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여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푹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내음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왼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동백꽃' 중 일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속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을 두고 남쪽 바닷가 상록교목의 붉은 동백꽃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한다. 소설 속 '노란 동백꽃'은 동백이 아닌 생강나무 꽃이란 걸 모르는 데서 생겨난 오해다.
강원도 사람들은 이른 봄 산기슭에서 노란 꽃등을 켜는 이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 또는 산동백이라 불러왔다. 춘천 태생의 김유정이 소설에서 생강나무 꽃을 '동백꽃'이라 적은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었다.
30년 대 한국소설의 축복으로 불리는 김유정의 고향 춘천.
김유정의 고향 춘천으로 답사를 떠난 것은 온 국민을 깊은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하루 전날이었다. 경춘가도를 타고 북한강을 거슬러 오르는 동안 내 마음은 산봉우리에 이는 구름을 타고 한껏 높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강 양편의 산들은 초록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신록으로 눈부셨고, 봄 강물은 끊임없이 설레며 찰랑거렸다.
한때 춘천을 '삼수의 고장'이라 했다. 삼수가 뭐냐 하면 춘천을 상징하는 '수'자가 들어간 세 가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수', '막국수'까지는 어렵지 않게 맞히는데 마지막 한 가지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 한 가지는 소설가 이외수다. 지금은 화천감성마을로 자리를 옮겨 앉았으니 질문 자체가 우습게 되어버렸지만 철 지난 유행가처럼 그땐 그랬다.
나는 개인적으로 춘천(春川)이란 한자식 지명보다 순 우리말인 '봄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봄내'하고 소리 내어 부르면 금방이라도 계곡의 물소리 명랑하게 들려오고 산기슭 어딘가에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속의 점순이가 생강나무 노란 꽃그늘 아래 기다리고 서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일제강점기 1930년 대 궁핍한 농촌의 비극적 현실을 그리면서도 해학성을 잃지 않는 김유정의 소설을 읽었던 게 언제였던가. 그의 소설을 두고 ‘솔직한 농촌소설의 전형’이라고 하지만 김유정의 소설의 장점은 눈물 속에 미소가 섞여 있는 해학성이 아닐까 싶다. 그의 소설을 읽다보면 가슴 아픈 눈물을 흘리다가도 웃을 수밖에 없고 웃다 보면 안타까움에 가슴이 싸해지면서 희망을 만나곤 했었다.
불과 4년여의 짧은 문단 생활이었지만 김유정(1908. 1.11~1937.3.29)은 스물아홉 짧은 생애 동안 소설 30편, 수필 12편, 편지. 일기 6편, 번역소설 2편을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1996년까지 김유정 문학에 대한 연구 논문만 360편에 이르는 것만 봐도 그가 한국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실로 대단하다. 김유정 문학촌이 생긴 것은 물론이고, 열차가 서던 신남역은 역명을 아예 김유정역으로 바꾸어 달았다.
김유정은 1908년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김춘식과 청송 심씨의 2남 6녀 중 차남(일곱 째)으로 태어났다. 1913년 김유정 일가는 고향의 토지 일부를 정리해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 백여 칸짜리 살림집을 마련하고 이사를 했다. 그런데 이사할 무렵부터 시름시름 앓던 어머니는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3년 뒤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김유정은 고아가 되었다. 그 뒤 가장이 된 형 유근은 운니동 집을 처분하여 관철동으로 이사했다.
어린 유정은 저녁마다 근처 우미관에서 흘러나오는 나팔소리를 들으며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형 유근은 주색잡기로 선대의 재산을 탕진하느라 어린 유정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고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유정은 모성결핍으로 한때 말을 더듬기도 했다.
어머니에 대한 남다른 그리움 때문이었을까. 휘문고보를 졸업하고 연희전문에 들어간 김유정은 연상의 여인이었던 명월관 기생 박록주에게 막무가내로 연애편지를 날리며 짝사랑에 빠져들었다.
1930년 4월 6일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되어 목욕탕에서 나오는 박록주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한 김유정은 날마다 한 통씩 편지를 써서 부치며 구애를 했다. 당대 명창이던 박록주는 그의 편지를 뜯어보지도 않고 찢어버렸다. 좀처럼 그의 편지공세가 멈추지 않자 박록주는 가정부를 시켜 김유정을 불러 타일러 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장안엔 연희전문 학생과 기생 박록주 사이의 염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혈서도, 애원도, 협박도 소용없이 유정의 짝사랑은 실패로 끝나고 열렬히 구애하느라 결석이 잦았던 탓에 학교에서도 제적당하고 만다.
