와 함께 삶의 근거를 위협받으며 깊은 산골로 들어
오게 되었다 한다. 만삭의 몸이 된 아내와 자식들을 이끌고 숨어 든 곳이 바로 오리골이다.
여기서 이 시대의 분위기를 좀더 실감해 보기 위해, 명성황후가 시해당하고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남편과 시아버지를 따라 춘천과
가평일대, 그리고 만주벌판에서 의병활동을 벌였던 여성 의병장 윤희순이 이 땅의 나라 잃은 아낙네들에게 보급하여 의병활동을
돕게 했던 노래 한 수를 소개하기로 한다.
안사람 의병가
아무리 왜놈들이 강성한들, 우리들도 뭉치면 왜놈잡기 쉬울세라
아무리 여자인들, 나라사랑 모를쏘냐
아무리 남녀가 유별한들, 나라 없이 소용 있나
우리도 모두, 의병 하러 나가보세. 의병대를 도와주세
금수에게 붙잡히면, 왜놈시정 받들쏘냐, 우리 의병 도와 주세
우리나라 성공하면, 우리나라 만세로다. 우리 안사람 만만세로다 <의병장 윤희순>
이 노래 속에 스며 있는 조선조 그리고 구한말의 의병 정신은 너무도 숭고하여 숨이 막힐 지경이다. 더구나 여성에게 있어서랴.
우리를 옭아매는 돈, 명예, 사랑, 행복, 편안함 등 세속적인 가치들을, 얼핏 보아 형체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나라’와 ‘민족’ 앞에
모두 조건 없이 어떻게 바칠 수가 있었을까? 결코 쉽지 않은 일을 이름 없는 의병들은 해 내었다. 무영의 부친은 그 의병 정신을
깊이 추모했고 간직했던 분이 아니었을까? 일경에게 처형 당한 후 서대문 형무소 앞에 방치된 채, 무서워 아무도 손을 못 대는
이봉창 의사의 시신을 정성껏 거두어 주었던 만해 스님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장면이다.
이무영은 1908년 한겨울 충북 음성군 음성읍 오리골에서 아버지 이덕여씨와 어머니 민씨 사이에서 7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적 이름은 용구(龍九) 본명은 갑룡(甲龍)이었는데, 무영이란 필명은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1929년 <8년 간>이란 장편을
<조선강단>에 연재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그가 타계하기 2년 전에 호적 이름으로 올려졌다.
후미진 산골 생가터의 가을 햇살
음성 관광 안내 팸플릿에서 ‘이무영 생가터’를 찾았지만 어떤 자료에도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예총지부를 방문하여 얻어낸
자료에서 겨우 주소를 알아내어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먹을거리 볼거리 관광은 넘쳐나도, 생각거리 문화 관광에는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인가? 지난해 11월 여주기행의 류주현, 12월 공주기행의 김인겸에 대한 후손들의 무심함이 되새겨지는 순간이었다.
이무영 선생 생가터
답사팀 세 사람은 읍내에서 그리 멀지 않으나 후미진 산촌 오리골로 향했다. 왼쪽으로는 논과 밭 오른쪽으로는 실개천을 끼고
올라가는 길은 버스로 가기엔 좁은 듯했으나, 지나는 농부의 얘기로는 저 위에 주차장이 마련돼 있다고 한다. 아마도 기행 당일에는
차에서 내려서 초가을 풀내음을 맡으며 10여 분 걷는 것이 좋겠다고 의미 있는 합의를 보았다.
생가 터에 도착하니 연두색 철문이 앞을 가로막는다. 철문 위에는 때마침 이웃집 아낙이 걸어 두었음직한 흰 빨래들이 늦여름의
햇볕을 쬐고 있었다. 작가에 대한 예의도 갖추고 문안 인사도 드릴 겸 빨래들을 걷어 옆집 담 위로 옮겨 놓았다. 세월과 생활이란
으레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아닌가 하고 넘기기로 했다.
