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는 피요, 살이요, 생명이다!
김무관 PD 인터뷰 (KBS 인사이트아시아 제작팀 총괄PD)
KBS다큐멘터리 <차마고도> 6부작, 이 다큐멘터리는 11월 24일과 25일, <히말라야 카라반>편과 <신비의 구게왕국>편을 마지막으로 대장정을 마쳤다. 차마고도는 중국 운남, 사천에서 티벳을 거쳐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약 5000km의 장대한 길이다. 유명한 실크로드보다도 200여년이 앞선 역사상 최고(最古)의 문명, 역사, 경제교역로인 셈이다. 평균 해발고도 4000m의 차마고도는 세계의 마지막 남은 오지라 할만큼 험준한 곳이어서 접근이 쉽지 않지만 그만큼 자연 그대로가 간직되어 있는 아름다운 길이기도 하다.
세계 최초로 차마고도 5000km 전 구간 촬영에 성공한 차마고도 제작팀의 노고야 부연설명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결실은 이미 책으로도 만들어져 지난 10월 사색의향기 독자들과도 뜻 깊은 만남을 가진 바 있다. 이번에는 <차마고도> 6부작이 DVD로 제작되어 다시 찾아올 예정이다.[출시 예정일 : 12월 9일]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KBS 인사이트 아시아 제작팀의 김무관 총괄PD를 만나 그 뒷얘기를 들어 봤다.
-. 최근에 방영되고 있는 TV다큐멘터리로 알려지기는 했지만 아직 대중들에게 '차마고도'라는 명칭은 낯설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차마고도'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은 갸우뚱해요. 한자 그대로 '차(茶)와 말(馬)을 교역하는 높은 길'이라는 뜻인데 어감이 아직 많이 낯선가 봐요. 그래서 처음엔 한자를 병기해야 하나 고민을 했었는데 그냥 안 가기로 했어요. 심플하게 다가가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 '차는 피요, 살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티베트 인들에게 차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있나요?
차가 없으면 티베트 인들은 하루도 못 살아요. 고산지대에 사는 그 사람들이 주식으로 먹는 것이 야크의 젖과 고기인데 그걸로는 비타민이 절대 부족하잖아요.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구할 수가 없으니까. 비타민을 보충할 수 있는 게 바로 ‘차’였던 거죠. 그 사람들에게는 식량보다도 중요하죠. 차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소금이에요. 차와 소금, 필요한 식량, 생필품 등을 실핏줄처럼 연결된 차마고도란 길을 통해서 맞바꾸는 거예요.
-. 소금도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더군요. 4편 '천년염정'에서는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여인들의 모습도 그려지고 있고요.
4편에 나온 소금밭이 티베트 일대의 유일한 곳입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이 곳을 차지하려고 엄청나게 싸웠지요. 그 역사가 현재 1000년이 된 거예요. 이 여인네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소금 결정체로 피었다고 볼 수 있어요. 소금 우물이 아주 깊은데 이 여인네들이 우물 물을 하루종일 퍼 나르는 거예요. 그리고는 골고루 펴서 햇빛에 말리는데 그 노동력이 말도 못하게 힘든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그 일을 평생에 걸쳐 하게 되죠. 1000년 동안이나 이어져온 일이에요. 솔직히 우리 눈에는 이 사람들 사는 걸 보면 정말 이해가 안 돼요. 그냥 사먹으면 되잖아. 안 그래요?
-. 차마고도가 있는 지역에 들어가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하던데, 촬영하는데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이 쪽 지역이 소수 민족이 사는 지역인데 원래 중국이 문을 안 열었어요. 가급적 소수 민족들을 건드릴 수 없도록 허가를 안 내주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다행히도 정식으로 허가를 얻고 시작을 했죠. 말 그대로 차마고도 전구간 5000km를 촬영했죠. 인도까지 갔어요. 전 세계에 없어요.
그래서 그런데 이 지역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었어요. 그 동안 연구된 바도 없었고. 우리가 만든 영상물과 책은 모두 직접 발로 뛰면서 모은 자료예요. 가기 전에는 섭외대상자라든지, 기초 정보가 전혀 없으니까 어려움이 많았죠. 가 보니까 이 곳 이동수단이 말과 걷는 것밖에 없어요. 거기 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취재진도 똑같이 먹고 자야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6월 정도가 되어서 눈이 녹아야 마방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그 때가 가장 위험해요. 길이 미끄럽고 밑에 협곡이 세차게 흐르니까. 우리가 취재한 이 쪽 지역이 동남아시아를 흐르는 메콩강 등의 발원지거든요.