1932년 김유정은 실연과 학교 제적이라는 상처를 안고 학교가 없던 실레마을로 내려와 금병의숙을 짓고 야학을 열었다. 고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약 2년 간 농촌계몽활동을 벌이면서 30년대 궁핍한 농촌 현실을 희화적으로 체험했다.
1933년 다시 서울로 올라간 김유정은 농촌과 도시 밑바닥 인생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쓰는 신명에 빠진다. 1933년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했다. 1935년 소설 '소낙비'가 조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1등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에 가작 입선함으로써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벌이는 한편 <구인회> 후기 동인으로 가입한다.
김유정은 등단 이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글쓰기의 열정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날로 몸이 꺼진다. 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기조차 자유롭지가 못하다. 밤에는 불면증으로 하여 괴로운 시간을 원망하고 누워 있다. 그리고 맹열(猛熱)이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딱한 일이다...... 나는 참말로 일어나고 싶다. 지금 나는 병마와 최후 담판이다. 흥패가 이 고비에 달려음을 내가 잘 안다. 나에게는 돈이 시급히 필요하다. 그 돈이 없는 것이다. 내가 돈 백 원을 만들어 볼 작정이다. 동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네가 좀 조력하여 주기 바란다.
또다시 탐정소설을 번역하여 보고 싶다. 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허니 네가 보던 중 아주 대중화되고 흥미 있는 걸로 한 두어 권 보내주기 바란다. 그러면 내 오십일 이내로 번역해서 너의 손으로 가게 하여 주마. 허거든 네가 극력 주선하여 돈으로 바꿔서 보내다오.
물론 이것이 무리임을 잘 안다. 무리를 하면 병을 더친다. 그러나 병을 위하야 엎집어 무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의 몸이다. 그 돈이 되면 우선 닭 삼십 마리를 고와 먹겠다. 그리고 땅군을 들여, 살모사 구렁이를 십여뭇 먹어보겠다. 그래야 내가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둥궁이가 쑥쑥구리 돈을 잡아먹는다. 돈, 돈, 슬픈 일이다.
나는 지금 막다른 골목에 맞닥뜨렸다. 나로 하여금 너의 팔에 의지하여 광명을 찾게 하여 다우. 나는 요즘 가끔 울고 누워 있다. 모두가 답답한 사정이다. 반가운 소식 전해다우. 기다리마.
3월18일. 김유정으로부터
폐병과 치질에 시달리면서도 유정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돈이 생기면 닭 삼십 마리를 고아먹고, 땅군을 사서 살모사 구렁이 십여 마리를 먹고서 병을 떨쳐낼 궁리를 했다.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회남이 보내온 탐정소설을 밤을 새워가며 번역을 했다. 글을 쓰다보면 어느새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곤 했다. 유정은 제 몸의 생명력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홍문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며 밤을 밝히기 일쑤였다. 가래도 끓고 기침도 잦아졌다.
1937년. 다섯 째 누이 유흥의 과수원집 토방에서 병마와 싸우던 김유정은 3월 29일 새벽, 길게 숨을 몰아 쉰 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잘 보려는 듯 눈을 한 번 크게 떴다가 이내 영원히 눈을 감았다. 김유정의 나이 겨우 스물아홉이었다. 시신은 화장되었고, 뼛가루는 조카에 의해 한강에 뿌려졌다. 그리고 스무날이 지났을 때 멀리 도쿄에서 시인 이상(李箱)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단편소설은 탁월한 언어감각에 의한 독특한 체취로 오늘까지도 그 재미, 그 감동을 잃지 않고 있다. 이는 김유정이 소설의 언어에서나 내용은 물론 진술방식에서 우리 문학사에 다시없는 진정한 이야기꾼으로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초행길이 아님에도 김유정을 만나러 가는 봄내길이 설레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서울 춘천 간 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남춘천 IC에서 빠져 나와 구불구불 휘어진 국도를 조금 지나면 한옥 형태의 역사가 인상적인 김유정 역이 보인다. 역에서 5분만 걸어가면 김유정 문학촌이다.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옴폭한 떡시루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실레(증리)는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지금도 점순이 등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마을 전체가 김유정 작품의 무대다.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은 김유정문학촌 홍보관인 '낭만누리'다. 마침 홍보관에선 교과서에 실린 김유정 소설 '봄봄','동백꽃'의 삽화전이 전시되고 있다. 낭만누리를 나와 마을 안 쪽으로 몇 발자국만 옮기면 김유정 기념전시관과 복원된 생가다.