철문 좌우로 두 민가가 입구를 가리고 있어 자칫 그냥 지나칠 뻔하였다. 시골집으로서는 넓지가 않은, 얼핏 보기에 칠팔십 평 정도
되어 보이는 집터다. 대문의 철기둥 옆으로 난 좁은 틈으로 들어가 보니 왼쪽에 이무영문학비, 오른쪽에 지은 지 몇 년 되지 않은
팔각정이 하나 서 있다. 이름하여 ‘무영정’. 안쪽 위에 현판들이 걸릴 자리에는 2002년에 마지막으로 찍은 생가의 모습을 비롯해서,
이무영의 얼굴이 간혹 보이는 기념할 만한 낡은 사진들이 액자 속에 가득히 들어 있다. 잘 정비된 기념관에 가 있어야 할 사진
들인데, 아무래도 격에 맞지를 않다. 이렇게 누기가 가득찬 야외 그늘 속에 사진들을 보관 전시하다니, 얼마 안 가서 다 녹아 버리면
어쩌려고......
더구나 그 앞에 세워진 정자 건립 비석 내용을 자세히 보니, 2003년 경에 낡은 생가를 허물고 그 자리에 무영정을 지었노라는
사연이 새겨져 있다. 개발과 보존이란 명제가 여기서도 부딪치고 있구나 싶다.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 주어야 할까?
사진속 이무영 생가
사진 속의 생가 모습은 과연 남루한 시골집 모습 그대로이긴 하다. 그러나 1900년대의 궁핍하고 신산한 서민의 생활상을 그대로
담고 있는 모습, 그것도 소박한 민족애를 실천하다가 일경의 눈을 피해 살았던 한 농민의 숨결이 살아 있는 집이 남루하고 퇴락한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고심 끝에 빚어진 결과이긴 하겠으나 더 이상 손상되지 않도록 보수하고 그 원형을 보존함만은 못하였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을
과연 가을 햇살이 위로해 줄까?
험난했던 성장기와 작가 수업
6세 때 오리골에서 중원군 신니면 용원리로 이사한 무영은 보통학교에 입학하고, 여기서 만난 이흡(후에 시인이 됨)과 함께 1920년
서울로 무작정 유학을 떠나 휘문고보에 입학한다. 수학에 과락한 충격으로 4학년을 중퇴한 17세 되던 해, 이번에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노자돈만을 쥐고서 단지 문학 수업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으로 건너간다.
도일하여 그곳 중학교에 입학하여 고학으로 전전하다가 중퇴하고, 일본의 문학잡지 <문학시대>의 편집을 맡았던 작가 가토
다께오씨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기숙하면서 4년 동안 혹독한 작가 수업을 한다.
그 후 19세에 데뷔작인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 등을 탄금대인이란 필명으로 발표하기도 했지만 주목받지는 못했다. 21세 때
(1929)에는 일본의 신인 작가들의 작품 합평회에서 일본 식민주의의 첨병인 ‘동양척식주식회사(동척)를 악귀로 상징한 <악몽>이란
단편을 내놓아 물의를 일으킨 후 귀국하여, 강습소 교원, 출판사 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23세 때, 동아일보에서 한국 최초로 희곡 현상 공모에 <한낮에 꿈꾸는 사람들>이 이산(李山)이란 필명으로 당선되어 극예술연구회
에서 공연되고, 염상섭, 서항석, 이은상 등과 교유하게 되었다.
26세 때(1934년),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학예부 기자로 일하기 시작, 김동인 채만식과도 가깝게 지내며 많은 희곡과 단편 중편들을
발표한다.
28세 때 아내 고일신을 맞아 혼례를 치른 후 서울 봉래동에 신혼살림을 차렸으나, 8월에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이 일어나 10개월 간 정간되는 바람에 경제적 고초를 겪는다. 이 때 친구 이협과
순문예지 <조선문학>을 창간하여 주간으로 일하기도 한다.
31세 되던 해(1939), 창작 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동아일보를 사직하고, 친구 이흡이 살고 있는 경기도 시흥군 의왕면(옛 지명은
군포)으로 이사하여 1951년 1.4후퇴 때까지 12년 간 이곳에 머물러 살았다. 같은 해에 자전적 소설이라 할 수 있는 그의 대표작
<제1과 제1장>을 쓰게 되는데, 이를 통해 그의 농민문학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므로, 개요와 줄거리를 간략하게나마 소개
하기로 한다.
<제1과 제1장>은 어떤 소설인가
주제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일제강점기 농촌의 피폐한 현실과 흙에 대한 지극한 애정’이다. 이 소설은 작가 이무영의 자전적
체험을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며, 그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주인공 수택은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도회로 유학하여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와 소설가로 활동한다. 그는 아버지가 무식한 농민이란
생각에 창피하게 여겨 결혼식 날짜까지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인물이지만, 농촌에 대한 동경은 절실하게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한 동안 작품도 제대로 되지 않고 도시에 대한 환멸이 극에 이르자 그는 도시 생활의 모든 이점을 포기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 생각
으로 식구들과 함께 고향으로 내려온다.
