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사람으로....
<사람과 사람>으로 사랑과 나눔을 전해온 송경용 신부
송경용 신부 - 신부의 이력은 극과 극을 넘나든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재학시절 뛰어든 야학활동, 그가 야학활동에 뛰어든 계기는 순전히 '이념'의 영향이었다. 하지만 야학활동을 통해 '예수', 특히 '예수의 삶'에 매료돼 건축공학과를 중퇴하고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된다. 이때부터 줄곧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며 예수를 본받는 삶을 살고 있다.
-. 신부님, 무엇이 신부님의 삶을 성직자의 길로 가게끔 잡아 끌었습니까?
제가 신학교에 진학한 때가 20대였습니다. 신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제가 성직자가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이 무엇인지 잘 알지도 못했지요. 제가 27세가 되던 해에 아버님께서 작고하셨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가족들 모두 각자의 신앙을 지니고 있었지요. 물론 전에 누님들께서 가족들 모르게 교회에 출석하고 계셨습니다. 누님들께서 다소 나마 영향을 주셨지요.
무엇보다 야학에서의 경험이 결정적이었어요. 너무나도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길이 보이지 않더군요. 어떻게 하면 빈곤의 덫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가게 되면서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 뵈었지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사역하시는 성직자분들을 뵈면서 서서히 교회를 알아 나갔지요. 이런 과정이 7~8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계기가 있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건데,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모든 과정이 하느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 성직자의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것입니다. 또 교회 울타리 밖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성직자가 되어야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할 수 있느냐면서 의아해 하기도 합니다. 가족들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테지요. 성직자의 길을 택하면서 어려움이 따르지 않으셨나요?
동의합니다. 꼭 성직자가 되어야만 가난한 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또 이런 생각 갖지도 않았지요. 심지어 신학교에서 공부하면서도 반드시 성직자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가 강하지 않았습니다.
제게 있어 신앙, 교회는 대안이었고 탈출구였습니다. 즉 새로운 세상을 찾아가는 하나의 여정이었지 반드시 무엇이 되겠다고 의식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계획이 있으셨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계기마다 성직자의 길로 갈 수 밖엔 없도록 인도하셨지요.
-. 성공회대 학풍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성공회대에서 재직 중이신 조희연 교수님, 김동춘 교수님께서는 신학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참여를 강조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선공회대 학풍이 사회참여를 강조하나요?
말씀해주신 조희연 교수님, 김동춘 교수님은 제가 재학 중일 때엔 계시지 않았습니다. 늦게 오신 분들이지요. 성공회 신학의 요체는 ‘중용(via Media)’입니다. 양극단을 배제하고 좌든 우든 넓게 품는 유연성이 있습니다.
성공회 내에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하지요. 성공회 신학이 다양한 스펙트럼에 대해서 배타적이지 않아요. 소신껏 일할 수 있는 배경이 갖춰져 있습니다.
-. 앞서 신부님께서는 야학을 통해 성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야학 활동을 하시던 70년대는 의식화 열풍이 불었던 시기였습니다. 야학 활동은 운동권이 주축이었습니다. 신부님께서 야학활동을 하시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이념 때문이었나요?
당시 이념의 영향을 안 받은 사람이 있었나요? (웃음) 당시 선배들은 절더러 바늘로 찔러도 피도 안날 냉혈한이라고 했습니다. 후배들은 저를 무서워했지요. 전 누구보다 냉정했고 원칙주의자였었습니다. 심지어 여자 선배들은 말도 못 걸었을 정도였으니까요. 전 주로 조직 활동을 많이 했고, 속칭 '언더'라고 일컫는 지하 조직의 책임도 맡았습니다.
하지면 그러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부족함이 있었고, 채워지지 않는 갈망이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도 작용했습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들에겐 인간적 갈망, 실존적 고민을 갖고 있는데 이념 서적에선 이런 고민을 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이념은 전투적이고 무엇인가를 조직해내야 했고 무미건조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늘 갈증이 있었어요. 맑시즘을 8박 9일동안 밤새워 탐독하면서도 이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어요.
가난한 사람들이 갖는 실존적인 고민과 아픔, 한 개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갖는 이 아픔들이 어떻게 치유될 수 있을까? 체제가 변하면 치유가 될까? 풀리지 않는 의문들, 갈증들....
