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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아침, 산이 전하는 말
 : 김이수  : 시/에세이
 : 일월일일  : 2018년04월17일
  흰 아침, 산이 전하는 말

김 선달은 대동강물을 팔아먹고 김용택은 섬진강을 팔아먹었으며 이원규는 지리산을 팔아먹었다는데,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서 은평구 응암?녹번동 지나 다시 홍은?홍제동으로 지네마냥 길게 구부려 누운 나지막한 백련산을 팔아먹고 사는 초야의 시인이 그 “산이 전하는 말을 흰 아침(새벽)마다 받아 적어” 첫 시집(136수)을 냈다. 그는 일찍이 학창시절부터 수백 편의 시를 써왔지만 어디에고 단 한 편도 내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삶이 시가 되기 전까지는 그건 시가 아니거나 가짜이므로.” 그리하여 그의 시는 쉰댓 중년에야 백련산을 만나 비로소 삶에 버물려 처음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다.

 

흰 아침, 산이 전하는 말
생각이 끊기고 마음마저 삭은 자리에 봄물 든 산이 전하는 바람의 말


지지난 가을의 어느 흰 아침, 시인은 사립을 나서 서천(西天)에 걸린 달을 바라보는데 문득 그 아래 엎드려 있을 산이 생각났다. 전날 낮에 그 기슭의 백숙집에 갔다가 붉어가는 그 산을 마음에 담아온 것이다. 그래 무작정 집을 나서 그 산으로 갔다.

그렇게 시작된 흰 아침마다의 백련산행이 햇수로 삼 년째, 서울을 떠나 있거나 몹시 앓거나 일기가 아주 험악하거나 하는 때만 빼고는 아침마다 백련산에 들었다.

하지만 처음엔 몸만 산에 들었지 딴 생각에 붙들려 정작 산은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렇게 반년이나 지나서야 생각이 삭아지고 산이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그때부터 진정으로 산을 만나 느끼고 부비고 만져가며 말을 걸었다.

마음을 열어 지성으로 말을 건 지 석 달 만에 산은 오래 품어온 숲의 얘기, 깊이 지켜본 세상 얘기를 하나씩 꺼내 들려주었다. 이때의 기쁨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다. “능선을 쓸어가는 빗줄기에/ 문득 한 생각이 끊어지고/ 마음이 열려 환한 자리로/ 봄꽃 피어선 활짝 웃겠네// 마음이 열린 꽃자리마다/ 너나하는 분별 죄 사라져/ 만남도 이별도 한 속이라/ 슬픔도 기쁨도 따로 없네// 봄비에 흠뻑 빠진 숲에선/ 나도 그저 젖은 나무였네// 흰 아침, 봄물 든 백련산/ 마음이 열린 그 꽃자리/ 나 피네 젖어서도 피네/ 날마다 지고 새로 피네”(「마음이 열린 자리」전문).

시인은 일찍이 “생각이 끊긴 자리에 마음이 열린다”는 간화선을 주워듣고 반야바라밀의 경지를 우러렀으되 거듭 말의 질곡에 빠져 끝내 헤어나지 못하니, 자기 같은 중생이 “깨침”을 함부로 입에 담을 바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시인은 산에 들 때마다 하나씩 깨쳐, 그 “전하는 말”로 다시 우리를 깨친다. “숲길 들어서는데/ 삭정이 하나 바람에/ 탁, 떨어진다/ 그 한 소리가 숲의 정적을/ 우레로 깨워 일으킨다// 託이다/ 숲은 바람에 付託(부탁)하여/ 이리 긴 잠을 깨고/ 바람은 삭정이에 假託(가탁)하여/ 숲의 부탁을 들어준다/ 결국 숲은/ 제 몸의 한 가지를 잘라 떨궈/ 잠을 깨는 셈이다// 요즘 권력자들 간의/ 請託(청탁)이 속속 불거지고/ 그 금지법을 두고도 시끄럽다/ 그 벌로 감방에 委託(위탁)하니/ 결국 제 몸을 옭아매어/ 하찮은 잇속을 차린 셈이다// 다 자연의 섭리대로 흐르니/ 어느 하나 숨 쉬는 것 하나도/ 무담시 되는 게 있던가/ 숲이 바람에 잠깨는 줄 알지만/ 제 몸 잘라 그러는 줄 안다면/ 탁,/ 정신도 챙겨가며 살 일이다(「託(탁)」전문).