부친은 그의 귀향을 반기며 농사거리를 주면서 농사일을 가르친다. 수택과 그의 아내는 힘겨운 농촌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감수하며 점차 농사일에 보람을 느끼기 시작하고, 마침내 부친에 대한 경멸의 감정도 존경심으로 바뀌어 간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도둑이 들었다. 수택은 도둑을 몽둥이로 때려 잡았지만 뜻밖에도 아버지로부터 작대기 세례를 받고 몰인정
하다며 심한 꾸지람을 듣게 된다. 오히려 쌀 한 말을 지워서 돌려보내라는 아버지에게서, 인간미 넘치고 사려 깊은 농민의 생활
철학을 깨우친 수택은 자신의 경솔함과 몰인정을 뉘우치면서, 참다운 농민으로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움을 느낀다.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상은 벼 타작마당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가을이 되어 벼 40섬을 추수하였으나 소작료 25섬, 비료세, 지세,
물세를 빼고 나면 열 섬이 조금 넘는 벼가 남는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농민들의 절박한 현실을 안타깝게
여기면서, 수택은 이제 자기도 어엿한 농민의 한 사람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의 타작마당에서 볏섬을 지고 고꾸라지기를 거듭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남의 힘 빌리지 말고 스스로
일어서라고 몰아붙인다. 수택은 눈물과 코피를 쏟으면서도 끝내 볏섬을 지고 일어서서 ‘제1과 제1장’을 되뇌이며 집으로 향한다.
평론가 윤병로는 <이무영 선집> 해설에서 “흔히 무영을 가리켜 ‘농민문학의 선구자’라고 한다. 실로 그는 흙을 문학으로 삼고,
흙으로 돌아간 작가다.”라고 평했다.
이무영의 생활과 문학 세계
1929년에 일본에서 귀국한 후 1930년대에 들면서 연극에 관심이 많아 유치진이 중심이었던 <극예술연구회>에 들어갔다. 그 후
이효석, 정지용 등과 함께 <9인회> 동인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지어진 <지축을 돌리는 사람들>, <반역자>, <흙을
그리는 마음> 등에서는 무정부주의적 저항의식이 표현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카프(KAFP;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에 직접 가담은
하지 않았지만 다소간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무영 선생상
그는 오래 전부터 흙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그 동경은 작품 속에서 농촌의 피폐함과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에 늘 안타까움과
분개함을 표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그는 <제1과 제1장>에서와 마찬가지로 마침내 흙의 세상 전원으로 돌아가기를
결심한다.
1939년은 그의 작품 세계에 일대 전환기를 맞는 해다. 1937년 복간된 동아일보 기자직을 과감히 떨치고 도시의 잡다한 티끌을
떨어 버리기 위해, 경기도 군포(지금의 의왕시) 근처 시골에 가족을 데리고 미련 없이 들어간 것이다. 그가 이주한 곳은 '궁촌'이라는
마을이었고, 거기에는 죽마지우 이흡이 살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1951년 1·4후퇴까지 12년 동안 농민과 더불어 직접 농경생활을
하면서 이를 토대로 한 농민소설 창작에 전념하였다.
1939년의 「제1과 제1장」과 1940년의 「흙의 노예」는 이때 얻은 빼어난 작품으로 그의 대표작인 동시에 우리나라 농민소설의
명편으로 손꼽힌다. 그는 이 작품에서 농경의 신성함과 농민의 성실한 삶을 예찬하고 있으며 아울러 당시 농촌의 참상을 묘사하고
있고, 농촌의 피폐한 원인을 캐 보려 하고 있다.
이 시기에 그는 장편 「향가」「세기의 딸」그리고 그의 궁촌생활을 담담 하게 써내려 간 「궁촌기」를 발표했다. 그의 활발한
작품 활동과 우수한 문학성이 인정을 받아 1943년엔 장편 「청기와집」으로 조선예술상을 받는다. 그리하여 한국문단의 농민
소설가로 확고한 자리를 굳히고 명성을 얻은 그는 1946년 서울대학교에도 출강, 소설론을 강의하면서 「소설작법」도 썼다.
