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정도전은 우리 역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인물이었다.
그가 조선시대에 행한 위업이 평가절하를 받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교육도 그런 식으로 해왔기에, 나도 그와는 거리감이 아주 멀게 느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도전을 중심으로 하여 이성계, 정몽주, 이방원과의 상호관계를 알게 되었고, 실제 역사적으로 그가 행한 일, 사후에까지 미친 여러 가지 영향을 이해함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정도전"이란 인물로부터 새로운 인상을 받았고, 그의 행적과 업적에 대해 나름대로 수긍이 간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전환과정은 역성혁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과연 무슨 의미를 갖는가?
정도전이 시도한 조선 건국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었는지? 그 정당성은 어디에 근거하는지? 수단의 타당성은 인정되는지? 등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우리 역사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올바른 미래를 만듦에 이바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성혁명이 어떤 개인들을 위한 쿠데타였는지, 아니면 정말로 절대 다수의 백성을 위한 훌륭한 결단이었는지에 대해 그 결과와 관련해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부분이다.
이 책에선 이에 대해 정도전이 진정 백성의 어려움을 알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뤄진 결단이라고 찬양한다.
왜냐하면 이 목적의 긍극적 실현을 위해 조선경국전을 저술하여 인치를 법치주의로 전환시켰고, 그 속에 정도전의 이념과 철학이 잘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굳은 신념은 맹자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민본주의를 표현한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다."와 "왕의 일은 백성을 생각하는 일이다."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정도전은 이상주의자로서 또 혁명가로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 개혁의 칼날이 스스로를 해치기도 한 슬픈 운명의 소유자이기에, 나로선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여기에선 정도전과 정몽주의 생각과 행위가 서로 대비되고 있는데, 정몽주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보수파의 수장으로서, 정도전은 시대흐름을 파악한 선구 진보파로서 그려지고 있다.
처음에는 이 둘은 친구와 동지관계로서 출발했지만, 이후 서로의 가치관 차이로 인한 갈등속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성장과 변모를 해나갔는데, 저자는 정몽주를 역사발전 측면에서 다소 좋지 않은 쪽으로 바라본다.
이는 역사소설이기에 상상으로서 가능한 것이지만, 역사적 사실보다는 저자의 취향과 소설의 주인공을 보다 미화하기 위해 강조되는 방법이라고도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거의 잊고 있었던 우리역사의 한 훌륭한 인물을 되찾게 되었고, 역사기록에는 어느 정도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한편 역사소설로의 한계 때문에 그리고 저자의 성향으로 인해서, 소설이 가지는 문학적 향취와 깊은 맛은 느낄 수 없었던 것이 하나의 흠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우리 민족의 영웅으로서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박정희 대통령을 손꼽고, 이 셋을 합한 인물이 정도전이라고 말한다.
현대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아직 역사상 그 공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고, 이러한 표현은 정도전을 과대하게 미화한 점으로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다.
민족적 시각에서 정도전을 다시 조명해보고 그의 성취를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지만, 이것은 소설이기에 그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역사와는 구별해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본다.
앞으로도 더욱 정도전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평가와 더불어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살펴보면서 그에게 다가가는 저작물이 많이 나와서 우리역사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길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