예를 들면 3강 격류라는 지역이 있어요. 3개의 강이 저 지역에서 동시에 흘러요. 저 쪽에서 떨어지면 현지에서 시체 찾는 것은 불가능한 정도죠. 미얀마 가서 찾아야 해요. 아무튼 협곡 능선을 따라가는 여정인데 이게 깊은 곳은 1500m나 되는 곳도 있어요. 조심조심 가다 보면 낙석도 떨어지고. 우리가 취재 갔을 때도 일곱 명이 깔려 죽었어요. 집채만한 바위가 떨어져요. 말들이 놀라면 같이 협곡으로 떨어지는 거예요. 그런 아찔한 경험들을 숱하게 했죠.
-.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책에는 나와있지 않았지만 에피소드도 참 많으실 것 같은데.
저는 한국에서 지휘만 했으니까 직접 촬영 나갔다 온 임세형, 신재국, 서용하PD가 고생을 많이 했죠. 취재진의 고생담은 일부러 책에 넣지 않았어요. 이 책은 인문 교양적인 스테디셀러를 만들자 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쉬우면서도 어느 정도는 인문 지리학적인 내용이 담긴. 취재진의 고생담은 메이킹 다큐멘터리로 만들 예정이에요. 한 PD는 밤에 잘 때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니까 눈물이 쏟아지더래요.(웃음) 하늘에 쏟아질듯한 별과 맑은 호수와 눈 덮인 흰 산과 같은 비경이 눈 앞에 펼쳐지는데 자기 혼자만 있는 거야. 그런 정신적인 괴로움도 있고 육체적인 고통은 말도 못하죠. 이 사람들과 똑같이 생활하니까. 밖에서 먹고 자고, 싸고. 그런데 이게 하루 이틀이어야죠. 못 씻으니까 얼마나 가렵겠어요. 동물들과 같이 생활하니까 벼룩도 많은데. 계곡이 옆에 있어도 그 물이 워낙 차서 현지인들이 못 씻게 한대요. 바로 감기 들어 버린다고.
가장 큰 고통은 뭐니뭐니해도 고산병이죠. 고산병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얘기할 수 없는 거예요.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거기 때문에. 고산병의 유일한 치료법은 저지대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는데 올라가는 중간에 고산병에 걸려버리면 다시 내려갈 수가 없잖아요. 사람들이 기다려주는 게 아닌데. 아픈 것을 참고 올라가는 고통이 말을 못하는 거예요. 산을 넘을 때까지는 생명을 걸어야 하는 거죠. 재미있는 것은 고산병의 특효약이 뭔지 알아요? '비아그라'예요. 혈관을 확장하는 기능이 있거든요. 고산병이라는 게 뇌에 피가 안 통해서 그런 거거든. 그런데 그것도 소용이 없을 때가 많아요. 그저 참는 수밖에 없죠.
-. 이제 11월 마지막 주 두 편의 방송을 끝으로 차마고도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는데,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느낀 점도 많으셨겠어요.
솔직히 이 정도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지 몰랐죠. 이렇게 척박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들이 보면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많잖아요. 2편에 나왔던 ‘순례의 길’에서 다룬 내용을 봐도 그렇죠. 그 순례자들은 그냥 걸어가도 힘든 길을 7개월 동안 오체투지를 하면서 가는 거예요. 그렇게 힘든 일을 하는 이유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든가, 내 가족을 위해서라든가, 하다못해 부모님 건강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이해가 되겠는데 '나'랑은 전혀 상관이 없는거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의 평안을 위해서 하는 거래요. 승려나 성인도 아니고 평범한 목동 같은 사람들도 그런 말을 해요. 이해가 됩니까? 서양인들이 이런 모습들을 보면 더 황당할 거고. 가까이 사는 중국 사람들도 미쳤다고 할 정도예요. '저러니까 못 살지.' 이러면서 말이죠.
그런데 과연 우리들이 그렇게 손가락질 할 자격이 있을까요? 아마 누구도 없을 거예요. 논리적으로 이해를 할 수는 없지만 세상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그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영상으로 음악으로 느낌으로 그렇게 막연하나마 사람들과 조우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고생한 보람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_ 홍유진
사진_ 지유석
* 차마고도 제작진 - 취재에 협조해주신 KBS 인사이트 아시아 차마고도 제작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