해방 공간과 6.25 이후의 이무영
해방 후 혼란기에는 군포에 칩거하듯 하며 창작에 몰두한다. 희곡 <논개>와 <퀴리부인>을 썼으며, 연희대학교에 출강하며
<소설작법>을 짓기도 했다.
그 후 1950년엔 그의 또 하나의 역작인 장편소설 <농민>을 내놓았다. 그리곤 6·25를 맞고 이듬해엔 소설가 염상섭, 윤백남과 더불어
해군에 입대 참전하여 정훈장교로서 정훈교육을 맡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1953년 <농군>, 1954년 <노농> 등 장편 농민소설을 발표
했는데, 이들 장편에서는 농민들의 역사적 수난과 항거를 서사적으로 그려 내었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그의 문학적 방향을 바꾼다. 1955년 <숙향의 경우> 1958년 <계절의 풍속도>등을 비롯, <비련>, <송미망인>,
<창>등에서는 주로 애정문제를 다룬 것이다. 단편 <시신과의 대화>, <아침>도 이때 나왔고, 희곡 <팔각정 있는 집>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농부전초>로 서울특별시 문화상을 받는다. 한편 숙명여자대학교와 단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총 최고
위원으로도 활약했다.
농민소설에 있어 단연 독보적인 이무영은 천재형이기보다는 노력형의 작가로 알려져 있으며, 건실한 작품을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 성실하고 중후한 작가였다. 애석하게도 4·19 이틀 뒤인 1960년 4월 21일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장례는
문총장으로 치러졌으며, 묘소는 수유리 천주교 묘원에 있다.
민족 수난의 아픔을 되짚어 보며
일제강점기는 한국인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과 고통을 안겨 주었지만, 특히 문화 예술인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세월이었다.
그들은 간악하고 교활한 침략자들의 1차 표적이 되었기 때문이다. 폭압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거나 회유를 통해 농락하려 했다.
가령 현실적으로 벗어날 수 없는 강자와 약자 사이에서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부당하고 포악한 강자에게 피해를
입은 당사자에게 손쉬운 감정의 돌팔매가 능사이겠는가? 물론 목숨을 걸고 지조를 지켜낸 사람에게 최고의 칭송을 바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몸을 피하여 곧은 절조를 지켜낸 사람에게도 민족의 자존을 지켜낸 공훈을 돌리는 것이 마땅한 일이다. 우리
조국의 정통성은 바로 그들의 희생과 용기 위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비난과 돌팔매에 앞서 교활한 가해자에 대한 질타와 징벌이 선행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위급한 민족 앞에서 일시적이라도 본분을 망각하고 등을 돌린 지식인들에게 일벌백계의 질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의 정황 조사도 철저히 해서 혹시나 가혹하지는 않은가, 또 한 번의 무고한 희생자가 생겨나진
않겠는가를 면밀히 살피고 더욱 고심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이러한 자중지란과 고육지책을 뒤에서 은근히 즐기는 자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다.
이 일을 담당했던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일제의 포악성을 고려해서 한두 편 정도의 글을 남긴 정지용, 김정한 등은 명단에서
제외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3년에 이무영은 친일 소설 〈토룡〉과 〈향가〉를 발표한 바 있고, 《매일신보》에 〈가련한 처칠의 말로〉
(1942) 등 친일 논설을 실은 바 있다. 2002년 발표된 친일 문학인 42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몇몇 작품들이 아쉬운 옥의 티는 될지언정, 그의 평생에 걸친 농민문학 개척 공로와 수많은 작품들의 뛰어난 예술성
으로 우리 문학사에 끼친 업적을 훼손하거나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자손들의 자중지란이야말로 간악하고 교활한 침략자들이
끝끝내 바라는 정황일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과 때문에 큰 공에 눈을 감아서야
이러한 갈등과 부담을 모두 극복하고 1994년에 음성군과 문화원이 '무영제'를 제정, 제1회 무영제가 1994년 4월 20일에 음성공설
운동장에서 거행되었으며, 올해까지 제18회가 거행되었고 그를 추모하는 시낭송 및 백일장도 진행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럽다.
또한 2000년부터 충북 청주의 동양일보사가 주관하고 음성군과 음성예총이 후원하여 해마다 4월 무영제 때에 ‘이무영 문학상’도
시상하고 있다. 올해로 12회째. 수상작가는 1회 이동희, 2회, 김주영, 3회 김원일, 4회 이현수, 5회 한만수, 6회 심윤경, 7회 조용호,
8회 김영현, 9회 이동하 소설가 등이다. 이 상이 갖는 의미는, 현대의 작가들에게 농민문학-전원문학의 올바른 계승과 인간다운
삶의 모습에 대한 성찰을 계속할 수 있도록 소중한 에너지를 제공한다는 점이 될 것이다.
