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cial Animal David Brooks/이경식 옮김(흐름출판)
누군가 물었다. 무슨 책을 그렇게 읽어? 내가 말했다. 미국 합리주의자가 쓴 관계론으로의 인식혁명
근대사회는 개인(존재론)을 기반으로 국가를 형성한다. 이것의 철학적 배경에는 프랑스와 영국의 계몽주의가 깔려있고 이 담론은 특히 프랑스 계몽주의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사회체제에 반영되어 있다. 곧 지금의 사회체제는 합리주의, 이성이라는 초석위에 건설되었다.
이 바탕위에 작가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무의식에 비할 때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정말 이성이라는 것을 통해 이 세상이 움직여지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그리고 많은 논거를 통해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원동력은 관계라 피력한다. 이 관계라는 것은 단순히 나와 다른 한 사람의 관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이루고 있는 창발적 시스템에 의해서 형성된 산물, 곧 우리가 속한 사회, 문화, 관념 등을 포함한다. 또 이는 도덕적 관념으로도 이어진다. 인류가 그동안 도덕의 발달, 인격수양으로 가져왔던 방법들은 이런 점에서 이성의 접근이 아닌 본래적인 인간의 특성과 무의식의 반작용, 창발적 산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런 내용을 전개하기 위해 해럴드와 에리카라는 두 인물을 선택했고, 그들의 인생을 중심으로 한 개인에서부터 국가까지 넓은 범주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 이면의 심리와 관계를 여러 가지 실험과 과학적 근거를 통해 추적하며 풀어나간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미국인이다. 개인주의가 만연한 미국이라는 배경에서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강력했을 것이다. 그 메시지는 그들이 전제하고 있는 개인이라는 존재는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의 개인이며,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 중점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은 체제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이론을 습득하며 계발해 나가는 것이 아닌 관계라는 것이다. 나는 존재론이 아닌 관계론에 입각해 사회를 성립하는 동양에 살고 있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서양에서 들여온 체제인 근대사회에서 살고 있다. 이 괴리감에 대한 부분을 이 책에서는 작게나마 에리카를 통해 보여준다.
에리카는 중국-멕시코 혼혈이다. 그녀는 가난한 동네와 중산층 동네를 오가며 괴리감을 느낀다. 그녀는 그런 성장과정을 통해 문화적인 다양성이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중요 요소임을 간파하고 후에 모든 부분에 적용한다. 인간을 기계처럼 단순화 시켜 공식에 대입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발전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녀의 반려자 해럴드도 마찬가지다. 그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정서적인 사람으로 에리카와 달리 성공하고 싶은 욕망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그의 인생을 통해 개인이 풀지 못하는 숙제를 집단에서 풀 수 있다는 지점에 다다르고 양극화된 국가는 국가권력의 강화라는 부분에서 또 다른 중앙집권체제의 단면임을 인식한다.
동양권에 살면서 나는 합리적이지 못한 집단에 항상 불만을 가졌다. 혈연, 학연, 지연 모두 얽혀 나를 옭아맨다고 느꼈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나는 조금도 이것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이 책은 나에게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불필요하다고 여기고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여겼으나 벗어날 수 없었던, '관계' 그것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파헤치고 있다.
저자의 의도대로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관계론에 대해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는 독자에게 남겨진 숙제다. 이 책은 관계론이 중요하다는 것을 합리주의적인 방법으로 피력하지만, 그 방안이나 관계론에 대한 고찰은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강유원 선생이 <인문 고전 강의> 말미에서 동양이 가지고 있는 사상의 자산을 근대사회의 폐단을 보완하는데 활용해야 한다고 한 것이 생각났다. 고로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나는 합리주의와 관계론, 이것을 어떻게 조합시켜 나갈 것인지, 그리고 나 자신과 창발적 세계를 어떻게 직면하고 고찰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언급되어 있는 인식론의 변화은 나에게 지금 성공적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책은 역자가 이야기한대로 심리학 개론서이다. 그리고 꽤 재미있다. 물론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심리 전개 부분을 이론들로 가득 채우고 이야기 구성을 단순화 시켜 흐름이 느슨해진면, 이야기 속에 빠진 독자들의 기대치나 욕구를 돌보지 않은 점은 있다. 그러나 자못 딱딱해지기 쉬운 내용을 이야기와 엮는 발상은 성공했다. 이것이 윤활유 역할을 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무리없이 이 책을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했다. 심지어 어떤 지점에서는 등장인물의 심리를 깊이 공감하여 인물과 함께 원인을 탐색했고, 고민했으며 몇 지점에서는 감동을 느끼기도 했다. 특히 이 부부가 권태기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해럴드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이 그러했다.
책은 구겨지지 않는 표지와 떨어지지 않은 제본, 매끄러운 종이, 깔금한 편집, 하이퍼링크 같은 도움말이 여러 모로 신경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면 종이를 이렇게 좋은 것을 쓸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무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