제가 성직자의 길을 가지 않았다면 지금쯤 정당에서 정치 활동을 하며 계속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겠지요. (웃음)
-. 얼핏 신부님의 이력은 극과 극을 넘나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념의 영향을 받아 세상의 변화를 꿈꾸며 야학 활동에 뛰어들었다가 지금은 성직자의 길을 걷고 계시니까요.
한 가지 현실도 입장에 따라선 다르게 보일 때가 많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념에 경도되었을 때 바라보았던 '가난한 사람들'과 지금 성직자의 입장에서 마주대한 '가난한 사람들'이 과거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았는지요.
다른 사람이 볼 때 드라마틱한 면이 없지는 않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또 외면적으로 제 자신이 많이 변했어요. 심지어 지인들도 많이 놀라지요.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유년 시절부터 늘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 상처에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인간 내면에 천착해 왔었어요. 물론 시대 상황, 나이, 환경에 따라 극적인 모습이 있었지요. 하지만 제 나름대로는 일관된 인생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합니다.(웃음)
가난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관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의 집단입니다. 민중이고. 그러나 구체적 인간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아요. 제 뇌리 속엔 늘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일들이 보다 친숙했지요. 가난한 사람들을 특정한 한 집단으로 인식해서 한 걸음 나가려다가도 커다란 확신은 없었어요. 말하자면 불철저한 주의자였고 재교육 대상자였지요.(웃음)
그러나 제 마음의 중심엔 인간 실존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 같아요. 다행히 제가 '무슨 큰 과업을 성취하겠다고 이 고민을 하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지요. 사람들 곁으로 가자고. 그 속에 반드시 길이 있을 것이라고.
전 늘 이 말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혁명도 못한다."
이 말이 저를 크게 움직이게 했었지요.
제가 실존적인 고민에 휩사여 있을 때 문득 떠오른 인물이 있었어요. 제일 매력적인 인물이었지요. 바로 예수였습니다. 전 예수를 통해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스도', 즉 '구원자'로서의 예수 보다 예수의 삶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삶을 보세요. 예수는 한 손에는 정의의 칼을 들고 하느님 나라의 비전을 선포합니다. 당시만 해도 하느님 나라의 비전은 혁명적 메시지였어요. 다른 한 편으로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과 멀리 떨어져 본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예수는 늘 이들과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전 이념이나 사상에서 채워지지 않았던 갈증을 예수의 삶을 통해 해소했습니다. 또 당시 남미에서 행해지던 풀뿌리 공동체의 삶을 접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바닥으로 내려가서 작은 공동체 안에서 대안 모색해 나가고 있지요. 이런 모습에서도 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 신부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서 "가장 낮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복음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개인적인 입장에서 보면 신부님의 활동이 복음서의 가르침에 충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하시는 활동에 대해 교단측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민중들, 가난한 자들의 아우성과 절규는 '민중신학'이란 형태로 수용되었습니다. 그러나 교단차원에서 산업선교, 민중선교를 포용하는데 실패했다고 봅니다. 교회 밖에선 좌경 사상으로 치부되었고 교단에서는 이단으로 백안시 되었지요.
지금 현재 교회가 예수 신앙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지금 교회가 무슨 관계가 있나요? 전 극단적인 화두를 던집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교단에서 절 한 번 초청하곤 그 후론 다시 초청하지 않더군요.(웃음) 전 이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다니는 교회가 예수님과 관계가 있을까? 너무 멀어져 있어요. 별반 관계 없다고 봅니다. 교회는 교회 나름 논리를 갖고 발전해왔지 교회의 성장과정에 예수의 삶이 제대로 배어들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랬다면 교회가 오늘날의 모습이 되지는 않았겠지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볼까요? 교회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나요? 애초에 교회 설계할 때부터 예수님이 가장 사랑했던, 식사자리에 초대하라고 했던 이들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나요?
단적인 예로 IMF 때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로 내몰렸습니다. 이 때 이들을 위해 문을 연 교회는 얼마 되지 않었어요. 제가 문열기 운동을 제안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연 교회가 1~2개나 되었을까요?
또 하나 교회 성장 논리 안에 가난한 사람을 위한 자리가 없어요. 산동네 교회가 강남으로 이전해지면 부유해졌어요. 거의 예외 없이.
