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가 1992년부터 2013년에 이르는 이십년 동안에 꾸준히 쓴 65가지 단상들(3, 4페이지 분량)을 모아서, 여름, 가을, 겨울, 봄의 4계절 순서로 편집되어 있다.
혹시 각각의 글들이 쓰인 시기에 따라 계절별로 구분되었는가 하여 살펴보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어떤 기준으로 나뉜 것 인지 궁금하며, 계절적으로 가장 생명력이 왕성한 여름을 첫대목으로 잡은 저자의 뜻도 알고 싶어진다.
노년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품격을 강조하고, 죽음에 대해선 도연명처럼 너그럽게, 죽음도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인생 후반부에 대한 긍정적 자세를 조언한다.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젊은이에게는 일을 대하는 기본적 태도로서, “일에 집중하여 나도 살고 일도 산다.”라는 바른 직업관을 수많은 경험을 쌓은 대선배로서 진실로 알려주고자 한다.
그리고 하위장아의 말을 인용하여 우리들의 삶에는 크게 3가지 길이 있는데, 첫 번째로는 종교적 열정으로 피안을 지향하는 길, 둘째로는 현실에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것, 세 번째로는 예술적으로 보다 아름다운 세계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늦었지만 세 번째 길을 택하여 가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다소 늦었지만 “이제까지 내가 어떤 길을 택해서 살아왔으며, 지금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하는 인생의 방향성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저자가 정치인이라서 그런지, 우리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우려와 아울러 지난 2012년 대통령선거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표명한 글도 눈에 뜨인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생에 길잡이가 되는 금언, 선현들의 좋은 말씀(명언)을 들려주면서, 이 올바른 지침들을 자신도 되새기는 한편, 독자들도 그 가치를 알고 잘 활용하여 너무 늦지 않게 바람직한 길로 접어들기를 바란다.
책의 마지막부분에서 “인간은 자기를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스스로가 만든 자기의 운명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는데, 이 말이 의미심장하다.
물론 인생에서 자기의 무한책임을 강조하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불교에서 언급하는 자신의 업(카르마)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되었기에 현실을 수용해야 된다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또한 혼자의 힘만으로 과연 자신이 원하는 자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하는 의문도 떠오르는데, 왜냐하면 현대는 너무나 복잡한 네트워크 사회이므로, 결코 주변 환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 제목인 “천천히 서둘러라”를 얼핏 보면 모순으로 보이는데, 이는 아마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그럴수록 주위를 세심하게 관찰하고 그 속에서 자기존재를 발견하는 동시에 세월의 덧없음을 경고하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사실 이 책은 짤막하고 읽기 쉬운 글들로 채워졌고, 책 크기도 작아서 마치 예쁜 소품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전철 안에서도 편하게 펴놓고 볼 수 있는 책이지만, 글 이면에 숨어있는 본뜻을 알아채지 못하면 그 의미가 희석되기에, 한 편씩 읽은 후에는 잠시나마 눈을 감고 그 뜻을 다시금 생각해봄이 필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