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시인 <우리, 사랑할래요>
"시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요."
1996년 <창작과 비평>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김선우 시인은 세 권의 시집과 세 권의 산문집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최근에 발표한 세 번째 시집 <내 몸 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는 출간 두 달 만에 4쇄를 찍으며 많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런 그녀가 <우리, 사랑할래요?> 라고 낮게 속삭인다.
신문의 연재 코너인 <시가 있는 아침>을 통해 김선우 시인을 만난 독자들도 꽤 많을 거라 짐작한다. 스치듯 지나간 시간을 되돌려 시 한편에 마음을 의지하는 건 어떨까. 김선우 시인의 작품에서도 그가 들려주는 시에도 ‘사랑’은 각기 다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마치 숨바꼭질 하듯이 술래를 찾아나선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펼친다.
우리, 사랑할래요?
-<우리 사랑할래요?> 어떤 책인지 소개 좀 해주세요.
화답시를 쓰는 마음으로 쓴 책이에요. 좋은 시를 쓰는 시인들의 작품 중에 지금, 당신에게 좋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시,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맛보기 하는 시이면서 '사랑'을 주제로 하는 보편적인 시예요.
- 엮은이의 말씀 중에 "제가 사랑한 시들의 주소를 그대에게 적어 보냅니다."라고 하셨어요. 주소를 적어 준다는 말에서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고 누군가가 집 밖에 와서 대문을 두드려 내 이름을 불러줄 것만 같은 그런 기대감을 갖게 하는데 어떤 기분으로 엮으셨는지 궁금해요.
바로 그런 느낌이에요. 시는 맛있는 영혼의 음식이라고 하잖아요. 충분히 맛있는 시를 독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 여러 시인의 작품들을 소개해주셨는데 선정할 때 특별한 기준이 있나요?
많은 분들이 시가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무리 좋은 시라도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시를 어려워하는 대중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선 우선, 어렵지 않고 길지 않으면서 좋은 시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 책에서 소개하는 시는 짧으면서 여운이 있고,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냥 덮어버리는 게 아니라 마음에 남는 게 있는 작품이에요.
시를 읽고 나면 '아, 시가 이렇게 재미있구나, 좋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한가지 덧붙이면 현존해 있는 시인의 작품이라는 것도요.
- 처음 시를 접하는 분들에게 일종의 시의 입문서가 되겠네요. 시집 제목이 <우리, 사랑할래요?>예요.
제 세 번째 시집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중에 Everybody Shall we love? 라는 시가 있는데 그 제목을 그대로 썼어요. 태어나고 사는 것, 그 안에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다 있잖아요. 좀 더 포괄적으로는 우리가 말하는 사랑이라는 관념을 상징하고 이별도 사랑의 과정이죠. 희로애락, 생로병사까지, 사랑을 완성해 가는 과정이 삶이라면 그것을 아우를 수 있겠다 해서 <우리, 사랑할래요>예요.
- 사랑에 대한 주제를 다루셨는데, 시인이 생각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어느 분이 세 번째 시집을 보고 저한테 불온서적이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사람에게 사랑하라고 선동하는 시집이라고요. 우리가 저지르는 고난과 악행 고통까지 그것을 포함해 통째 사랑해야 해요. 고통을 피해서가 아닌 껴안고 가야 하는 것이 사랑이에요. 함께 어우러지는 것을 추구해야죠.
- 특별히 좋아하는 시가 있나요?
저는, 좋은 시가 좋아요. 이 책은 김선우가 좋아하는 시와 함께 우리가 기억할 만한 시인들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돼요. 시는 자기가 느끼는 만큼 느낄 수 있는 열린 장르로서의 매력이 있잖아요. 자꾸자꾸 읽을수록 행간이 느껴지고 음운이 느껴지고 그런 경험을 충분히 독자들이 누릴 수 있길 바랍니다.
대한민국은 좋은 시인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예요. 저는 전업 시인으로 독자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더 많은 시인과 시를 만나게 되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 시집도 내시고 산문집도 내시고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좋은 시를 엮어 출간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시인님의 인지도가 영향을 미친건 아닌가요?
평소에도 하고 싶었던 일이었는데 때마침 어느 일간신문에서 시를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어요. 김선우가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좋은 시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거기에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일간 신문의 파급력까지 조건이 맞아떨어졌어요.