교회 운영구조를 봅시다. 가난한 사람들이 고위직에 선임될 수 있나요?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에 참가할 수 있나요? 교회에서 쓰는 말들이 가난한 사람들이 사용하는 일상 언어입니까? 예배시간은 또 어떤가요? 예배시간, 기도시간, 구역모임 등등. 이 시간에 일용직 노동자들이 올 수 있나요? 이건 바리사이파의 행태나 마찬가지에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안식일 노동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하지만 안식일에도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새벽시장가서 밤늦게까지 일하고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 일당을 받아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겉으로 보이는 외관, 운영 시스템, 언어, 교제방법이라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내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대상으로 전락했어요.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교회마다 봉사 기구는 많아요.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 오는 일은 싫어합니다.
예수께선 어디에 교회가 있다고 했나요?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위선적인가요? 단적인 예로 꽃동네 가서 가난한 사람들 위해 밥도 퍼주고 눈물 흘리고 기도 찬송해주고 왔어요. 만약 이 사람들이 자기 동네와서 산다고 하면 집값 떨어진다며 십자가 걸고 결사반대합니다. 한번은 교회 장로, 전도사에게 멱살 잡히고 1년간 노숙자 살림터 짓지 못한 일도 있었지요.
진실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해요. 저 자신 쉬운 언어를 사용하려고 하고 누구든 와서 쉬어갈 수 있도록 애쓰고. 하지만 이런 일이 쉽지 않아요.
-. 이제 책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신부님께서 내신 <사람과 사람>은 사역을 하시면서 만난 사람들의 기록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이 책 맨 앞 장에 어머니 이야기를 적어 주셨습니다. 신부님 인생에서 어머님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님이 계시지 않으셨다면 제 인생이 달라졌을 것입니다. 어머님은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어요. 하지만 어머님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님은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가셔서 그 역할을 말없이 감당하셨지요. 꼭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었음에도. 이런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서 낮은 데에 있는 것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못 살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을 했지요.
우리에겐 노점상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요. '못 배웠을 것이다, 정신적인 수준이나 가치, 이런 건 아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겉으로 보이는 생활 이면에 보이는 정신적 가치가 얼마나 고귀할 수 있는지,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배웠습니다. 지인 중 한 분께선 제게 '넌 무슨 배짱으로 당당하냐?'고 하시더군요. 어머님으로부터 바로 이런 당당함을 배웠습니다.
어머님께서는 개성 명문가 출신에 매 학년 월반을 했을 정도로 명석하셨습니다. 게다가 친정은 전주의 부호였습니다. 그런 어머님께서 노점상 일을 하셨어요. 어머님께서는 시장에서 시래기를 주워서 저희들을 먹이시면서도 품격을 잃은 적이 없어요. 이를 통해 어머님께서는 자존심, 가치를 가르쳐 주셨지요.
위기상황에 처해 있을 때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이 책 <사람과 사람>은 2~3년 전부터 기획은 하고 있었어요. 게으름을 피웠지요. 하지만 지난 해 어머님께서 폐암으로 3개월 밖에는 더 못사신다는 소식을 들었지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무엇인가를 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습니다. 전 장남인데 어머님을 모시지도 못했어요. 늘 밖에서 떠돌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봉천동 철거민촌으로 오셔서 난방도 제대로 안되고 물도 잘 나오지 않는 집에서 기거하셨어요. 이런 생활로 인해 몹쓸 병을 얻으셨던 것이죠.
어머님께 죄스럽더군요. 처음엔 편지체로 썼었지요. 이 책은 어머님께 드리는 보고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어떤 일을 했는지..... 제 이야기 보다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머님께 드리고자 하니까 불가피하게 제 이야기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 책 본문과 관련, 신부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에 관해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세상은 선한 자와 악한 자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자로 나뉘어져 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교황의 언급대로 이 사회에서도 빈부 격차, 사회 양극화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사회가 날로 극단으로 치닫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신부님께서는 최근 상황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갖고 계십니까?
제가 이 책을 집필하면서 구상했던 제목은 <다시 사람으로>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빈부격차, 사회적 양극화에 대해 정치적으로 또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이론이 제시되고 있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깊은 관심"이 빠져서 위기에 봉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회복하지 않으면 더더욱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라고 봅니다.