기왕에 욕심을 부려 본다면, 자치단체와 예총 등 문화단체가 이무영이란 귀중한 문화관광자원을 재발견하기 바라며, 하루속히
‘이무영문학관’을 세워서, 훼손되고 사위어 가는 문화유산들을 잘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전하는 일에도 머리를 맞대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기념관으로
언제 보아도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 마주 쳐다보며 한 번쯤 씩 웃기만 해도 평화와 행복이 감염될 것 같은 인상이다.
2007년 1월, 반 외교통상부장관이 유엔사무총장으로 선출되던 날, 우리 국민 대부분은 반신반의하지 않았나 싶다. 먼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국력에 걸맞는 일인가 하고. 그러나 그 후 반 총장이 끊임없이 동분서주의 발걸음으로 해결해 낸 국제사회에서의
분쟁과 평화 정착 노력 그리고 지난 2011년 봄의 재임, 그야말로 놀라움이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그는 1944년 이 곳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 충주로 옮겨 살았다.
생가가 있는 행치는 보덕산(큰산)이 기와집 형상을 하고 둘러싸고 있는 편안하고 아늑한 마을이다. 이 곳은 약 500년 전에 광주
반씨 장절공파에 의해 형성되어 현재 종친 15가구가 살고 있는데, 생가 바로 옆에 행치종중의 고풍스런 와가 사당이 과거와 현재의
기울기를 잡아 주고 있는 듯하다.
1962년 충주고 3학년 시절 적십자사 비스타(VISTA) 프로그램의 한국 대표로 뽑혀 존 F.케네디를 만났을 때, 그의 면전에서 외교관이
되겠다고 말한 약속을 지켜 끝내 외교통상부장관이 되고, 유엔사무총장이 된 것이라고 회고한 바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의 기념관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다소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지구상의 수많은 독재자들의 동상과 기념관이
역사의 재평가와 함께 일시에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목격해 왔기 때문이다. 세우려는 사람들이 현세의 영향력이나
이익과 권세에 기대려 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가 있고, 지역적 이기주의나 집단의식의 발로라는 오해를 살 여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참을성 있게 역사의 평가를 기다려야 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남는, 가볍지만은 않은 문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들리는 바에 의하면 반 총장은 진정으로 자신의 기념관 짓는 일을 만류했노라 하는 소식이고 보면 그의 됨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을 듯하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그의 세계 평화 사도로서의 크나큰 걸음새를 누가 감히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반 총장의 생가, 기념관, 평화의 공원 등이 새로운 물결을 타고 단장되기에 한참 분주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현지
문화 해설사에게 듣기로 하고 본고에서는 생략하지만, 부디 졸속을 넘어 그의 겸손함과 부드러운 미소를 무리 없이 담아내는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양촌 권근 삼대 묘역(陽村 權近 三代 墓域)을 찾아서
삼대 묘역에는 30여 분을 찾아 헤맨 끝에 어렵사리 찾아 들었다. 친절한 현지 두 위원들의 노고가 아니었다면 여기서 날은 이미
‘전설의 고향’처럼 저물었을 것이다.
양촌 권근(1352;공민왕1~1409;태종9)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활약한 문학가이자 정치가이며, 그의 아들 권제와 손자 권람까지
삼대가 나란히 묻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는 고려 우왕 때 성균 대사성, 예의판서를 역임했는데, 정도전 정몽주와 같이 친명정책을 주장하여 원나라 사절단의 영접을
반대하다가 결국은 오래도록 유배 생활을 하기도 했다. 조선 건국 후 태조 9년 정도전 몰락 후 대사헌을 지내고 사병(私兵)의
폐지를 주장하여 왕권 확립에 큰 공을 세웠다. 그가 지은 경기체가 형식의 상대별곡(霜臺別曲)이 전한다. 조선 건국 후의 새로운
기풍을 불러일으키고 사헌부의 곧은 기상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진 이 노래는 6행씩 전 5연의 정형시인데 여기서는 1연만 소개하기로
한다.