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소설 '동백꽃'의 점순이가 닭싸움을 붙이는 장면을 형상화 한 조각품이 눈에 들어온다. 뒤편으로는 정자가 있는 연못이 자리하고, 오른 쪽으로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 앞엔 한 손에 책을 펼쳐 든김유정의 동상이 높다랗게 세워져 있다.
김유정 기념 전시관엔 김유정의 생애를 비롯하여 김유정의 작품집과 연인들, 사진으로 보는 김유정 문학촌의 어제와 오늘, 봄봄 디오라마, 김유정의 마지막 편지 필승전 등 다양한 자료가 전시 되어 있다. 기념관 앞 동산을 지나면 2002년도에 복원된 초가지붕의 ㅁ 자 형태의 생가가 자리한다.
김유정의 생가는 그의 조부가 지었다. 실레마을 대부분의 땅을 소유한 대지주였던 김유정의 조부 김익찬은 춘천 의병 봉기의 재정적 지원을 했던 배후 인물이었다.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든 ㅁ 자 형태의 집을 짓고 기와집 골격에 초가를 엊은 이유는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라 집의 내부를 보이지 않게 하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생가 뒷편에는'봄봄'의 장인과 데릴사위인 나, 그리고 점순이가 키를 재는 장면이 조각품으로 익살스럽게 연출되어 있다.
김유정 문학촌의 금병산 자락엔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금병산 아기장수 전설길>. <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등 재미있는 이야기 열여섯 마당과 만날 수 있는 실레 이야기길이 조성되어 있다. 30분에서 1시간 반까지의 코스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 문학기행을 오는 사람들이 꼭 한 번 씩 걷고 가는 길이다.
기념관 옆 '유정마을에서 닭갈비와 막국수로 배를 채운 후 식당 젊은 사장님의 4륜구동 SUV 차량을 얻어 타고 실레 이야기 길을 따라 마을의 고샅길을 지나 산을 오른다, 뱀처럼 휘인 길을 몇 구비 돌았을까, 산을 오르던 길이 다시 마을 쪽으로 향하는가 싶을 즈음 "함섭한지아트갤러리" 란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아담한 집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한지화를 그리는 함섭 화가의 작업실이자 갤러리다. 예술가의 풍모가 물씬 풍기는 백발의 노신사가 갤러리 앞에 서 있다가 멈춰서는 차를 보고는 다가와 식당 사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식당 사장님의 소개로 명함을 주고받고 인사를 나누었다.
인사를 나눈 뒤 함섭 화가의 안내로 갤러리와 작업실을 둘러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갤러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스포츠의 환희의 순간을 포착한 대형작품들이 빼곡히 걸려 있는 작업실은 함섭 화가의 아드님의 작업실이고 화가의 작업실은 그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화가는 그 많은 작품 중에 마라토너가 들어 있는 작품을 가리켰다. 작품 속 마라토너가 보스턴 마라톤의 영웅 함기용 선수로 화가의 아버지라 했다. 함기용은 1950년 4월 19일 미국 보스턴 마라톤을 제패한 우리 육상스포츠 역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1942년 춘천에서 태어난 화가 함섭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졸업 후 유화 아크릴 화를 캔버스에 작업해오다 1980년 초부터 과거에 대한- 한때 존재하다 지나가버린 것에 대한 향수로서가 아닌- 그 문화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찾아보려고 전통 닥종이를 표현매체로 한지화를 개척해가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언뜻 보면 유화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두껍게 전통식으로 만들어진 닥종이를 바탕으로 한다.
물에 적신 한지 고서 조각들을 한 점 한 점 오려붙이고 뜯어 붙여 솔로 두드리고 파괴시켜 표현된 형과 색의 진수, 닥종이의 독특한 '맛'만을 마음에 두고 제작되어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동과 서, 과거와 현재가 혼합되어 한국 전통의 맛이 배어나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보여준다.
하지만 무어라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편안하면서도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그림에 문외한이 대가의 작품을 두고 함부로 말하는 것은 극히 조심스러운 일이다. 도록에 들어 있는 평론가의 평을 옮겨 적는다.
오래된 사물함을 열었을 때, 그것도 어머니나 누나가 사용하던 바느질 도구들이 들어 있는 함지를 열었을 때, 낯익은, 그러나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저 편에서 손짓하는 그리움이 아련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잔치마당, 웅성대는 사람들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만남이 주는 여유로움, 가을날 타작마당의 풍성함이 안겨주는 가슴 뿌듯한 순간들, 오래된 고서의 책갈피를 열었을 때 나는 근접할 수 없는 내음, 동구에 서 있는 장승, 늙어가는 장승이 내뱉는 세월의 무게, 그의 화면은 우리들을 무한한 시간의 저편으로 이끌어간다.