- 매일 <아침에 읽는 시>에 연재하셨는데 많은 시인의 작품들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어떠셨어요?
즐거웠어요. 제일 좋은 시는 연애시잖아요. 누구나 연애하면, 즐겁고 행복하고 진솔한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아낌없이 주는 거잖아요. 연애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쓰는 동안에는 연애에 빠져 있는 기분이었어요.
- 연재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나요?
독자와의 피드백이 바로 됐어요. 그날 제가 소개한 시에 대해 독자들이 메일이나 편지를 보내 오는 것을 보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정말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좋은 시 더 없어요?', '시인에 대해 소개해 달라.' 는 메일이 오면 더 많이 추천도 하고 알려주면서 뿌듯하고 좋았어요. 제가 칼럼을 쓸 땐 항의하는 전화도 받고 그랬는데,(웃음) 시를 연재할 때는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그 분들에게 시를 통해 전해 드릴 수 있어서 보람이 있었어요.
- 좋은 시란?
시는 소통이에요. 나와 네가 소통하는 계기가 되요. 어렵게 쓰는 시인도 있지만 우리가 소통이 가능할까를 염두 하면서 쓰는 시인도 있어요. 시는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영혼의 곳간으로 들어와 시시 때때로 다른 종류의 색을 보여주는 선에서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책을 쓰면서 우리 독자들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어요. 멈춰있던 독자의 감성을 지금, - 이 시대에 활동하는 시인들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잖아요.- 문을 두드리면 만날 수 있으니까 시를 통해 충분히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 성격이 참 소탈하세요. 시인에 대한 선입관이 있어서 그런지 여성스럽다 참하다는 이미지가 강했거든요.
안동에서 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을 때 일이에요. 저를 보러 대구에서 오신 분이 있었어요. 제 시를 참 좋아하는데 제 외모가 궁금해서 오셨대요. 그 분 말씀이 제가 화려한 사람인 줄 아셨다는 거예요. (웃음)
첫 시집을 냈을 땐 어느 분이 저더러 당돌하면서 도발적이면서 솔직하다고 말씀 하시길래, '맞아요.' 그랬어요. 여성스럽다고 하시면 또 저는 '맞아요.' 그렇게 맞장구 쳐요. 다 그렇잖아요. 항상 같을 수 없고, 혼자만의 표정이 있잖아요. 그런 입체적인 모습들은 누구에게나 있죠.
시를 쓰는 일이 힘들어요. 그렇지만 시인이 신비화 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시인은 인생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을 언어로 하는 사람이에요.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소통하려면 솔직한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책 내고 나서 아쉬움이 있으신가요?
<우리, 사랑할래요>를 보면, 사랑이 이런 거구나! 그 동안 시를 어려워했다면 이 시집을 통해 핵심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알려지지 않은 좋은 시인들도 많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시인들도 많아요. 아깝게 빠진 분들도 있지만 독자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면 나중에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이 각박해지면서 시에서 멀어지고 그러면서 각박해져 가는 마음들이 시를 통해 치유됐으면 해요. 시에는 '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믿어요. 시를 즐길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보면 달라요. 대중들에겐 아름다운 영혼의 성찬을, 예술가에겐 자기 예술을 이어가는 통로가 되요. 현란한 시대지만 굴하지 않고 시를 쓰는 젊은이들과 소수지만 시인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은 ‘시의 마음’을 지지하는 정서가 넓다는 거죠. <우리, 사랑할래요?>를 통해 이러한 마음이 확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 사색의향기 독자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영혼의 음식을 예쁜 소반에 담아 차려드렸으니까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맛있는 것을 먹고 맛을 봐야 내 입맛에 맞는 것, 또 다른 것을 맛 볼 수 있잖아요.
좋은 시를 하나 갖는 것은 손해 보는 게 아니잖아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우리가 술 먹는 자리에서 흔히 2차로 노래방 가고 3차 가고 그러잖아요. 저는 그런 자리에서 시 낭송 하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사색의향기 독자들이 그런 분위기를, 문화를 즐겼으면 좋겠어요. 그런 힘들이 우리를 지킬 겁니다. 현란한 시대에 망가져 가는 우리의 마음을 시를 통해 치유하는 것. 사색의향기 독자 여러분들이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색의 향기, 파이팅!
글 | 표선희
사진 | 지유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