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적이다. 시집을 손에 쥐고 제목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시인의 사진을 보자 고혹적이다라고 생각이 바뀌었다. 대학 2학년 가을에 연극동아리 정기공연으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무대에 올렸던 때가 생각났다. 나는 뜨리고오린이라는 소설가역을 맡았는데 나의 상대역인 니나역을 맡았던 후배와 몹시 닮아있다. 머릿 속은 젊은 시절로 유영하면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혀에 대한 그리움'을 펼쳤다. 추억을 더듬으며 혀에 대한 그리움으로 아니, 나의 그 어떤 그리움과 사랑을 찾아 여행을 다녀왔다. 시인의 이번 시집을 사랑에 국한하여 표현한다면 그리움과 세심함 그리고 정열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먼저 그리움이란 무엇일까? 사전에는 '보고 싶어 애타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리움이라는 것은 대상이 있다는 얘기이고 그 대상은 과거의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대상이 없다면 그리움도 없을까? 추억같은 것은 볼 수 없으니 그리움의 대상이 아닌가? 이니면 회상할 수 있으니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일까?
총 4부로 구성된 시인의 이번 시집은 추억과 어느 정도 맞닿아 있다.
초등학생 때였다
친구랑 소낙비를 홀딱 맞고 집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마당이 따뜻한 느낌이 드는 거였다. 둘은 동시에 얼굴을 맞대고 마당을 뛰었다 소낙비가 사선으로 온몸을 투과해 가는 것 같았고 발바닥은 물컹물컹 온몸에 스며든다. 뛸 때마다 흔들리는 울타리 장독대 장대 하늘, 우리는 목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고 소리 치고 웃었다 가슴에 환하고 더운 큰 마당이 생겨나고
확-확-했으나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알몸만
빛났으니
고 조그맣고 거대한 여자는
-'소나기가 올 때면' 전문-
아마도 시인은 키가 작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크고 넓을 것이다. 초등학교 때에 자신이 누운 마당보다도 더 환하고 더 뜨겁고 더 큰 마당을 알몸으로 가슴 속에 안아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인은 더욱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리라.
그리고 시인이 바라보는 세상은 순응하는 삶이지만 작은 것에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섬세함과 절묘하리만큼 놀라운 뒤집기에 능하다.
신기하다
애나 어른이나 구석을 좋아한다
커피숍을 들어가도 구석은
---중략---
더 신기한 것은 구석은 비어 있어도
꼭 임자 있는 자리 같다는 것
그래서 구석이 비어 있으면 꼭 주변을 휘둘러보게 된다
늘 가운데를 잉태하고 있는
구석의 은밀함을 기억하며
-"구석의 심리학"-에서
그렇다. 누구라도 한번 쯤은 경험을 했을 법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버스를 타도 구석부터 찬다/하다못해 찜질방을 가도/구석으로 사람들이 몰려서 떠든다" 그런데 시인의 섬세한 시선은 세상의 편견을 절묘하게 뒤집는 묘미를 보여준다. "늘 가운데를 잉태하고 있는/구석의 은밀함을 기대하며"라고 표현한 이 시의 후반부가 바로 그렇다. 비단 이 시뿐만 아니라 시인의 대부분의 시가 그렇듯 시의 후반부는 독자의 허를 찌른다. "세상 모두 제 시간을 살고 가더라도/불안해 하지마라 후회도 마라/가을이 깊어지는 것은/떠나지 못하는 자의 슬픔 때문이 아니라/마지막 잎새에 황홀한/춤 때문이다('마지막 잎새를 위한 노래'에서) 얼마나 절묘한가? "다시 돌아 갈 수 없는 생의 끝에서 나도 밤늦도록 오지 않는 사랑을 기다린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이라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거나 후회하지 말고 "춤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언제든 훌훌 떠나기 위해서 얽매이지 않았을" 시인은 마지막 잎새가 훌훌 떠남을 춤추며 떠나게 한다. 바로 여기에서 독자들은 무릎을 치면서도 뒤통수를 얻어 맞는다. "오랫동안 열어보지 않던/보석함을 열었다. ---중략---들어갈 수 있도록/늘 그리워하고 있어야 한다/먼지가 스며든다는것-/귀한 것에게로 가는 길은 다 그러할 것이다/나를 가장 작고 가볍게 하여/너를 갖기가("먼지를 보며"에서) 시인은 "들어 갈 틈이 따로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사람에게 사랑으로 다가간다는 것을 먼지의 속성을 행동에 빗대어 스며듦의 법칙을 노래한다. 귀한 사람에게 스며들기 위해 먼지처럼 자신을 가장 작고 가볍게 하라고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며든다는 것은....
마지막으로 시인은 화끈하다. 열정이 있다.
오지게 맘먹으리라
남들 눈도 무서워하지 않으리라
단 한 번이듯
뭐 어때,
네 방으로 가리라
이 세상에서 딱 둘이 되어 이젠
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짓도 며칠 골라 해가며
붉게
사랑에 눈멀어
지리라
-"단풍 절정"전문
에너지가 넘친다. 열정이 느껴진다. "단 한 번이듯" 자신의 모든 것을 "오지게" 마음 먹고 "남들 눈도 무서워 하지 않으리라"는 굳은 마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황홀한 짓"을 단 "며칠 골라" 단풍처럼 "붉게 사랑에 눈멀어" 화끈하게 질 것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방으로"가서 "딱 둘이 되어" 생을 다하겠다고 한다.
그 뜨거운 시인의 열정적인 마음이 나에게 전해온다. 짧은 사랑일지라도 화끈하게 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은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되고 있다.
"가을인데 철쭉이 폈다/가까이 가서 보니/---중략---자기를 부르는 햇살 속의 햇살을 알아/피운 가을 붉은 철쭉이여/생에 오류란 없는 것이다---중략---어느 순간, 활짝 활짝 필 것/그게 한나절뿐일지라도/제 삶을 다 사랑해 버리는 시간이리라/어쩌면 지금의 나도("가을에 핀 철쭉꽃을 위해"에서)
가을은 중년의 계절이다. 중년인데 꽃이 폈다. "자기를 부르는 햇살 속의 햇살을 알아"서 중년의 사람들은 "생에 오류란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사랑의 불씨를 피운다. 마치 "어쩌면 지금의 나도" 그런 사랑을 하고 싶음을 삶에 대한 열정으로 표현하는 시인의 마음을 통해 위안을 얻는다. 그러면서도 시인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경고(?)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아/서로가 서로를 내어준다는 말 너무 쉽게 하지 말자/사오 년이 지나 땡감나무가 단감나무로 변하여/단감을 주렁주렁 열 때일지라도("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에서) 화끈한 사랑을 중년이 지나서도 노래하는 시인이 마냥 좋아 그렇게 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임을 조용히 경고한다. "땡감나무에 단감나무 접붙일 때"처럼 단감나무는 "붙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단감나무의 생각"이 사랑을 위한 지고지순한 행위였을지라도 "서로가 서로를 내어준다는 말 너무 쉽게 하지"말라고 한다. "사오 년이 지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처럼 변하여 자신의 열매인 "단감을 주렁주렁 열 때"라도 말이다. 하물며 이러할진데 어찌 다른 땡감나무에 접붙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시인은 간접적으로 아주 조용히 타이른다. 가벼운 사랑을......뜨겁기만 한 사랑......알릴 수 없는 사랑......감추기를 바라는 그런 사랑들에게
아! 사랑은 무엇일까? 굳이 종교를 논하지 않더라도 오늘은 고린도전서 13장을 읽어야겠다.
이성이/혀에 대한 그리움/동랑커뮤니케이션즈/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