-미술평론가 오광수의 평론 중 일부-
함섭 화가와 작별 인사를 하고 김윤선 도예공방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김유정문학촌장이자 중견 소설가인 전상국 선생을 만났다.
전상국 선생은 196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행'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온 후 '아베의 가족' 길 등의 분단을 소재로 한 일련의 소설들을 발표하며 분단문학의 새 지평을 열어 보인 작가다. 평소 흠모하던 전상국 선생을 우연히 찾아든 도예공방에서 약속도 없이 만나 뵈니 반갑기 그지없다.
오는 5월 10일 김유정문학촌 내에 거주하는 몇몇 예술인들이 뜻을 모아 처음 개최하는 '금병산예술제'를 준비하느라 잠시 공방에 들렀다고 했다. 김윤선 도예가의 공방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서로 분야는 다르지만 예술이란 하나의 공통분모 속에 아름다운 하모니를 빚어낼 '금병산예술제'가 자못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김유정문학촌을 떠나 다음 답사지로 차를 달렸다. 의암호변의 김유정문인비를 찾아볼까 하다가 이내 지나쳐 곧바로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 있는 고려 개국공신 장절공 신숭겸 묘역을 찾았다.
몇 번의 춘천 여행에서도 찾아본 적 없던 곳. 장절공 신숭겸 묘역은 우리나라 4대 명당지의 하나로 꼽히는 풍수가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묘역은 여느 왕능에 못지 않다. 묘역엔 영정각, 신도비각, 기념관과 재실등이 배치되어 있다.
평산 신씨의 시조인 신숭겸은 배현경, 홍유, 복지겸 등과 함께 왕건을 추대하여 고려 건국의 대업을 이룬 개국공신이다. 927년(태조 10년) 대구에서 신라를 도와 후백제의 견훤과 싸우다가 적군에게 포위되어 위급하게 되었다. 이때 신숭겸은 태조 왕건을 수풀에 숨게 하고 옷을 바꾸어 입은 뒤 임금의 수레를 타고 나가 싸우다가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신숭겸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 왕건은 목이 없는 신숭겸의 시신을 수습하여 금으로 머리를 만들어 장사 지냈다. 도굴을 염려하여 시신은 하나인데 봉분은 세 개인 1기 3분의 특이한 묘역을 조성하였다. 태조 왕건은 팔관회에서 신숭겸 김낙 등 전사한 공신들을 생각하고 가상을 만들어 열석 시키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하였다. 이 전통은 계승되어 훗날 이를 본 예종은 두 장수의 후손을 불러 시를 지어 내리고 충절을 기리는 노래 '도이장가'를 지은 것이 <평산신씨장절공유사(平山申氏壯節公遺事)>에 그 제작 동기에 관한 소상한 기록과 함께 작품이 전한다.
장절공 묘역을 한 바퀴 휘이 돌고 마지막 기행지인 강원도립화목원으로 향했다.
강원도립화목원은 행정구역상 춘천시 사농동 218-5번지외 13필지로 춘천도심에서 약 5㎞ 거리에 위치한 꽃나무 수목원이다. 주변에는 위도유원지, 청소년수련원, 육림랜드, 인형극장 등이 있어 춘천의 중추적인 관광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강원도내에 자생하는 향토꽃나무의 발굴전시, 종 보존과 번식, 시험연구 기반확충을 목적으로 춘천시 사농동 시험포지에 향토꽃나무 전시관과 수목원을 조성했다. 120,476m2의 면적에 1,544 종 10만여 본의 화목을 심고 가꾸어 1999년 5월 20일문을 열었다.
화목원의 대표식물로는 개느삼, 히어리, 마가목, 참꽃나무겨우살이, 박쥐나무, 병아리꽃나무, 꼬리조팝나무, 가침박달, 생열귀나무, 매화말발도리, 산겨릅나무, 죽도화, 산앵도나무 등의 목본류와 금강초롱, 노랑무늬붓꽃, 광릉요강꽃, 노루귀, 매발톱꽃, 금낭화, 복수초, 개불알꽃, 은방울꽃, 솜다리 등 귀한 초화류가 있어 천상의 화원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수목원 내에 산림박물관은 덤이다. 일 년 중 햇빛이 가장 투명한 오월, 싱그러운 신록 속의 꽃구경은 도심에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에 최적의 장소다. 춘천, ‘봄내’로의 기행은 문학의 향기를 따라갔다가 꽃향기를 가슴에 가득 담고 오는 향기로운 여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