상대별곡 시비
상대별곡(霜臺別曲)
화산남(華山南) 한수북(漢水北) 천년승지(千年勝地)
광통교(廣通橋) 운종가(雲鐘街) 건너 드러
낙낙장송(落落長松) 정정고백(亭亭古栢) 추상오부(秋霜烏府)
위 만고청풍(萬古淸風)ㅅ경(景) 긔엇더니잇고
엽(葉) 영웅호걸(英雄豪傑) 일시인재(一時人才)
영웅호걸(英雄豪傑) 일시인재(一時人才)
위 날조차 몃 분니잇고
(풀이)
삼각산의 남쪽, 한강 북쪽의 경치 좋은 천년 도읍지 한양에
광교, 종로 거리 건너서 들어가면
큰 소나무 우뚝 솟고 잣나무 우거진 위엄 있는 사헌부,
아, 만고에 맑은 바람 감도는 곳, 이곳 경치가 어떠합니까
영웅호걸 오늘의 훌륭한 인재, 영웅호걸 오늘의 훌륭한 인재
아아, 나를 포함하여 모두 몇 분입니까
오늘의 시각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어색함이 느껴지겠지만, 조선 개국 초반 의욕에 넘치는 시대 분위기를 읽을 수 있는 노래임을
알 수 있다.
양촌은 성리학자이면서도 문학을 존중하였고, 시부사장(詩賦詞章)의 학을 실용면에서 중시하여 이를 장려하였으며, 경학과
문학의 양면을 조화시켰다. 저서에 <양촌집(陽村集)>, <입학도설(入學圖說)>, <동현사략(東賢史略)> 등이 있다.
권제(權踶)의 용비어천가
권근의 아들 권제(權踶;1387~1445)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의 문신이며 학자이다. 세종 초에 이르러 집현전부제학, 대사헌,
한성부윤을 지내기도 했다. 1440년에는 <고려사> 편찬에 참여했으며, 세종 27년(1445)에는 정인지, 안지와 함께 훈민정음 연구의
보고(寶庫)인 장편 서사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지어 바쳤다.
이미 잘 알려진 노래지만 제1장과 맨 끝 장인 제125장만 소개하기로 한다.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1장
해동(海東) 육룡(六龍)이 ㄴ,ㄹ,샤 일마다 천복(天福)이시니
고성(古聖)이 동부(同符) ㅎ,시니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제125장
천세(千世) 우희 미리 정ㅎ,샨 한수북(漢水北)에 누인개국(累仁開國)ㅎ,샤
복년(卜年)이 ㄱ,ㅅ업스시니
성신(聖神)이 니ㅅ,샤도 경천근민(敬天勤民)ㅎ,샤사 더욱 구드시리이다
님금하 아ㄹ,쇼서 낙수(洛水)에 산행(山行) 가 이셔 하나빌 미드니잇가
권근의 손자인 권람(權擥;1416~1465)은 수양대군과 뜻이 통하여 김종서 등을 제거하는 계유정란 때 1등 공신으로 대우 받았으며,
세조 즉위 후 이조참판에 발탁된 인물이다. 활을 잘 쏘고 문장도 뛰어났으나 횡포가 심하고 축재를 많이 하여 탄핵을 여러 차례
받음으로써 조상 체면을 깎아 내렸으므로 자세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삼대묘역
날은 저물고 묘비석과 장명등을 확인하느라 무릎까지 차는 풀섶을 한참이나 헤치고 다녔는데, 땅벌떼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망정이지 목숨이 위태로울 뻔하지 않았는가? 9월 초 기행일엔 벌초를 모두 끝냈는지 확인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잊지
말아야겠구나.
삼대가 묻힌 이 묘역 아래로 안동 권씨 문중의 사당이 있고 지금도 후손들이 몇 세대 모여 살고 있으나, 제대로 관광명소로 가꿔
놓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다행히도 이곳에서 농사지으며 살고있는 권태우 관리소장을 만나, 기행 당일의 묘역 안내와 저 위쪽에
자리 잡은 공자, 주자, 안향의 사당인 도통사(道統祠)에 대한 해설을 당부하였다.
문학기행이 막바지에 접어들 무렵 우리는 10여 분을 달려 봉학골 삼림욕장으로 간다. 조성한 지가 그리 오래진 않으나 숲 그늘이
있고 냇물이 있어 휴식하기 좋은 곳이다. 맑은 냇물에 발을 담그고 이 지방 특산물 포도알을 한 잎 베어 물면, 하루 문학기행의
피로가 가을 하늘 흰 구름처럼 떠나가고 말 것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