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에게 감사한다' 고 밝히고 있다. 이 이야기가 책의 주인공인 라비니아와 벨이 그에게 들려준 이야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작가가 버지니아에 있는 옛 농장의 선술집을 개조하면서 그곳의 내력을 조사하면서 발견한 오래된 지도에 흑인 언덕(Negro Hill)이라는 지명을 보고 몇 달 동안 그곳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글을 쓰려고 하는데 영화만큼이나 선명한 장면이 내 마음의 눈앞에 펼쳐졌다고 하며 그날 <키친하우스>의 서문을 썼다고 한다.
이들이 작가에게 들려주려고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비참한 노예생활 속에서 서슴없이 자행되는 무자비한 사건들?
동물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그들이 살아나가야 했던 삶에 대한 투쟁 의식?
이 책은 가족이라는 울타리안에서의 끈끈한 사랑과 유대감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삐뚫어진 가족 관계속에서 그들은 서로 상처받고 그 상처를 보듬어주고,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안고 살아간다. 이 소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너에게는 언제나 옆에서 너를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다. 니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던지 너를 항상 응원할 것이라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책이 주는 여운이 쉽게 가시지가 않았다.
진짜 존재하는 인물처럼 나는 마마와 파파가 보고 싶었고 그리웠다.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아이를 갖고 자신과 색이 다른 인종의 아이를 맡아도 이들은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베풀었다. 인종과 증오를 초월하여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 마저 느껴진다.
라비니아
이 소설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는 유년시절을 보내고 가족간에 사랑을 나누던, 가족이 머무는 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라비니아도 어렸을 때의 충격에서 벗어나 새 삶을 살게된 키친하우스에 더 집착하게 되었고, 키친하우스의 식구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들이 자기와는 다른 흑인 노예였을 지라도...
라비니아는 이 소설에서 백인이면서도 자신은 흑인으로 살고 싶다고 말하는 백인과 흑인의 중간적인 메개체 역할을 하고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키친하우스의 가족들이었으니 자신 또한 그렇게 되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또한 주인님의 아내였던 마사 마님을 지극정성으로 돌봐드리고 마사 마님과 각별한 사이로 지내게 된다. 마사 마님이 병이 깊어지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라비니아도 버지니아의 농장에서 함께 떠나게 된다.
버지니아에서 떠난 후 그렇게 바라던 버지니아의 농장으로 돌아왔건만 라비니아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 변화에 정체성이 흔들리고 만다.
자신은 변한게 없는데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
자신에게 변한게 있다면 농장주의 부인으로써 빅하우스로 돌아왔다는 것. 그것이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포악하고 삐뚫어진 성격의 새주인 마셜에게 마마와 파파, 키친하우스의 식구들은 모두 무력한 노예일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가족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다. 모두가 마셜 주인님에게서 아비니아 (흑인들은 리비니아를 아비니아로 부름)를 도와주려 적극 나서며 그들은 자신들의 명칭이 마마에서 마에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다독여준다.
라비니아에게 키친하우스라는 장소는 사랑 그 자체를 나타낸다.
벨
벨은 농장주인 주인님과 여자 노예에게서 태어난 친딸이다. 노예라고 하지만 그녀를 지극히 사랑했으며 그녀가 죽고 백인의 아내를 맞기 전까지 벨을 빅하우스에서 자신의 딸로 키웠다. 새 아내가 들어오면서 자신의 신분을 속여야 했던 벨은 키친하우스로 들어가며 노예로써 살아가게 된다.
주인님의 자신의 딸이 노예로 살아간다는 죄책감에 선물과 사랑을 주지만 그것은 오히려 주인님의 아내인 마사 마님의 오해를 사며 벨을 미워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주인님은 벨에게 노예 해방문서를 주려고 하지만 벨은 자신의 집인 키친하우스를 떠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벨은 주인님이 데려온 아비니아를 키우게 된다. 벨에게 있어 아비니아는 딸 같은 존재이자 분신이다.
벨과 아비니아는 유사한 점이 많다. 둘 다 출신이 노예가 아니라는 것과 아픈 과거사가 있다는 것. 둘 다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는 것.
이런 공통점에 이끌려서 인지 벨과 아비니아는 함께 키친하우스에서 자라며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분신같은 존재가 된다.
마셜은 왜 이리 삐뚫어졌을까?
그는 농장주의 아들로 유년기에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했다. 그에게는 가정교사 워터스가 항상 옆에 있었는데 그는 마셜의 약점을 잡고 그를 학대하고 이용해먹는 비열한 인간이다. 아버지는 그런 가정교사를 보며 마셜을 엄격하게 가르쳐야 한다며 두둔한다. 마셜은 자신의 집에서 가족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며 오히려 워터스와 랜킨이라는 흑인을 학대하고 무자비한 일을 자행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다. 마셜은 그에 대한 증오와 분노심에 실수로 자신의 동생마저 죽게 되면서 되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여유있는 빅하우스인데 오히려 키친하우스보다 사랑이 부족하다.
먀셜의 증오는 자신보다 노예인 벨을 더욱 사랑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흑인 노예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더욱 커지게 되고, 그들을 그저 자기에게 소속된 물건으로 취급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그에게 라비니아는 자신의 사랑을 나눠줄 유일한 백인이었을 것이다.
마셜은 벨에게 지독하게 군다. 아버지의 정부, 창녀라며 폭력과 심지어 성폭행까지 서슴없이 저지른다. 이런 참혹학 폭력은 결국 비참한 가족사를 만들게 된다.
가족의 사랑과 헌신
핵심적인 일부분만을 말했을 뿐 이 소설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18세기 인종차별에 대한 내용과 노예로 살았던 흑인의 비참한 삶, 그 속에서도 가족의 아픔을 돌봐주는 따뜻한 마음들, 정체성에 관한 고민, 사랑에 대한 감정과 연민 등 많은 내용을 자연스레 녹여 낸 소설이다. 보는 동안 잔혹한 인간의 행태에 많이 실망하고 안타까웠지만 그 속에서 빛나는 사랑이라는 보석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까지 감동적으로 볼 수 있었다.
후반부 내용은 일부로 적지 않았다. 맨 처음 서론의 모습이 겹치며 나타나는 후반부는 가슴 아프면서도 희생과 사랑에 대한 숭고함을 담고 있다.
힘든 삶을 살았을 그들에게 작가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