시인(詩人)은 비록 초야의 이름 없는 남루일지언정 그 시(詩)만은 “남루를 벗고 찬란하게 솟구친다”고 했다. “시인은 시시하다 못해/ 남루를 껴입고 살지만/ 시는/ 그 모든 시시한 찰나에/ 한순간 남루의 껍질 깨고/ 찬란하게 솟구치는/ 눈물이거나 샘물(「걷는 자, 누구나 시인이다」중에서).

 

 

저자 소개

 

저 : 김이수

 

전남 보성 출생으로, 순천고등학교를 나와 동국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한살림협동조합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3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이후 20여 년간 출판사에서 글을 쓰고 책을 만들었다.

 

 

책 속으로

 

폭력의 기원

수십 줄을 썼다가/ 단 한 줄만 남긴다// 타자他者의 물화物化 --- p.20


한가위 앞두고

바람이 끕끕한거본께/ 비올랑갑소 엄니,/ 애비야 이참엔 내려올끄나,/ 봐서 모레나 글피 갈라요,/
정 바쁘면 안 와도 되어/ 엄니는 암시랑토안해야,/ 아따 어쩌께 안 간다요/ 전번 설에도 못가 뵜는디,/
하이고 맹절이 뭐다냐/ 일이 먼전께 무리하덜 말어,// 바람만 뒤척여도/ “애비냐?”/ 울엄니들 잠 못 드는/
가을달밤 --- p.27


가을 연서 1

어둠이 무장 길어지니/ 가을이 가차운줄 알겠습니다/ 엊그제 처서 지나 곧 백로이니/
이제 찬이슬에 단풍 들겠지요/ 여름볕 짱짱하니 천지가 자글댄 땐/ 당신 없는 줄 느낄 짬도 없다가/
문고리 흔드는 소리 당신인가 싶어/ 잠결에 맨발로 허이 나서보면/ 바람에 진 달이 낙숫물에 잠겨/
희끔하니 울어 글썽입디다/ 나, 달이 아닌 낙엽으로 질지라도/ 그 바람이 당신이면 좋겠습니다/
백날 밤을 꿈속에서 애가 닳아도/ 도무지 닿을 수 없는 당신이라서/ 이 가을엔 바람에 단풍들 가슴도/
한 뼘 남아 있지 않겠습니다/ 늘 있지만 아무데도 없는 당신/ 늘 오지만 한 번도 볼 수 없는 당신/
바람이 아니라면 또 아주 먼 날/ 당신 처음 만난 그 언덕 비탈에 서서/
흰 눈으로 오실 당신 기다리겠습니다 --- p.38


애도哀悼

밤새 울어 옌 검은 하늘/ 아직 못다 울은 슬픔이 남아/ 뜨는 해를 가리고 다시 운다//
간밤에도/ 숱한 비애가 가슴을 베었을 테고/ 숱한 절망이 바닥으로 나뒹굴었을 것이며/
숱한 죽음이 통곡의 연대를 이뤘으리라// 날이 밝으면 나는 또/ 아무 일 없어 보이는 세상으로/
아무 일 없다는 듯 나아가/ 밥벌이를 하고 퇴근길의 한잔에 호기를 부릴 터//
오늘 아침만은/ 추방된 28년 삶을 접고 죽어 돌아온 상필을/
홀로 28년을 싸우다 죽음에 든 류샤오보를/ 애도하며 하루를 맞고 싶다/ 오늘 하루만은/
그들 애잔한 혼을 기리며 마음을 여미고 싶다/ 상필은 내가 사는 나라의 기막힌 현실이고/
류샤오보는 내가 처한 세계의 최후 희망이므로 --- p.56

꽃차를 마시며

가으내 온 산야에 향그럽던/ 널 보며 나도 환히 피었거니/ 그토록 찬란했던 한때 지나/
늦갈바람에 바싹 말린 몸을/ 울음 뱉듯 찻잔에 우러나선/ 온통 내 몸 안으로 스며드는/
너의 사랑을 나 어쩔 것이냐/ 말린 몸을 다시 젖어 울어선/ 영혼까지 스미는 네 사랑을/
한 모금씩 아주 천천히 넘기며/ 나 행복해 웃어도 눈물겹구나. --- p.151

[이 게시물은 님에 의해 2018-05-25 14:55:25 좋은책이벤트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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