구체적인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이들이 갖고 있는 어려움과 고뇌, 갈망, 희망, 분노, 좌절, 기도가 가슴 속에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면, 아무리 뛰어난 이론을 개발했어도 강력한 정치권력을 가졌어도 무의미합니다. 제가 이 책을 통해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세요. 양극화에 대해, 빈부격차에 대해 수 만 가지 이론이 범람하지만 사람에 대한 구체적인 울림은 빠져 있어요. 정치인과 경제인들이 도대체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기나 하나요? 이들이 갖는 간절한 바램이 무엇인지 압니까? 괴리가 너무 심해요. 이들은 사람이 아닌 다른 데 관심이 더 많아요. 말하자면 계급이나 계층 따위 집단적인 개념이죠.
살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어요. "내일이 있습니다"는 구호는 난무하지만 내일이 안 왔으면, 이대로 세상이 종말을 고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사람들이 수백만입니다. 이 수백만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자리한 회한, 갈등, 갈망을 헤아릴 줄 아는 구체적인, '다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으면 안됩니다.
과거 운동했다고 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어요. 하지만 지난 날 좋은 세상을 외쳤던 이들이 자신들의 구호를 왜 실현시키지 못할까요? 이들은 현장 속에 있다가 권력과 권력 사이, 이론과 이론 사이에 있게 되었어요. 이들은 늘 바빠요. 왜 바쁜가요? 권력 흥정에만 몰두하고 있지요. 이렇게 되다 보니 자꾸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이죠.
양극화 문제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론이 제시될 수 있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구체적으로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야 되겠지요. 가난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나 근본적으로 전 나눔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기적 욕망, 경쟁심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는 국가가 빈곤 문제에 무한정한 예산을 투입할 수 없어요. 완전한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평등은 계급적 이념적 색채가 강합니다. 제 입장은 평등을 나눔으로 치환하자는 것입니다. 평등 사람들을 집단화, 계급화 시키지만 공허합니다. 평등이 이뤄진 적이 없어요. 하나의 이론일 뿐입니다.
반면 나눔은 인간 사이의 교류 소통이고 서로를 주체적 인간으로 서게 합니다. 이 나눔의 사회를 실현시키기 위해 제도적이고 정책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 점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평등에서 나눔으로"라는 주제로 집필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나눔을 이야기하면 순진하다고 폄하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전 나눔처럼 강한 것이 없다고 봅니다.
덧붙여서 이야기하면 조화와 균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나눔이 온정주의로 흐르지 않기 위해선 한 개인에 대한 구체적 관심이 사회화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개별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의 정을 갖고 한 사람이 당장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줄 줄 알아야 합니다. 동시에 이 사람의 아픔을 사회화하고 아픔에 처해진 사람의 상황을 개선시키는 데 진력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잘 조화되어야 하겠지요. 바로 이 점이 온전한 나눔의 참 의미입니다.
전 늘 "정의를 추구하는 봉사, 봉사할 줄 아는 정의"를 이야기합니다. 깃발만 나부끼는 정의, 봉사할 줄 모르는 정의는 무미건조해요. 봉사 활동을 하면서도 온정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사람이 처해진 환경을 바꾸어 낼 수 있는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 하에 전 사회활동에 매진했습니다. 전 제 행동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 사실 성직자가 쓴 책이라고 하면 우선 편견부터 갖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일반 독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모든 일이 스위치 하나로 해결되는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어요. 하지만 불과 10년, 20년 전에는 걸핏하면 지하 3~4,000m 갱도에 매몰되어 수 백명의 사람들이 죽었어요.
편하게 산다고 해서 사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사람 이야기가 살아 숨쉬지 않으면 우린 죽는다고 생각해요. 물질,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어요? 우리들의 관심을 사람에게 돌려보았으면 해요. 지나간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이들이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 결손, 여기서 비롯되는 상처로 고통당하고 있어요. 이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고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합니다.
* 송경용 신부님은 성공회 교단의 배려로 영국에 머무르시면서 런던 한인교회에서 사역 중이다. 신부님께서는 사색의향기를 위해 <다시 사람으로....>(가제)라는 테마로 향기칼럼을 집필할 예정이다.
글, 사진 | 지유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